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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사라져가는 것들

by SM

1979년 초등학교 2학년 때 잠실 장미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다섯 식구에 화장실 하나 있는 28평으로 좁은 공간이었지만 새 아파트였고 수도꼭지에서 온수가 나오는 첫 집이었다. 물을 데워서 아주 간단하게 씻어야 했던 아득한 기억의 시영 주택에서 온수가 나오는 집으로 이사는 혁명적인 변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집에서, 즉 나 국민학교 때 샤워나 목욕을 했던 기억은 별로 없고 어김없이 주말이면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집에 온수가 나오고 목욕탕이 있었는데 왜 매주 목욕탕을 갔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 오랜 역사속에 주말에 목욕탕을 가는 것이 습관이나 문화처럼 자리잡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진짜 온수가 비싸서 그랬는지 집에서 샤워나 목욕은 별로 안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옛날 목욕탕으로 연상하는 몇가지들은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령 목욕 끝나고 선물처럼 주어진 바나나우유나 따끔거렸던 이태리 타올이나 물바가지 가지고 물놀이 하던 냉탕… 모두 내 기억속에도 있는 장면들이다.


아빠랑 (그때는 아빠였다 ㅋ) 목욕가면 온탕에 목까지 담그고 100을 세어야만 나올 수 있고 그렇게 불린 몸을 아빠가 때를 밀어주고 나서야 형하고 찬물에서 물장난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물론 찬물에서 장난치다 어른들한테 혼나기도 했지만 그 때 어린이들은 다 그랬다.


종종 형이랑 나랑 둘만 목욕탕을 가게 되면 엄마는 집에 돌아온 우리 팔꿈치 안쪽이나 목덜미 등 취약지역을 밀어보고 충분히 때가 밀리지 않았으면 다시 목욕탕으로 반환시켰다. 결국 시험을 통과할 만큼 때를 샅샅이 밀고 난 후에나 나올수 있었다. 집에 갔다가 다시 등떠밀려 돌아온 아이들을 돈 안 받고 받아준 목욕탕 사장님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인배이시다.


그런 옛 기억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주말에 특별히 약속이 없을 때 종종 동네 찜질방을 찾는다.

뜨뜻한 찜질방에서 옆으로 누워 핸드폰 보다가 잠이 들어 땀을 쭉 빼고 나면 이상하리만큼 개운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어서 목욕탕으로 건너가 온탕과 사우나를 들락거리며 또 한번 땀을 빼고 마지막으로 이태리 타올로 살살 때 까지 밀고 나면 뭔가 지난 한 주의 오폐물들이 깨끗이 씻어내고 배출한 느낌이 든다. 더 나아가 정신까지도 정화된 듯 맑아지는 착각까지도 이른다.


하지만 안타깝게 목욕탕은 사양산업이다. 원래도 잘 되는 편은 아니었는데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고 많은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우리 동네 목욕탕은 겨우 버티고 있긴 한데 손님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인 것으로 보아 결코 미래가 밝다 할 수 없겠다. 단골의 입장에서는 잘 버텨주길 바라지만 내일 당장 문을 닫아도 어쩔수 없다 싶은 그런 상태인 듯 하다.


예단하기는 어려우나 결국 목욕탕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고 추억을 더듬는 노인들이나 이색체험을 원하는 젊은이들 정도가 가는 그런 공간이 될 듯하다. 이런 시대 변화를 내가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내 곁에 있는 동안 잘 즐기고 또 추억을 쌓아갈 수 밖에…

모든 사라지는 것들이 아쉽기는 하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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