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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숙이 Oct 02. 2021

공동체주택 세우고 싶다면 “돈보다 사람이 먼저”

한국의 커먼즈 <3-2>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의 공간커먼즈

(이어서) 홍은둥지의 건축 목표는 다른 공동체주택들과  다르다. 이들은 모여 살기 위해서 건물을 짓고 공동공간을 만든  아니라, 주민 공동체 공간을 만들려고 모여 살기로 하고 개별공간을 나눴다. 강순영 홍은둥지 운영위원회 총무는 ‘마을언덕홍은둥지 건립 과정과 현재 정리한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2층을 주민자산화 할 뚜렷한 목표가 처음부터 있었다. 이는 건물 건립과정 중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 추진하면서 2층 주민자산화를 담당할 주체를 동시에 구성한 이유이기도 하다. 2층은 현재 50여 명의 주민조합원으로 구성된 비영리법인인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이 단계적으로 주민자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건립자들 즉 입주자 중 6인은 개별가구다. 즉, 가정이 있는 가구주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들이 지을 건물 일부를 주민자산화, 즉 커머닝commoning할 생각을 하게 됐을까.


강 총무는 “우리는 주거공동체란 건물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만의 공동체를 넘어서서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동네 공동체의 발전을 촉진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주민공동체가 활성화되어야 개별적인 주거공동체 단위도 온전하게 공동체다울 수 있다도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는 초기 제안자 다수가 서대문구에서 오랫동안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라서 공유할 수 있던 생각이었다. 이후 결합한 참여자들도 이 생각에 동의했다.


개별가구가 사비를 들여 세운 건물이지만, 1층과 2층의 약 200㎡ 남짓한 공간이 주민 누구나 쓸 수 있는 공동체 이용공간이 됐다. 전체 면적 중 20%가 넘는 넓이다.


1층은 주민이 주주인 ‘협동플랫폼카페 이웃’이, 2층은 마을언덕사협이 운영한다. 이 공간에서 홍은동 지역 주민, 소상공인,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소모임, 팝업숍, 협업프로젝트, 문화강좌 때로는 1박2일 워크숍을 연다. 예전엔 없던 공간이다.      


이 공간을 만드는 데에 마을언덕사협의 조합원 및 주민 50여명이 재정적으로 힘을 보탰다. 3가지 방식이었다.


첫째, 공동체공간을 운영하는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에 출자하기.

둘째, 주민 주식회사 협동플랫폼카페 이웃에 주주로 참여하기.

셋째, 저축해놨던 여윳돈을 사업비로 대출해주거나 후원금을 보태기도 했다.


협동조합 출자금과 사업수익은 2층 공간, 주식회사 투자금과 사업수익은 1층 카페의 분담금 형태로 마을언덕홍은둥지의 이자와 사업비에 보태졌다.      


무엇보다 사협 조합원과 주민 6명의 개인이 무이자에서부터 2.5%로 대출해준 5억여 원이 건축에 가장 큰 힘이 됐다. 자금이 부족한 위기상황에서 큰 디딤돌 역할을 해주었다.


주민들이 소박하게 운영해온 풀뿌리 자조계에서는 500여만 원의 계비를 모아 후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조합원들 3명은 건축에 쓰라며 80만 원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후에도 마을언덕과 홍은둥지 안착을 위한 후원금이 꾸준히 들어왔다. 지역신협도 3.75%의 저리 대출로 도왔다. 일곱 집이 마중물을 붓고 마을 전체가 펌프질을 해준 셈이다.      


“재정적으로 큰 위기가 있을 때마다, 마을언덕홍은둥지를 지킨 것은 입주자들만이 아니었다. 이 건물의 취지를 깊이 이해한 건축설계사무소와 건축관리회사의 협조가 있었고, 금액의 차이를 떠나 조금이라도 주민공동체공간이 실현되기를 바라며 힘을 보탠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들, 협업사무실에 입주예정이었던 단체들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취해 준 지역 신협이 있었다.”      


