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커먼즈 <3-1>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의 공간커먼즈
가빈 양은 11살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방과 집의 구조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다락이 있는 집이었다. 어른들이 건축을 결정하자 가빈 양도 얼른 참여했다. 건축설계사와 설계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공사가 진행될 때는 직접 현장에 나가 현장소장, 인테리어 전문가와 의견을 나눴다.
가빈 양이 현장에 나와 둘러보면 전문가들도 긴장했다. 화장실은 물론이고 전체 집 이미지를 가빈 양이 정했다. 때로는 어른들의 심각한 대화에도 끼었다. 그렇게 완성된 집으로 이사 간 날, 가빈 양은 말했다.
“꿈을 이뤘다!”
10대 소녀가 자기 살 집 설계에 참여하다니, 어느 부잣집에 대한 얘기 같은가? 아니면 어느 비범한 소녀에 대한 얘기 같은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서울 홍은동에서 각자 전월세 보증금 정도 되는 돈을 들고 함께 건물을 지은 일곱 집과 두 개의 법인, 그리고 이를 함께 한 이웃주민들에 대한 것이다.
가빈 양은 그 일곱 집 중 한 집의 평범한 딸이다. 그가 11살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원하는 집에 대해 꿈 꾸게 된 건 어른들이 공동체주택에 대해 나눴던 말을 곁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2011년, 서대문 지역에서 마을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2년 하반기부터 부모들이 직접 운영하는 대안적인 어린이집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생겼고 마을 주민들도 동참했다.
그러다 위기가 왔다. 어린이집을 세우려 계약한 곳이 구청의 인가 불허로 계약금을 잃을 판이었다. 마을주민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결론은 어린이집 대신 아이와 함께 모임을 할 수 있는 마을공간, 사랑방을 만들자는 것.
이렇게 해서 2013년, 거북골마을사랑방이 생겼다. 마을사랑방에 주민들이 모이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가 싹텄다.
‘임대료 내느니 보증금 모아 공동체주택을 세워보자.’
27차례의 워크숍, 사업 중단, 추가입주자 모집, 사업 재개, 건축 시작, 입주자 협약서 합의, 사회적협동조합 설립, 입주. 입주자회 결성에 이르기까지 100차례가 넘는 워크숍이 진행됐다.
2년 남짓한 험난한 여정 끝에, 일곱 가정엔 집주인이 보증금 올릴까 봐 불안해할 필요 없는 내 집 같은 새 집이 생겼다.
홍은동 주민한테는 한 시간에 1만 원으로 빌릴 수 있는 널찍한 마을부엌 겸 거실이 생겼다. 주민이 주인인 카페도 열렸다. 마을언덕홍은둥지공동체주택(이하 홍은둥지)는 그렇게 2019년 7월 문을 열었다.
2019년 12월4일 오후 2시, 서울시 서대문구 가좌로77에 자리 잡은 홍은둥지에 찾아갔다. 건물 벽엔 ‘노동자존감 회복프로젝트, 푸드테라피, 미술테라피’, ‘즐거움도 농익는다, 라인댄스 동호회 모집’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공간 대여 19명 이하 1시간당 1만원, 20명 이상 1만5000원…1박2일 워크숍 20만 원’, ‘홍은2동 로컬랩 문제정의공론장-우리 동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뭘까요?’ 안내는 입간판으로 입구 옆에 세워져 있었다.
내부는 개소식을 한 지 4개월 된 곳답잖게 북적였다. 1층에선 카페를 종일 대관한 인근의 명지대 학생들이 영상 상영회를 준비고 있었다.
2층 마을부엌 겸 거실에선 60대 여성들이 모임을 하겠다며 변경미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이하 마을언덕사협) 사무국장과 상담하고 있었다.
이 공간엔 부엌과 거실 사이에 유리로 된 접이식 문이 있었다. 문을 닫으면 애들이 인덕션 등 위험한 조리기구에 오지 않도록 차단하되 유리를 통해 지켜볼 수 있다. 어른, 아이가 함께 모일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2층 엘리베이터 앞에선 전미옥 마을언덕사협 이사장이 옷걸이에 빽빽이 걸린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전 이사장은 곧 열릴 벼룩시장에 내놓을 옷들이라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 앞 공동입주사무실 안엔 벽을 따라 책상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안에서 분주한 타이핑, 조근조근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언덕사협을 비롯해 9개 법인이 함께 쓰는 사무공간이다.
보태기교육컨설팅협동조합, 통소비자협동조합, 공생사회적협동조합, 서대문주거복지센터, 풀뿌리여성주의단체 ‘너머서’, 가재울협동조합, 열린사회시민연합, 사단법인노동희망 등 모두 협동조합이나 비영리시민단체들이다.
가정집이 있다는 3~6층과 지하 공간만 오후의 주택답게 고요해 보였다. 집 안을 궁금해하자 변경미 마을언덕사협 사무국장이 내부를 설명해줬다.
“공동체부엌처럼 개별주택도 들어가서 쓸 사람들이 직접 원하는 대로 설계했어요. 화장실, 부엌 구조가 집마다 달라요. 어떤 집은 일반 가정식, 어떤 집은 호텔식. 그 과정에서 입주자들이 서로 양보도 많이 했어요. 저희 딸이 다락을 갖고 싶어 하니까 윗집 분이 선뜻 베란다 쪽으로 바닥이 높아지는 걸 허락해주셨고요, 옥상 집을 쓰고 싶어 하던 어떤 분은 애완견이 있는 집에 양보해주셨고요. 집집마다 자기 가족의 필요와 욕구를 반영해서 지었어요.”
홍은둥지는 토지 면적 294.5㎡(약 89평)에 지하 1층, 지상 6층 등 연 면적 973.57㎡(약 294평)짜리 규모 건물이었다. 사업비만 토지 매입비 19억 원을 포함해 32억여 원이 들었다.
일곱 가구와 법인 두 곳이 전월세 보증금 정도의 돈을 들고 모였는데 어떻게 이런 규모의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거기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건축의 목표가 사유화보다는 주민자산화에 있었다. 이에 공감한 주민들이 출자와 대출로 재무 부담을 덜어줬다. (홍은동 주민들의 공간커먼즈 이야기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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