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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숙이 Oct 06. 2021

무료 논문 보는 법 혹은 공유하는 법

한국의 커먼즈 <4-1> 오픈액세스를 선택한 연구자와 학자들

2019년 이후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새로 떠오른 인기 검색어가 있다. ‘무료 논문’. 


전남대, 군산대, 경상대 등 10개 국공립대학은 2019년 들어 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DB)업체인 디비피아 구독을 중단했다. 국공립대학도서관협의회에 따르면 “디비피아가 과도한 가격 인상을 요구”했고, 디비피아에 따르면 “인상을 전제로 3년 계약을 맺었는데 대학들이 이제 와서 딴소리”를 했다. 


여하튼, 논문 226만 편짜리 국내 최대 상용DB에 접근할 수 없게 된 학생과 연구자들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형편이 됐다.      


‘무료 논문’으로 가는 길은 크게 세 갈래다. 첫 번째 길. 무난하지만 번거롭다. 학술연구정보서비스(www.riss.kr)나 국가학술정보융합데이터(cloud.nanet.go.kr) 혹은 국회전자도서관(www.nanet.go.kr)

에 가서 무료로 공개된 논문을 찾아서 본다. 


그런데 검색된 논문 상당수는 저작권이 따로 있다. 소장기관으로 찾아가거나 협정기관 아이디로 접속해야 볼 수 있다. 소속 없고 소장기관 도서관이 먼 학생이나 연구자라면? 무료 논문 구하러 다닐 시간에 차라리 DB

업체에서 1건에 6000~9000원 하는 유료 논문을 사서 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두 번째 길은 불편하거나 어둡다. 인문 비평 공동체 IRIS 카페에서 ‘이 글은 제 고양이가 썼습니다’라는 가명을 쓰는 한 회원이 그 길에 이르는 법을 소개했다. 


“서울대나 KAIST에 다니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이 두 학교는 돈이 많기 때문에 웬만한 저널은 다 구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친구와 연락이 닿지 않을 수도 있고, 자꾸 부탁하다 보면 귀찮아서 연락을 아예 끊어버릴 수도 있다. 우리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자. 바로 사이허브(Sci-Hub)라는 사이트다.”


 사이허브는 온라인 논문 검색엔진 사이트다. 2011년 카자흐스탄의 한 대학원생이 유료 논문의 지불장벽에 반발해 만든 후 전 세계 유료논문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사이허브 트위터(twitter.com/sci_hub)는 2019년 10월 기준으로 전 세계 7600만 개 논문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논문을 무료 공개 당한 연구자들에게는 여러 모로 불편한 숫자일 터.   

   

세 번째 길은 아름답지만 좁다. 연구자들 스스로 공개접근 즉 오픈액세스(Open Access, OA)한 논문들을 모은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카데미아(www.academia.edu)에선 2100만개, 플로스(www.plos.org)에선 21만5000여개 텍스트가 공개되어 있다. 리서치게이트(www.researchgate.net)에선 1500만여 명의 과학자들이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있다. 국내 연구자들 것도 있지만 모두 영어 논문이다.      


한국어 논문을 모은 오픈액세스 사이트도 있다. 서울대, KAIST, 이화여대도서관 등 국내 대학과 국토연구원 등 국립연구기관들 40여 곳이 참여하고 국립중앙도서관이 운영하는 오픈액세스코리아(이하 

OAK, www.oak.go.kr다. 


OAK는 2021년 기준으로 38곳 참여기관의 논문 104만3000여 건을 무료 공유한다. 네이버 학술정보나 구글 학술 검색에선 상용DB업체 즉 유료 논문도 함께 보여주지만, OAK에선 오직 무료 논문만 보여준다.      


하지만 이 길은 좁다. OAK 제공 논문은 국내 상용DB업체와 비교해 38.5% 수준이다. 이 길을 더 넓힐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두 가지다. 세금이 들어간 연구물에 오픈액세스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 연구자 스스로 오픈액세스를 선택하는 것.      


논문 접근성 높이자” 

무료 오픈액세스를 선택한 한국기록관리학회 등 문헌정보학 8단체      

2019년 8월 29일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 단체와 연구자 공동 심포지엄에 참석한 연구자와 학술단체들이 선언문을 함께 낭독하고 있다. (사진 제공  

국내에서도 연구자들이 학회를 통해 오픈액세스를 시작했다. 문헌정보학 8개 학술단체와 학술지, 그리고 대한의학학술지 편집인협의회 소속 112개 학술지다. 문헌정보학 단체들은 각자의 사이트에서, 대한의학학술지들은 코리아메드 시냅스 사이트(synapse.koreamed.org)를 통해 연구자 회원들의 논문을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기여하는 공동체의 범위가 다르다. 코리아메드 시냅스는 영어로만 논문을 공유한다. 문헌정보학 8단체는 한국어로 공유한다. 즉, 코리아메드의 논문에 영어권 즉 전 세계가, 문헌정보학 논문은 한국어권 즉 한글 공동체가 접근할 수 있다. 각 단체가 영향을 주려는 공동체가 다른 것이다.      