홍은둥지와 비슷한 공간 커먼즈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돈을 모으면 어떨까. 그러나 돈 모을 생각 먼저 해서는 이런 자원을 끌어모을 수 없다고 홍은둥지 사람들은 조언한다.


설사 돈을 모은다 해도 그로 인해 생기는 실무, 행정, 참여자 간 조율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홍은둥지는 27차례 워크숍을 거쳤는데도 사업 중단을 겪은 바 있다.


그 후 70여 차례 회의와 워크숍이 추가로 열렸다. 모든 안건에 대해 모든 참여자가 ‘만장일치’할 때까지 토론이 이어졌다. 출자금액과 관계없이 1인1표제 원칙을 따랐다.

     

그렇게 입주자와 입주자 간 협약서가 체결됐다. 이 협약서에는 공동체주택의 소유와 운영, 의사 결정방법, 사업 추진과 자금 조달방법부터 개별공간과 공동공간의 설계까지 세세한 부분이 담겼다. 특히 소유의 경우 사유권을 인정하되 공동체 다른 참여자 권한도 부여했다.


한 예로, 협약서는 “개별공간은 참여자 별로 소유하고, 이때 부지에 대해서 각자의 지분만큼 분리하여 소유”한다고 규정했다. 또, “참여자는 건물 전체의 등기가 완료된 날로부터 5년간 보유하며, 예상치 못한 이주사유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잔여기간 전세나 월세 등 임대를 할 수” 있으며 “해당기간 이내라 하더라도 참여자 또는 입주자에게는 예외적으로 매도할 수” 있다고 세부 사항을 정했다.      


강 총무는 “돈을 만드는 건 사람”이라며 “돈을 먼저 생각하고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예산과 운영계획을 세우되, 절대로 변수를 다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전체 규모가 크기 때문에 이자율이 0.1%만 올라도 각 참여자가 부담해야 하는 재정 부담은 매우 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림>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 공동체공간 주민자산화 계획    자료 : 김복남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 이사

  

공동의 문제 해결 위해 모여 사회적협동조합 설립     

    

홍은둥지에선 이러한 과정을 함께 겪어낼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 자금 모집보다 먼저 진행됐다.


홍은둥지 입주자이자 건물의 위탁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변 국장은 2011년 서대문 주민 모임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 어린 아이가 있는 부모 참여자들은 모임에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는데, 뒷풀이 때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술집이나 식당 같이 어른들 위주의 장소로 아이들과 함께 가야 했다.      


“아이들이 같이 있을 공간 있으면 좋겠다, 아이 때문에 참여 어려운 사람들 참여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모임에서 거북골마을사랑방을 만들게 됐어요. 처음에 어린이집을 만들려고 여기저기 터전을 알아보다가 거북골로에 있는 한 집 발견해 계약했는데, 구청에서 실측해보니 위험시설로 분류되는 주유소가 딱 50미터에 걸리는 거예요. 계약한 어린이집 터전의 집주인은 무를 수 없다고 하고, 1000만원 계약금을 날리게 된 상황에서 내가 그 집 2층으로 이사 가서 보증금을 대고 1층은 주민들의 사랑방과 공동사무실로 쓰면서 월세와 약간의 운영비를 부담하기로 했죠”      


2013년 사랑방을 연 후 운영진은 1층의 방 1개는 공동입주사무실로 공유했다. 나머지 방 1개와 거실, 부엌, 마당은 누구든 쓸 수 있게 개방했다. 공간 사용시엔 1인당 1시간에 1000원씩 후원금을 받았다. 공동입주단체들의 사용료와 주민들의 공간후원금으로 기본 운영비는 마련했지만 인건비까지 나오지는 않았다.


운영진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일손을 보탰다. 사랑방 운영과 함께 점차 관계망이 넓어졌다. 입주 단체들도 늘었다. 점점 공간이 비좁아졌다. 2년 주기로 재개약할 때마다 월세는 올랐다. 그나마도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높아졌다.


