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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by SM Mar 28. 2025

나이 40이 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취미라는 게 없었다.

특별히 재능이 있어서 잘 하는 것도 없었거니와 소위 주의가 산만하여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다 보니 뭐든 진득하게 오래하는 게 없었다. 

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때 태권도,서예,미술,피아노,주산 등 남들 하는 건 다 기웃거린 편인데 대부분 흥미를 잃고 일찍 손을 놨다. 중고등학교 때는 뭐 대단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별 다른 취미 없이 6년을 지낸 듯 하다. 그리고 대학을 갔고 큰 포부로 클래식 기타를 배워보려고 동아리에 들어가는 시도도 있었으나 딱 2번 가고 자연스럽게 탈퇴했다. 그때는 그냥 술 마시는 것이 취미이고 특기이고 인생이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음악도 들어보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꽤 많은 것들에 아주 짧고 얕은 관심을 뒀다가 금방 다른 것으로 갈아타곤 했다. 

그 당시에 대학에 들어가면 마치 공식처럼 당구를 배웠다. 지금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되지만 당시 당구는 고등학생에게 금지된 스포츠였기 때문에 어쩌면 대학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런 금기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처럼 느껴졌는지 의례 수업이 끝나면 당구장으로 몰려가곤 했다. 지금도 나랑 술을 마시는 내 친구들은 모두 당구를 쳤다.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기웃거림이 있었으나 다른 여느 취미들 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스스로에게는 '당구 같은 걸로 시간을 때우지 않겠다'는 암시 같은 정당화를 하곤 했다. 정작 아이러니하게  같이 술을 마셔야 하는 친구들이 전부 당구장에 있으니 나는 당구 경기가 끝나길 기다리며 2층 당구장 건물 지하에 있는 오락실에서 전자오락을 하거나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거나 혹은 그냥 당구장 의자에 앉아 구경하고 농담따먹기를 하다 같이 짜장면 시켜먹곤했다. 다시 말하면 당구를 치지 않으면서 당구치는 애들만큼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낸 셈이다. 차라리 당구를 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취직하려고 이력서를 쓸 때는 취미 : 요리  특기 : 휘파람 이렇게 썼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요리가 취미라기 보다 가끔 집에서 라면 끓여먹고 김치볶음밥 해먹는 정도 였지만 좀 특이한 걸 써서 질문이라도 하나 받을까 하는 전략에 그렇게 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그로 부터 내 취미는 같이 술 먹는 것 밖에 없었다. 취하는 게 취미라고 할까.  

그러다가 내 나이 만으로 마흔이 되던 2011년 쯤 어쩌면 내 일생에 꽤 오랜 시간 정말 몰두하고 열심히 하고 좋아하는 한가지 일이 최초로 생겼다. 자전거다. 

형이 안 탄다고 해서 중고 철 자전거를 들고 와서 타기 시작해서 흥미를 붙이면서 밤낮없이 자전거를 탔다. 나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일이 있을 수 있구나 신기해 할 만큼 열정적이었고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탈까 어떤 장비를 쓰면 더 오래 탈수 있을까 연구하고 몰두했었다. 아침 저녁 출퇴근을 자전거로 했는데 비가 와서 자전거를 못 타러 가는 날은 그리 마음이 서운 할 수가 없었고 영하로 떨어진 겨울에도 발가락 덧버선을 신고 발바닥 핫팩을 붙여가면서 자전거를 탔다. 주말에 자전거를 타고 싶어서 새벽 4시에 눈을 떴고 한강의 모든 자전거길을 다니고 양평으로, 여주로, 인천으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거듭 말하지만 내 평생에 뭔가 이렇게 좋아할 만한 것을 찾은 설레임은 처음이었고 놀라운 일이었다. 그 와중에 자전거도 10만원짜리에서 50만원으로 200만원으로 500만원으로 업그레이드를 했고 쫄쫄이 옷, 슈즈, 헬멧 등 장비도 상당한 비용을 들여 장만했다.   

2011년 부터 한 5년은 열심히 자전거를 탔다. 별개의 얘기지만 2011년 2012년에 그렇게 자전거를 몰아타면서 몸무게가 86Kg에서 66Kg으로 20Kg나 빠졌다. 체중이 줄어드니 몸이 가벼워서 좋았고 훨씬 열정적이 되는 느낌이라 좋았다. 

정말 아이러니하게 자전거가 시들해진 것은 Endomondo라는 핸드폰 어플 때문이다. 물론 이사나 이직을 해서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기 어려워졌다거나 무릎이 아프거나 이런 사유도 있지만 어쩌면 심리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그 Endomondo라는 어플 때문이다.  한참 자전거를 탈 때 자전거를 탔던 기록을 Endomondo라는 어플에 기록을 했었다. 매달 몇km를 탔는지 확인하고 좀 더 타려고 했었고 또 다른 사람들 기록과도 비교하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가 2015년에 어플을 닫아버렸고 다른 어플로 기록을 넘겨버렸다. Endomondo화면에 익숙하고 거기에 진심이었던 사람 입장에서 바뀌어 버린 인터페이스와 입력방식은 순식간에 흥미를 떨어뜨려버렸고 그동안 새로운 기록을 쌓아가며 달성하는 재미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어쩌면 한 4년쯤 되어 자연스레 관심도가 떨어졌을 때 때마침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수도 있다.

선후가 어떻든 2016년 정도 부터는 그동안 해오던 라이딩의 관성 때문에 혹은 약간의 의무감 같은 것 때문에 자전거를 타러 나갔지만 훨씬 빈도가 낮게 그리고 거리도 짧게 타고 돌아오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가끔 자전거를 탄다. 그러나 2012년 정말 미친듯이 좋아했던 그 기억은 이제 사라져서 당시에는 자전거를 타지 못할 변수가 없다면 자전거를 탔는데  지금은 가령 날씨가 너무 좋거나 너무 심심하거나 같은 꼭 타러가야 할 동인이 있어야만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바뀌었다.

자전거 뒤에 취미는 골프가 차지했으나 자전거에 미쳤던 열정만큼은 이르지 못했다. 

자전거 취미에서 얻은 교훈은 역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미와 관심거리를 끊임없이 찾아야하는 것이 이제 취미에 대한 내 인생의 남은 과제이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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