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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숙이 Sep 16. 2021

5000원의 기적
"여러 사람이 여러 사람을 돕는다"

한국의 커먼즈<2-1>3억 원 '쪽방촌은행' 만든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 이야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5000원씩 모아 만든 ‘55억 원’의 기적에 대한 것이다. 


그렇지만 매달 꼬박꼬박 순수보장성 보험료를 몇만 원씩 내다가 만기가 된 후 한 푼도 받지 못한 경험이 있는 사람, 없는 돈 쪼개 은행 적금 열심히 붓다 급히 돈이 필요해 적금 깨고 대출 받으려 하니 신용이 모자란다고 거절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이야기를 읽고 같은 꿈을 꿀 수 있다. ‘공제’라는 금융의 오래된 미래에 대한 꿈을 말이다.      


상상해보자. 내가 건강해서 받지 못했던 회비의 이익을 보험사 대신 내 아픈 이웃이나 동료가 받게 할 수 있다면? 한 달에 5000원, 1만 원씩 여럿이 모으다가 내가 급할 때 50만 원 목돈을 빌릴 수 있다면? 


한 달 보험료는 1000원씩 1년에 1만2000원을 내는데, 내가 아파 의료비가 필요해지면 30만 원을 주는 소액 보험상품이 있다면? 돈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 가난한 동료나 이웃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꿈 같은 일일 것이다.      

2009년 3월, 돈 없는 사람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 모여 그 꿈을 먼저 꾸기 시작했다. ‘군인공제회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공제회가 있다면 어떨까’. 


그 다음 해부터 한 달에 5000원, 많게는 1만 원씩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2019년 11월, 55억 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은행처럼 한 곳에 모은 건 아니었다.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마을의 38개 주민협동회에 45억여 원, 주민협동회가 함께 사업하려고 만든 중앙주민협동연합회에 10억 원이 있다. 그 돈은 때로는 급전 대출로, 때로는 의료부조로 회원에게 돌아온다.  

    

회원들은 대부분 월 51만 원의 생계급여를 받는 기초생활수급자거나 월 139만 원의 자활급여를 받는 자활근로자들이다. 한 회원이 “(쪽방)임대료 월 30만 원 내고 나면 식비 말곤 담뱃값도 안 남는다”고 할 정도로 빠듯한 급여다. 


그렇지만 거기서 5000원, 1만 원씩 쪼개내면 자신뿐 아니라 자기 이웃도 도울 수 있다는 걸 체험한 회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혼자서 혼자를 돕는 건 힘들어요. 여러 사람이 여러 사람을 돕는 게 편해요.(김선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     

  

2019년 12월, 주민협동회 중 한 곳을 방문했다.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이하 협동회)다. 쪽방 1200여 곳이 빽빽하게 들어서 ‘동자동 쪽방촌’이라 불리는 서울역과 남산 사이 동네에 있는 자조모임이다. 


이 모임은 서울시 용산구 후암로 91-5번지 ‘동자동 사랑방’과 한 집을 쓴다. 세 칸 방 중 두 칸은 사무공간, 가장 넓은 칸은 주민들 공간이다.      


한 시간쯤 앉아 있다 보니 전국주민협동연합회(이하 연합회)의 유유미 상임이사가 ‘동자동 사랑방에서 가장 많이 나가는 돈이 봉지커피 구매비’라고 했던 말이 실감 났다. 짧은 시간에도 많은 주민들이 드나들며 물을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고 갔다. 사랑방 앞 의자에 앉아 볕바라기를 하거나 수다를 떠는 주민들도 있었다.      


2019년 10월 기준으로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의 출자금은 총 3억1623만 원에 이르렀다. 한 달 동안 출자금으로 들어온 돈은 1517만여 원이었다. 대출 상환금으로 817만여 원이 돌아왔고, 대출금으로 637만여 원이 나갔다. 


상환율은 87.8%를 기록했다. 12명이 가입했고, 15명이 탈퇴했다. 회원수는 445명. 2011년 3월 창립 때 150명이었던 데 비해 3배가 늘었다.      


이사회와 부탄가스 공동구매 등 지난달 사업내용, 160여 명의 출자회원과 12명의 신입회원 명단, 100회차에 이른 마을 청소 모습들, 한 회원의 장례식에서 명복을 비는 다른 회원들 모습…. 


