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화 관제 훈련

by SM

초등학교 시절 민방위 훈련 중 하나로 등화 관제(燈火管制) 훈련이라는 게 있었다.

야간에 적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서 모두 강제로 등과 불을 끄는 훈련이다.


훈련의 근본목적과는 관계없이 나같은 어린이들에게는 약간 신나는 이벤트였다.


아파트 마당에 내려가서 경비아저씨와 민방위 아저씨들과 함께 불을 끄지 않은 집 동호수를 찾아 "21동 501호 불끄세요!"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완전히 소등된 아파트 벽에 몰래 후래쉬로 비추면서 금지된 장난을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훈련은 어린 나에게도

' 아...전쟁이 나면 등없이 컴컴한 채로 저녁을 지내야 하는구나' 하고 아주 작은 '전쟁의 공포' 를 심어준 것 같다.



1930-40년대 생들은 직접적으로 한국 전쟁을 경험했을 것이고 1950년대-60년대 생들이 간접적으로 베트남 전쟁을 경험했다고 치면 그 뒤 1970년대 이후 세대들은 전쟁을 경험한 일이 없다.


대한민국 역사상 굶주림과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첫번째 복 받은 세대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바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했었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을 모르고 또 큰 두려움도 없이 살아왔다.


1983년 북한 이웅평 소령이 미그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해 왔을 때 경계경보 사이렌과 함께 민방위 스피커에서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라는 다급한 아나운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른들은 겁에 질려 가족 친지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슈퍼마켓에 달려가 쌀과 라면을 사들였다.


1994년 북한 김일성이 죽었을 때도 비슷한 상황으로 생필품 사재기가 있었다.


하지만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우리 세대들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냥 금방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실제 큰 혼란없이 해프닝으로 잘 끝났다.




넷플릭스에서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라는 영화를 봤다.


이웅평이 넘어올 때도 김일성이 죽을 때도 느끼지 않았던 '전쟁의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평화가 얼마나 깨지지 쉬운 연약한 상태인가 라는 두려움과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이웃의 삶이 어쩌면 정치인 한 두명의 잘못된 판단으로 하루 아침, 아니 순식간에 파괴되고 소멸될 수 있다는 위협이 느껴졌다


"돌격 앞으로!"를 외치면서 고지를 뺐기 위한 백병전을 벌이던 그런 낭만적인 전쟁은 이제 없을 것이다.

등화관제를 하고 생필품을 사재기하거나 피난을 가는 그런 일도 의미가 없어질 것 같다.

우리 앞에는 그냥 버튼 하나로 수천만이 죽는 전쟁만이 남았을 뿐이다.


말그대로 우리는 다이너마이트에 둘러 쌓인 집에 살고 있다.


나쁜 평화가 없듯 좋은 전쟁은 없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나와 내 아이들이 살아 있는 동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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