이처럼 오픈액세스는 겉보기에는 그저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개방지 같지만, 실은 특정 공동체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공유지 즉 커먼즈Commons에 가깝다. 연구자들은 왜 자발적으로 지식의 공유지, 지식 커먼즈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먼저, 문헌정보학 8단체 사례를 보자. 2019년까지 문헌정보학 8단체 중 3곳이 상용DB업체와 계약을 종료했다. 즉, 영리적 논문 유통 시스템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이다. 


그들 중 가장 먼저 논문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기록관리학회는 자 기관 사이트뿐 아니라 한국연구재단,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국회도서관 등 공공 부문에 학술정보를 무료 공개했다. 


한국기록관리학회는 교보문고 스콜라 등 민간업체에도 논문 유통을 허용했다. 물론, ‘비배타적 이용 허락’ 즉 모든 대중이 무료 이용하는 전제였다. 또, 2019년 4호를 마지막으로 인쇄본 발행 중단을 결정했다. 논문 유통을 완전히 디지털화한다.     


이 학회의 정경희 편집위원장(한성대 디지털인문정보학)은 2019년 8월 29일 열린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 단체 및 연구자 연대 선언’ 자리에서 문헌정보학 8단체가 오픈액세스를 시작한 배경을 소개했다. 


논문 오픈액세스 운동이 처음 시작된 건 영어권이었다. 논문 구매 가격 상승이 도화선이었다. 1986년에서 2000년 사이 북미 지역 도서관의 학술지 구독비용은 225% 올랐다. 그런데 구독자료 수는 줄었다.     

 

여기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연구자들이 2001년 12월 부다페스트에 모였다. 수차례의 소모임 끝에 이들은 2003년 모든 학문 분야에서의 학술 논문이 인터넷상에서 자유롭게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리, 전략, 위임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것이 ‘부다페스트 오픈 액세스 이니셔티브(Budapest Open Access Initiative, BOAI)’다.     

 

BOAI는 이를 위해 두 가지를 전략으로 제시했다. 첫 번째는 셀프아카이빙, 즉 저자가 본인의 논문을  직접 업로드해 공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오픈액세스 저널, 학술단체들이 인터넷을 통해 연구논문을 무료로 저작권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저널을 발행하는 것이다.  

    

이후 분야별 지역별 연구자들의 아카이빙이 시작됐다. 샘플링에 따라 추정치는 다르지만, 20년간 전 세계 논문 중 최대 48%가 오픈액세스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다. 21세기 들어 논문 형태로 쌓인 인류의 지식 중 거의 절반에 대중이 무료로 접근할 길이 열렸다.     


국내에서 오픈액세스 논의가 진행된 계기도 외국과 비슷하다. 2016년 이후 학술논문 구독 가격 인상률이 대폭 높아졌다. 국내외 상용DB업체와 학술 저널에 내는 구독료는 서울대의 경우 2016년에 연 89억 원이 넘어섰다.      


변화가 시작됐다. 2018년 8월엔 문헌정보학 8단체가 오픈액세스 전환을 선언했다. 같은 해 11월엔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 전자정보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서울대 중앙도서관장 서이종)가 ‘전자저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대국민 성명서’를 냈다. 2019년 들어선 국공립대학 10곳이 상용DB 구독 중단을 공지했다.    

  

이중, 문헌정보학 8단체 선언의 골자를 살펴보자.


 ‘학술DB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올라 연구자들이 생산한 학술논문에 대한 접근이 급격히 제한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언에 참여한 학술단체가 발간하는 학술지를 오픈액세스로 전환하겠다.’   

   

이들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국내 문헌정보학 분야 학술지의 오픈액세스 출판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개발했다.


 ‘첫째, 저작권 및 이용허락 정책에 있어서 저작권은 학회가 갖되 라이선스는 CC BY-NC-ND 즉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로 한다. 둘째, 원문은 공공영역, 상업영역에 모두 공개한다. 셋째, 인쇄본을 중단하고 심사료를 출판비로 전환해 출판비용을 마련하한다. 넷째, 출판 및 유통 플랫폼은 공공 영역에 지원을 요청한다.’ 

    

이후 이들 8단체는 각자 사이트를 통해 각자 심사한 논문들을 공개한다. 또, 다른 무료 공개를 전제로 다른 논문 제공 사이트들에도 게재를 허락한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자료 :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 2015년 KESLI 컨소시엄 제안현황

      


#CC_BY  #이 저작물은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공동진행 연구결과입니다. 저작자명 및 출처, CCL 조건만 표시한다면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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