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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사라져가는 것들

by SM

억지를 부리면 50대가 집전화부터 공중전화,삐삐,핸드폰,스마트폰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통신수단을 모두 충분히 사용하고 활용해 본 세대가 아닐까 싶다.


물론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60대 이상은 지금 스마트폰 사용이 제한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반대로 지금 40대 이하는 삐삐나 공중전화가 전성기였던 시절이 학생 시절이었을테니, 사용빈도나 활용도 면에서 당시 20대였던 우리 세대들보다는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판단이다. (억지 끼워맞추기 인정합니다 ㅋ)


그런 점에서 우리가 20대에 활발하게 사용했던 삐삐나 공중전화는 우리에게 더 아련한 통신수단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그 중에 공중전화는 몇 개의 선명한 기억들이 남아있다.


동전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통화하던 순간들, 통화가 길어지는 앞 사람을 재촉하면서 '흠흠' 기침을 하거나 등을 톡톡쳐서 빨리 끊으라 직접 압박했던 기억, 혹은 남은 잔돈을 다음 사람 쓰라고 수화기를 올려놓는 작은 배려 같은 것들이 꽤 많은 사람들이 가진 공중전화에 대한 기억과 추억일 것이다.


밝히기 쑥스럽지만 공중전화 부스에서 쪼그려 잠든 기억도 있다.

늘 그렇듯 술이 문제다. 쌀쌀한 초겨울에 술을 잔뜩 마시고 지하철 막차를 탔는데 자다가 정류장을 지나쳤다.

택시 탈 돈은 없고 결국 그냥 걷자 하고 마냥 걸었다.

한참 걷다 보니 술기운이 확 올랐다.

문을 중간에서 당겨 완전히 외부 한기를 차단할 수 있는 공중전화 부스가 보였고 그 안이 너무 따뜻해 보였다. 들어가서 쪼그려 잤다. 정확한 기억이 아닐 수 있지만 꽤 포근하게 잘 잤던 것 같다.


연애하던 시절에 우리 아파트 관리사무소 앞 공중전화는 한동안 내 전용 전화기였다.

집에 전화기가 1대밖에 없던 시절, 혼자 오래 통화할 수도 없고 누가 엿듣는 것도 신경 거슬리는 일이라 야밤에 집 밖으로 나가 한적한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가끔 행인이 전화하러 오면 비켜주는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 혼자 전화기를 독차지해서 동전을 또각또각 넣으면서 꽤 긴 통화를 이어갔던 기억이 있다.


동물원 5집에 유리로 만든 배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랫말처럼 그때는 공중전화 안에서 이런 저런 여행같은 걸 한 것 같은 기억이다.

'조그만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탄 채 떠도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우리 시절 영화에 공중전화 명장면이 상당히 많다.

'초록 물고기'에서 한석규가 처음 살인을 저지르고 공중전화에서 큰 형에게 '초록물고기'잡던 어린 시절 얘기하며 오열하던 장면이나 '게임의 법칙'에서 공중전화 앞에서 박중훈이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 그리고 또 '영웅본색2'에서 장국영이 죽어가면서 공중전화에서 아내와 통화하던 장면 역시 모두 공중전화라는 추억의 장치들과 함께 기억에 생생하게 남은 장면들이다.

공중전화를 쓴 지 벌써 십수년은 된 듯하다. 눈 여겨 보지 않으니 요즘 아직 공중전화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또 한가지 물건이 세상에서 사라져간다. 아쉬운 추억만 남기고.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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