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라고 시작하는 노래가 있었다.
독도는 우리땅 불렀던 정광태라는 가수가 만든 김치주제가라는 노래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해서 나름 히트 쳤던 1980년대 노래인데…
예전에 옛날 유학생들이 김치가 먹고 싶은데 배추 구할 길이 없어서 양배추로 김치를 담궜다거나 독일 사우어크라우트에 고추가루 뿌려서 김치 대용으로 먹었다는 전설같은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 사람들 식탁에 빠질 수 없는 고정 메뉴이고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김치국 등등 응용 요리가 무궁무진하다는 것과 이제는 김치가 수출되어 외국에서도 소비되고 알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김치가 한국의 대표 음식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우리집 식탁에서 김치가 사라진 지 한 석달 쯤 되었다.
그전에는 김치를 2Kg정도 작게 주문해서 조금씩 먹었는데 매번 빨리 소비하지 못하고 너무 익어버려서 결국 끝에는 김치찌개나 김치 볶음으로 마지못해 '먹어 치우는'일이 생기다 보니 더 이상 주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주중에 집에서 밥먹는 일이 많지 않고 아이들은 김치 없이도 밥을 잘 먹어서 사실상 집에 김치 먹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한 석달 쯤 되니 김치 없이 살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언젠가 김치도 우리들 고정 반찬에서 서서히 물러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김치 소비량이 매년 일정 정도 감소 추세라고 한다. 대개 김치는 발효식품으로 건강에 좋다고는 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소금에 절인 음식이기 때문에 나트륨 함량이 높아서 고혈압 등에 좋지 않다는 반론도 있고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싱싱한 야채보다 몸에 더 나을 것 같지 않다.
건강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소금에 절이는 것으로 보관 기간을 늘였던 음식 그리고 야채 구하기 어려운 겨울을 나기 위해 만든 음식을 지금처럼 다양한 식재료가 있고 사시사철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타성과 습관이 아니라면 굳이 김치를 찾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제 직접 김치를 담궈 먹는 집은 많지 않다. 김치를 담글 줄 아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든다.
아파트 욕실과 거대한 다라이에 산더미처럼 쌓아서 배추를 절이고 마늘을 찌고 풀을 쑤고 여러가지 신기한 부재료(굴,갈치,새우,멸치)를 넣고 버무려서 100포기씩, 200포기씩 담궈서 아파트 복도 장독에 이불 뒤집어 묻어놓던 김장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김치를 사 먹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김치는 결코 싼 음식이 아니다. 최근 몇 년동안 이상 기온 때문에 배추값이 폭등한 탓도 있겠지만 기계보다는 사람 손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라 비쌀 수 밖는 음식이다. 그냥 야채사서 샐러드 먹는 것이 훨씬 저렴하게 느껴진다.
사실 나는 어릴 때 김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갓 담근 김치는 '짠 맛'과 배추의 '단 맛'으로 먹긴했으나 익은 김치는 그 향이나 발효의 맛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먹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절에 김치를 안 먹으면 딱히 먹을 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좋든 싫든 먹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특히 도시락 반찬에서 김치는 사실상 어머니들의 반찬 근심거리를 더는 큰 무기 같은 것이라 필수적으로 포함되었고 그 도시락을 받아든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 식탁에서 야단 맞아가면서 김치를 먹었다. 그렇게 어찌보면 억지로 입맛을 길들여 적응해가며 김치를 받아들였다.
유전자의 힘인가...아들이 김치를 먹지 않는다. 나처럼 신김치만 안 먹는게 아니라 아예 김치 자체를 먹지 않는다. 학교 급식에서도 김치는 아예 뜨지 않는다고 한다. 아들도 김치의 맛과 향이 싫다고 한다.
그런데 김치를 안 먹는다는 건 아직도 여러가지 장애가 생길수 밖에 없다. 가령 김치볶음밥이 주메뉴로 나오는 날은 거의 밥을 먹지 못하고 주메뉴가 가령 목살김치찜 같은게 나오면 다른 부메뉴로 급식 식사를 마쳐야 하는 곤란함이 생긴다.
이런 곤란한 상황을 잘 알기에 몇 차례 김치를 먹여보려고 시도 했다가 내 어릴 적 생각이 나기도 하고 억지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시키는 것이 상당히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뒤로는 강요하지 않았다. 종종 급식에서 곤란함을 겪는다고는 하지만 아들은 다른 음식들 잘 먹으면서 건강하고 건장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문득 회사에서 젊은 직원들과 점심 메뉴를 고를 때 김치찌개를 고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개 40대 이상 직원들과는 제법 자주 목살 넣은 김치찌개를 먹는데 20-30대 직원들은 그 자리에 없었고 다른 뭐랄까 '깔끔한' 메뉴를 훨씬 더 선호하고 선택했던 것 같다. 아마 아들 처럼 김치 자체를 좋아하지 않거나 혹은 김치찌개 먹고 나서 온 몸에 뒤집어 쓴 것 처럼 풍기는 냄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보면 조심스럽게 수십년간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자리한 김치의 위상이 위협받고 점점 우리들의 식탁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예측을 하게 된다.
사실 배추김치의 역사는 불과 100여년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강산이 바뀌어도 10번은 바뀌었을 시간동안 잘 지켜온 자리지만 과거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화는 지금 그리고 미래에는 또 다른 이름이나 위치에서 김치를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김치의 fade-out을 예측하면서 내일 점심은 김치찌개를 먹어야겠다.
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