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가야사지 곱게 물들어 간다
만추의 가야사지(伽倻寺址 / 伽倻岬寺) 곱게 물들어 갑니다.
2018년부터 잦은 비에 무너진 남연군묘(봉분)가 문헌과 주민이 제공한 사진 자료 등을 근거로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낮추어 복원되었다.
사진과 같이 차분하게 복원되어 의견을 받아준 담당자에 마을 사람으로 감사한 일이다.
어릴 남연군묘는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가야산 공부를 하며 어릴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국사봉이 보이고 도청봉도 보이고 신령한 것들이 보이더군요.
평화로운 마을 상가리
그러나 역사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남연군묘가 마을 중심을 차지하는데 그 과정은 폭압적이었다.
19세기 초까지 가야산을 차지하고 있던 판서 윤봉구(6대손 윤철보)에게 흥선 대원군은 적당한 대가를 지불했지만 산 아래 마을에 살던 주민들은 보상이나 지원도 없이 자신의 부동산을 내어주고 살던 곳에서 소개되었고 자신이 태어난 가야산에 묻힐 수 도 없었다.
근대 국가라는 개념조차도 없던 흥선 대원군과 고종 그 대신들은 백성들은 생업터전을 잃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묘소가 만들어지고 1백 년 넘게 대가도 없이 부역이라며 전 주민이 동원되어 풀을 베고 무너진 곳은 흙을 파 바지게로 올려 묘역 보수공사에 동원된다. 60년대 생인 내가 동원되었으니 1970년대까지 백 년을 넘기며 그랬다.
대한제국 고종은 국권을 상실하며 상가리에서 빼앗은 부동산을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지만, 그러질 않고 오히려 자신이 사유지라 주장하며 말뚝을 세우고 사유화한다.
여기에 민주화된 현 정부도 사유지를 도립공원 , 문화재 보호라는 명분으로 더욱 조이고 규제하며 각종 인허가와 개발행위를 제한하고 사소한 위반에도 범죄 행위로 처벌하니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 역사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국가는 1910년부터 흥선대원군이 강탈한 부동산에(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국유지가 된다)에 경작하고 거주하는 주민을 불법점유자 취급하고 갈등하며 대역죄인 취급하지만 상가리 백성들의 논과 밭이 국유지가 되는 과정과 역사를 이해한다면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국가와 지역은 다수의 향유권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과 터를 내어준 상가리 주민에게 이제라도 국가와 지역은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되겠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랴 국유지(전체가 가야사지)에 꽃이라도 심어 주민과 지역 사람들에게 돌려주었으면 한다.
가야사지 넓은 땅에 꽃을 심고 경관을 만들어 일천 년 가야산에 취해 가야산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다.
가야갑(伽倻岬) 냇가를 따라 사색하며 걷는 길은 전국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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