2017년, ‘월세 내느니 이자를 내더라도 이제는 자산화를 시작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렇게 시작된 ‘홍은공동체주택’은 이후 마을 주민 공동의 공간 ‘홍은둥지공동체주택’으로 논의가 확대됐다.      

    

2018년 들어선 또 다른 아이디어가 보태졌다. 주민공간을 누구의 소유도 아닌 지역 주민의 것, 지역의 자산으로 남기려면 공간 운영의 주체를 공공성 높은 사회적협동조합하자는 의견이었다. 사랑방의 운영진들이 협동조합의 설립 준비의 실무를 맡았다.


그간 사랑방을 중심으로 모인 관계망을 바탕으로 더욱 더 많은 조합원이 모였다. ‘마을에 기댈 언덕이 되겠다’는 뜻을 담아 마을언덕사협이 설립됐다. 2019년 3월 국토부 인가를 받았다.      


주상복합아파트와 홍은둥지를 비교하자면, 관리사무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 마을언덕사협이다. 물론, 관리사무소와는 지위나 역할이 다르다. 마을언덕사협은 공동체주택의 입주자 중 하나로서 의사결정 때 투표권을 가진다. 또, 공동체 공간운영과 건물 관리자 역할뿐 아니라 주민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한다.    

  

마을언덕사협은 2019년 9월부터 3개월 동안 동네 의제를 발굴하는 지역 조사 사업을 벌였다. 변 국장은 “공론장을 열어 의견을 모았는데, 특히 공간과 프로그램에 관련된 것이 많았다”고 전했다. 도서관 등 문화시설은 남가좌동 쪽으로 가거나 서대문구청까지 나가야 이용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주민 욕구에 기반해 마을언덕은 2020년부터 동네대학, 동네연구소 같은 문화, 교육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먼즈가 동네 우물 같은 것이라면, 맞아요. 우리는 커먼즈에요. 우리는 동네 우물터 같은 공간 만들고 싶어요. 동네 욕구 조사하면서 그런 욕구 많이 발견했어요.”      


마을언덕사협과 홍은둥지 운영진, 협동플랫폼까페 ‘이웃’은 아직 풀지 못한 문제가 있다. 운영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수익구조 확립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1, 2층의 운영진들은 해외 사례를 연구하고 전략 워크숍을 열며 방법을 찾고 있다.      


“그래도 대관료 낮춘 건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주민들이 부담을 덜 느끼니까 더 많이 이용하시더라구요. 홍은2동 주민이나 협동조합원은 50% 할인 혜택도 있어요. 뜨개질, 민화, 시니어댄스 등 재능 있는 주민들이 자원봉사로 진행하는 특강과 모임도 생겼어요.”     


“목 마른 자들이 혼자 우물을 파게 두지 말라”

사회적 부동산관리조직 제도화 필요     


여기에 이르기까지 홍은둥지 입주자들과 사협 조합원들은 몇가지 과제를 풀어야 했다. 서울에서 살기에 합리적인 주거비용으로 안정적인 내 집을 마련하게 하기, 입주자들이 마을에서 고립되지 않고 어울려 살 수 있게 하기, 들어가 살 사람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건축과정 만들기 등등.      


