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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라이딩

by SM

요즘 집에서 나의 가장 큰 임무는 밤 10시에 학원 마친 딸내미를 차에 태워 데려 오는 소위 '학원 라이딩'이다. (아들은 알아서 걸어온다 ㅋ) 따지고 보면 참 비합리적인 과정이다.


우선 아주 먼 거리도 아니다. 불과 차로 10여 분 거리로 버스 두세 정거장이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이 없는 것도 아니다. 버스 정류장이 바로 붙어있다.

끝나는 시간도 종종 일정치 않다.


그러면 나는 그냥 어정쩡한 길에 불법주차 딱지의 위험을 무릅쓰고 차를 대놓고 몇 십 분씩 주차해놓고 차 안에서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저녁 10시면 나는 퇴근해서 저녁 먹고 씻고 그야말로 '재충전'의 시간- 이라 쓰고 유튜브나 넷플릭스 삼매경에 빠질 시간-인데 다시 옷 챙겨입고 나와야한다.

또 그 시간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뺐다가 돌아오면 당연히 주차자리가 없기 때문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주차자리를 찾아야 한다. 또 때때로 이미 출발해서 학원으로 향하고 있는데 '아빠, 친구들이랑 버스타고 갈께' 하는 톡 하나로 차를 돌리는 헛걸음을 만드는 일도 더러 있는 일이다.


이럴 바에야 딸내미가 조금 수고스러워도 학원 마치고 학원 앞에 따박따박 서는 버스를 타고 두세 정거장 잠깐 타고 오는 것이 누가 봐도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다.


사실 딸아이가 꼭 라이딩을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버스타고 오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힌 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차에 태워 오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고도 단순하다. 아주 짧은 거리와 시간이지만 딸아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집에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 때문이다.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한 결정에 합리성, 경제성 그리고 합목적성까지 따지는 나같은 사람이 이런 일방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택은 여전히 좀 낯선 일이기는 하나 아이들이 태어나고 평생 이기적으로 살았던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이미 했던 터라 그런 감정은 설명이 필요 하다기 보다는 그냥 본능인 것 같다.


예전 직장에 여직원이 차로 출퇴근하는데 겨울이면 그 아버지가 미리 내려가서 차 시동 걸어 딸 출근길에 춥지 않게 출근시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마음이 이제는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이 간다. 또 대학을 졸업하는 딸아이가 취직해서 회사가서 상사며 동료들한테 시달릴 게 안쓰러워 대학원 가라고 했다는 친구의 마음도 전혀 극성스럽거나 유난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희열은 부모가 자식을 돌봐야 하는 보살핌과 같이 시간 반비례하지만 결코 0이 되지는 않는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부모가 느끼는 희열과 그 아이가 부모로 부터 필요한 돌봄이 100이라면 시간이 지나 가령 10살이 되면 아이가 어느 정도 부모로 부터 독립하게 되고 돌봄의 강도가 50으로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애착의 정도도 50으로 낮아질 수 밖에 없고 그게 20살이 되고 30살이 되면 돌봄도 거의 사라지고 희열이 적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다만 자식이 50살이 되고 60살이 되어도 부모의 돌봄이나 자식으로 부터의 희열이 절대로 0이 되지는 않아서 끝까지 자식을 걱정하고 도와주려 하고 또 자식으로 부터 옅게 나마 희열을 얻게 된다는 것이 내 설명이다.


이 빈도와 일치하는 것이 아이들 사진을 찍는 횟수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돌이 되기 전까지는 매일매일이 다르고 매일매일이 신기하고 예쁘고 귀여워서 사진을 엄청나게 찍게 되는데 5살이 되고 10살이 되면 대략 절반정도 사진빈도가 적어지고 고등학생 쯤 되면 또 거기에 절반 쯤으로 줄어든다. 물론 그래도 찍어 놓고 시간이 꽤 흘러서 들여보면 또 끊임없이 달라진 것을 발견하고 그게 또 예쁘고 사랑스럽기는 하다.


이미 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아이들이 내게 주는 희열은 갓 태어났을 때 처럼 감동을 주거나 압도할 수준은 아닐 것이고 또 거꾸로 아이들이 내게 필요로 하는 돌봄과 도움도 금전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지극히 제한된 수준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기꺼이 라이딩을 나간다. 전혀 망설임도 없다. 자그마한 키에 큰 가방을 메고 학원문을 종종 거리며 나오는 딸아이를 맞이하는 그 순간과 조수석에 올라 앉으면 자동적으로 내 오른손을 맞잡아주는 자그마한 왼손 때문에 그리고 10여분의 짧은 시간 동안 재잘재잘 떠뜨는 딸아이를 보는 희열에 위에 말한 모든 비합리성을 재껴놓고 나는 또 라이딩을 나선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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