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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 안 해?

사라져가는 것들

by SM

요즘 결혼하는 우리 팀의 젊은 직원에게 "집들이 안 해?"라고 물으면, 아마 "왜죠?"나 "너 뭐 돼?" 같은 뜨악한 반응을 할 것이 뻔하다.

물론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으니 감히 물어보지 않는다.


1999년 결혼을 하고 일산 화정에 21평 전세집을 얻어 분가 했다.

당시에는 결혼하고 양가 인사 다니고 집 정리하고 대충 정신 차릴 때 쯤 응당 '집들이'를 준비했다.

본가/처가 식구들 1번씩, 나랑 와이프 친구들 1번씩, 양쪽 회사 동료들 1번씩 최소 6번의 집들이가 진행된다.

지금 생각하니 끔찍한 절차이긴 하다.


그 끔찍한 절차를 거슬러 가보자.

우선 집에 손님을 치룰만한 그릇 아니 수저도 없다.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를 내놓을 수 없으니 부모님한테 식기와 수저를 빌려와야했다.


신혼 부부용 2인용 식탁은 어림도 없기 때문에 안방으로 밀어넣어놓고 역시 부모님 댁에서 빌려온 큰 교자상을 마루에 펼쳐놓는다. 상이 넉넉치 않아서 옆에 신문지를 쭉 깔아놓고 음식을 번갈아 올려가며 먹기도 했다.


손님이 대여섯 수준이 아니고 열명이 넘어간다면 가구를 재배치하거나 아예 밖에 내놔야한다.

소파는 베란다로 세워놓고 거실스탠드나 청소기, 오디오 등등 혼수 TV를 제외하고는 죄다 베란다창고나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음식이다. 지금처럼 배달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이다.

친구들 정도(?)는 중국집에서 탕수육이나 양장피 정도 소위 청요리(이 표현도 참 오랜만이네) 몇 개랑 마른 안주 좀 사놓고 술만 잔뜩 사다놓으면 되겠지만 회사 높은 분들도 오시는 집들이에서 중국집 배달을 시키는 것은 용납되기 어려운 결례였다.


따라서 회사 동료 집들이날은 와이프랑 같이 휴가를 내고 아침부터 장을 보고 음식 준비를 해야 했다. 기억에 첫번째 회사 동료 집들이에는 특별 전문가(엄마) 도움도 받았던 것 같다.


집들이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잡채! 엄청나게 손이 가는 음식이다. 재료 하나하나 손질하고 볶고 무치고 버무려서 준비해놓되 당면이 불면 안되니까 너무 일찍 해놓을 수도 없다.

거기에 갈비, 불고기, 튀김류...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런 음식들이 있었을 것이다.


갓 결혼한 새댁이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음식을 직접 장만하고 요리해야했기 때문에 집들이는 약간 새댁의 요리 시험대 같은 그런 기능을 했던 것 같다.


내 회사 동료 집들이때 설마담이 노래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집들이때 새 신부 노래를 시키거나 짓꿎은 장난을 치는 것도 흔한 집들이 풍경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면 여직원들과 몇몇은 마루에서 계속 술 자리를 이어갔고 방을 나눠 한쪽에는 포커나 고스톱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그 방에는 맥주와 마른 안주가 세팅으로 깔렸다.

흡연이 관대했던 시절이라 포커를 치던 방에서는 모두 담배를 피웠다.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데 자정을 훨씬 넘겨 새벽 1-2시까지 그 신혼집에 술 마시고 노래하고 포커치고 놀다가 헤어졌다.

심지어 집 주인인 우리는 피곤과 숙취로 먼저 안방가서 뻗어 자고 객들끼리 놀다가 집에 간 적도 있다.


회사 동료 집들이는 그나마 새벽에라도 해산하고 집에 갔지만 친구들 집들이때는 상당수가 포커치고 술마시고 놀다가 밤을 새웠다. (아마 토요일 저녁에 집들이를 했었던 것 같다)


짐작하듯 집들이 다음날 집 상태는 처참했다.


창고에 밀어넣어뒀던 가구, 가전들 다시 내놓고 소파, 식탁도 다시 꺼내 정렬해야 했다.

수십 병의 술병을 치우고 잔뜩 쌓인 설거지나 남은 음식을 처분하는 일은 그나마 감당할 만 한 수준이었다.

포커를 치던 작은 방의 이불, 커튼, 벽지에는 담배 냄새가 찌들어서 한 며칠 창문열고 보일러 틀어 환기해서 냄새를 빼야했고 이불,커튼은 빨아널어야했고 바닥에 담배빵도 도려내거나 덧대어 감추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그게 자연스런 '의례'로 여겨졌다. 또 나도 다른 집들이 가서 그렇게 놀았기 때문에 힘들다고 할 명분도 없었다.


그렇게 꽤 긴 시간 망가진 집을 치우고 나면 그제서야 사람들이 들고 온 집들이 선물을 하나 하나 다시 열어보게 된다.

집들이 상징적인 선물로 '두루마리 휴지'나 '세탁세제'같은 것을 준비했지만 상부상조의 의미로 살림에 꽤 도움 될 만한 것들도 꽤 많았다.

수저세트나 찻잔세트, 스탠드, 조명가전...등 선물도 있었고 회사에서는 금일봉도 따로 받았었다.


내 집들이를 끝으로 회사 집들이는 없어졌다.

사유는 명확했다. IMF가 들이닥치면서 그런 것을 할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 뒤에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져서 소위 '가족적'인 분위기나 문화가 더 이상 회사 조직 문화로 적절하지 않은 'Norm'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점점 개인화가 심해지고 회사와 개인을 분리하는 '워라벨'을 중시하면서 어찌보면 '회사'와 '개인'이 혼재된 '집들이'같은 이벤트는 환영받기 어려워졌다.


늘 개인의 삶과 회사, 즉 '조직'의 삶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따라서 회사 동료 집들이 같은 행사를 굳이 부활 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흐름대로라면, 결혼식이나 장례식에도 회사 동료 참석이 점점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다만,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이 그렇듯 그 안에 어떤 작은 한 두가지는 그리움이 되기도 한다.

결혼이나 내 집 마련과 같은 큰 이정표 앞에서 서로 기뻐해주고 축하해주는 그 마음이나, 나 만큼이나 내 가족들에 대해 관심가져주고 챙겨주는 배려까지도 '집들이'와 함께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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