그 중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비용 조달이었다. 강 총무는 “높은 이자 비용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주민 자산화를 위한 금융 확보에 큰 물꼬가 터지지 않는 한, 자치구나 광역단위의 행정적 지원만으로는 자유롭고 역동적인 주민 자산화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홍은둥지의 경우, ‘목 마른 자들’ 즉 공간에 대한 욕구가 큰 주민들이 공동체 공간이라는 ‘우물’의 첫 삽을 떴지만 이들은 이내 엄청난 재정 부담에 부닥쳐야 했다. 32억 원 규모의 사업비는 월급쟁이 몇 명이 모을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다. 강 총무는 “주민 자산화는 결코 목 마른 자들만이 우물을 파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자산화라는 말로 주민들의 생고생을 미화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자산화는 지역의 공동체공간을 진짜 주인인 주민들이 돌려받는 과정”이라고 강 총무는 강조했다. 그는 “토지 및 부동산의 사유화 때문에 주민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건 주민들에게 책임이 있지 않다”며 “주민들이 민주적인 운영체를 지속가능한 사업방식을 통해 조성하고 운영해나갈 역량을 조성한다면 행정은 그 하드웨어를 위한 조건들을 지원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제 해소를 위해 부동산문제 연구자들은 사회적 부동산 관리조직을 법제화,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토연구원이 2018년 발표한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기반 자산관리조직 도입 방안 연구 : 사회적 부동산관리조직을 중심으로’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사회적 부동산관리조직을 “지역공동체가 부동산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부동산 임대 및 운영조직”이라고 정의한다. 또 “지역공동체가 사회적 목적을 가진 부동산의 소유·운영자가 되어 사회적 임대업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지역 주체들의 활발한 활동을 지원하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자료: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기반 자산관리조직 도입 방안 연구, 국토연구원, 2018

 

이 연구보고서는 “저성장과 인구감소 등 여건 변화에 따라 기존의 대규모 부동산개발방식으로부터 중소규모 개발방식으로, 개발‧공급에서 임대‧관리‧리모델링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며 “양극화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역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지역 내에서 공유되어 선순환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이러한 구조 구축을 위해 지역에 기반한 자산관리조직의 도입이 필요하며 그 주체로 사회적경제조직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주민들은 부동산 매입 및 개발사업 추진과 운영‧관리에 대한 전문성 이 부족하며, 특히 자금조달 전문성 부족으로 자체 자금조달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조직 운영에 주민고용을 통해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조직 설립·운영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교육훈련과 컨설팅과 함께 사회투자 등 자금조달을 연계할 것, 사회적 부동산 운영 주체의 독립적 관리권한을 확보해줄 것을 공공 부문에 주문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회적 부동산에 한해 자금 조달 제한을 완화하는 일이다. 보고서는 “크라우드펀딩 제한 업종에서 사회적 부동산업을 제외하여 원활한 자금조달을 지원할 것”을 제안했다. 사회적 부동산 프로젝트 관련 크라우드펀딩 투자자들에게 엔젤투자에 준하는 세제 혜택을 부여하며, 펀딩 성공시 국토교통부의 매칭펀드를 제공하거나 크라우드펀딩 관련 수수료을 지원하자는 아이디어도 내놨다.


아울러 공공 부문이 사회적 부동산업 창업의 액셀러레이팅 역할을 직접 수행하거나 수행 주체를 육성해야 하며, 전용 모태펀드를 조성하여 지원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홍은둥지는 자산 풀링pooling, 민주적 지배구조, 수익 및 혜택 분배에 있어 커먼즈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울처럼 땅값, 건물값이 비싼 대도시에서 홍은둥지 같은 사례가 다시 나오려면 그 만한 자금 부담을 감당하는 데 동의하는 주민들이 모여야 한다.


홍은둥지만 해도 사업비 32억 원 중 24억 원을 대출로 충당하면서 입주자들의 이자 부담이 높아진 상태다. 국토연구원 제안처럼 전용 모태펀드 등 공공 부문의 지원을 받았다면 부담이 낮아졌겠지만, 관련 법이나 조례는 아직 발의조차 된 적이 없다.     

 

공간 커먼즈를 통해 주민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아직은 스스로 우물을 팔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런 이들에게 강 총무는 이렇게 조언했다.      


“서울에서 주민 자산화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2년간의 과정 동안 단계마다 겪어야 했던 일은 짧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주민공동체 공간에 대한 꿈을 꾸고 그 실현을 시작했다면, 사람들과 그것을 헤쳐나가는 데서 기쁨을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홍은둥지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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