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의 추억

by SM

1990년도 대학입학식을 마치고 총학생회에서 한페이지씩 뜯어 쓸 수 있는 대략 스무장짜리 노트같은 것을 입학 선물로 줬었다.


한 쪽면에는 학교명과 로고 그리고 주소를 적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다른 면은 줄칸으로 된 노트 한 페이지가 있었다. 그리고 접는 점선 표시가 되어 가로 3등분 해서 접을 수 있도록 되어있는 A4 사이즈의 노트였다.


처음에 그걸 받아들고 다들 "이게 무슨 용도인가? 연습장인가? 메모장인가?" 했었다.


이어 이것이 '학보 띠지'라는 선배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즉, 주소와 간단한 내용을 적어 띠지 형태로 접어서 학교 신문을 감싸 우편으로 보낼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보통은 간단한 메모를 신문 사이에 끼워 넣고 빈 A4를 3등분해서 접어 주소를 적고 학보를 보내왔는데 총학생회에서 아이디어를 내어 안에 편지를 쓰고 접어서 밖에 주소를 쓸 수 있고 학교명과 로고도 들어갈 수 있도록 특별 인쇄한 제작물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잘 읽지 않는 신문을 누구한테 보내라는 말인가 의아했었다.


그리고 메모할 수 있는 학보 띠지에 대해서는 전할 말이 있으면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보내면 될 일이지 이 앙증맞은 공간에 무슨 메모를 써서 보낸단 말인가하고 가벼이 여겼다.


그래도 입학 초반에 학보가 나오면 내 대학입학의 쾌거를 근황으로 알리기 위해 다른 학교 입학한 고등학교 동창들, 가족 친지들에게 주루룩 학보를 보냈다.


정확한 우편요금은 기억할 수 없으나 학보를 보내는 것은 신문을 보내는 것이라 일반 우편 요금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래서 큰 금전적 부담없이 인사치례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보를 보내는 것의 진정한 용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90년대 학보의 진정한 용도는 썸남썸녀들의 '사랑의 메신저' 그리고 쪽팔릴 필요 없이 들이 댈 수 있는 '사랑의 짝대기' 였다.


지금이야 소개팅을 하고 나면 즉시 카톡으로 애프터를 보내거나 반대로 마음에 안 들면 프로필 차단/숨김을 하면 되지만 삐삐도 없던 시절에는 미팅,소개팅이 끝나고 애프터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막막해진다.

설혹 집전화번호를 받았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의 집에 전화하는 것은 상당히 껄끄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겨우 썸 단계에서 구구절절 연애편지를 써보내는 것도 섣부른 일이었다.


바로 그 때 학보가 날아간다. 띠지에 무심하게 몇 줄 '날씨가 어떻다거나 수업이 어떻다거나' 혹은 해당 신문에 실린 기사를 핑계로 몇 줄 써서 상대방 학교 학과사무실로 학보를 보낸다.


썸이 통했다면 상대방도 답으로 학보를 거꾸로 보내거나 전화 연락을 해올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학교 신문 읽어 보라고 보내준 것'일테니 답이 안 왔어도 크게 자존심이 구겨지거나 상처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애프터 신청 수단이었다.


종종 내 파트너가 아닌 친구의 이름을 적어 보내는 모험적인 시도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또 학보는 Joint MT나 Joint 수학여행 등을 도모하는데 동원되었다.

학보 띠지에 우리는 무슨과 몇 학번이고 인원은 몇 명이고 대성리나 강촌으로 MT를 언제 갈 예정인데 혹시 동참하겠냐는 내용을 여러 장 적어서 몇 군데 여대 학과 사무실로 학번 대표에게 학보를 날렸다.


그렇게 여러 차례 여대 여학생들과 조인트 MT를 갔었고 기억이 흐리지만 대학 친구 열댓명이 추진했던 제주도 수학여행도 학보를 대량 살포하여 성사된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학보를 통한 소통은 아마도 90년대 중반 쯤 삐삐와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카톡과 메신저, 문자, 이메일 등등 실시간 소통이 일어나는 지금 기준으로 그런 아날로그 소통 방식이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다림이 길어지는 만큼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설레임과 염려 그리고 마침내 답장을 받을 때의 희열과 쾌감은 훨씬 큰 것이었기에 그때가 그리워지는 것 같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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