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추억

by SM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란 시의 첫 구절은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에서 집은 단순히 건축물이라기 보다 일상을 마치고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안정과 안식의 공간일 것이다. 그래서 행복을 위한 첫째 조건은 '집'이다.


이사가 확정되었다.


2012년 전세살이를 시작해서 운이 좋게도 중간에 쫓겨나는 일 없이 장장 14년을 한 집에서 살았다.

아이들은 여기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부분을 보냈다.


내년 재계약 시점을 앞두고 집주인도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때마침 우리도 우리가 세놓은 집에 들어 가야 해서 어찌보면 잘 '아다리'가 맞은 셈이다.


십 수년간 한 집에 살다가 이사를 하려니 마음이 바쁘다.


요즘 이사는 '포장 이사' 라 그대로 놔둬도 알아서 포장하고 옮기고 풀어서 정리까지 다 해주니 실질적으로 내가 딱히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번 이사 때 버려야 할 묵혀둔 짐들과 새 집에서 뭔가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디자인과 배치 등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이 많다.

또한 십 수년 고정적으로 썼던 주소도 여기저기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따지고 보니 초등 중학교 동안 다섯번 이사를 다녔다. 적지 않은 횟수다.

그때는 포장이사가 아니라서 전부 가족들이 짐을 싸야했다.

전매청 다녔던 아버지가 빈 담배박스를 수 십장 가져와서 각자 짐을 싸도록 했다.

그때는 소위 '뾱뾱이'도 없어서 깨지거나 다칠만한 물건들은 모두 하나씩 신문지에 싸야했고 박스당 무게도 적절히 고려해서 배분해야했다.

이사날이 가까와지면 우리집에는 규격에 맞는 담배박스들이 차곡차곡 정렬되어있었다.

아마도 이사짐센터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우리집 이사는 수월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이사짐센터에서 아저씨들이 오기는 했지만 그냥 맡겨놓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도 모두 같이 짐을 날라야했다. 비록 초등,중학생이었지만 나도 무겁지 않은 작은 짐들은 이사트럭에 실어날랐었다.


귀찮고 힘든 과정이었다.


이사를 다닐 때 마다 늘 크고 작은 분쟁이 생겼다.

이사를 마치고 나면 피아노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거나 장롱이 긁히거나 장독이나 거울이 깨지는 일도 있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할지를 두고 이사하던 아저씨들과 아버지는 실랑이를 벌였었다.


지금처럼 사다리차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파트 옥상에 곤돌라가 있어서 거기에 짐을 실어 올렸는데 흔들흔들 상당히 위험하게 보였던 기억이 난다.


가스연결이 빠르지 않아서 당연히 이사날은 짜장면을 시켜먹어야 했는데 아마도 그것이 나에게는 이사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보람같은 것이었다.



이제 두어달 뒤면 14년을 먹고 자고 말 그대로 지지고 볶고 살았던 집을 떠난다.

짐을 다 빼고 나면 그 십수년의 추억으로 가슴한켠이 쓸쓸해질 것 같다.


그래도 이사를 잘 마쳐서 떠나는 집보다 새로 들어갈 집에서 더 행복한 추억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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