A3용지를 반으로 접어 만든 소식지는 회원들 이야기로 꽉 차 있었다. 이 협동회의 선동수 간사는 "매달 소식지로 협동회 소식을 회원들과 주민들한테 전한다"고 말했다.      


이 협동회의 사업은 크게 6가지다. 회원 상호부조, ‘천원의 행복’ 등 연합회 사업 참여, 교육을 통한 주민지도자 양성, 쪽방살이에 긴요한 ‘부탄가스’ 공동구매, 마을 청소. 그리고 공동 차례상과 영결식, 장례식 같은 각종 행사. 


가족인 친척 공동체가 하는 일을 대신 하는 듯한 이들의 사업 목록은 ‘이웃 사촌’이라는 옛날 말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당연히 많은 일이 있었다. 한때 이사장의 공백을 대신했던 조두선 부이사장은 ‘억울한 말’을 많이 들은 나머지 병 져 눕기도 했다. 


당시 회원들의 불신은 ‘내가 낸 회비가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결론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그 불안의 근본을 파고 들면 법·제도적 공백이 나온다.      


여하튼 남은 회원들이 나서서 탈퇴하겠다는 다른 회원들을 설득했다. 아직 가입하지 않은 주민들의 쪽방 문을 두드리고 ‘방 청소라도’ 해주며 참여를 이끌었다. 2018년엔 조직 이름을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로 바꾸고 유영기 신임 이사장을 선출했다. 회원수가 다시 회복됐다. 꺼져가던 협동의 불씨가 살아난 것이다.   

   

동자동에서 산 지 곧 10년이 될 것이라는 유 이사장은 ”우리 협동회의 목표는 나아지는 게 아니라 지켜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지켜내려는 것은 ‘협동회’의 존재 그 자체다.      


”아파서 병원 가면 (기초생활)수급자라 해도 자기 돈이 들어요.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약은 부담이 커요. 그럴 때 의료비를 대출해줘요. 출자를 3번 이상 하면 10만 원까지 돼요. 때로는 돈 갚을 수 있다고 하면 이사들이 보증 서서 빌려주기도 해요. 28만 원까지 빌려 간 사람도 있어요. 6개월 이상 10만 원 이상 출자하면 50만 원까지 대출해줘요. 절대 안 갚지는 않습니다. 그게 어떻게 모은 돈인지 서로 아니까요.”    

               

긴요한 물품은 함께 조달한다. 2015년 마을행사 때부터는 부탄가스를 대량으로 공동구매했다. 소매점에서 1200원에 파는 부탄가스를 경동시장에서 원가에 사와 1000원의 이윤을 붙여서 판다. 그래도 시중가보다 개당 200~300원 싸고 인터넷 최저가보다도 싸다. 


선동수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간사는 “2013년부터 우리 마을에 맞는 공동구매 품목에 대해 논의했다”며 “이러한 사안들은 계속적인 논의와 경험을 바탕으로 회의를 통해 협동으로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동회가 필요한 건 돈 때문만은 아니다. 한두 평짜리 쪽방에 혼자 머물던 주민들에게 협동회는 ‘이웃지간’의 관계망,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준다. 


김정호 사업이사는 시시때때로 ‘필요한 거 있나?’ 하며 주민들 방문을 연다며 “그러면 찾아 오라 안 해도 찾아온다”고 했다. 


주민 방문은 협동회 전현직 임원들 등 동자동 주민지도자들이 직접 작성해 2019년 정기총회 때 낭독한 ‘공동의 약속’이기도 하다. 그 약속 중 한 조항이 독특하다. 


“늘 주민들과 인사하며 같이 놀아주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동자동 쪽방촌에는 혼자 살더라도 심심할 때 만날 사람, 마실 갈 공간, 혼자 죽더라도 시신을 거둬줄 이웃이 생겼다. 김 이사는 “혼자 사시던 회원이 돌아가시면 우리가 모시고 가 화장하고, 뼛가루 들고 와 예식 치르고 부고를 붙인다”고 말했다.     

 

“추석마다 공동 차례상을 차리고 그해 돌아가신 분 영결사진을 걸어둬요. 아시는 분 계시면 술이라도 한잔 올리세요, 하면서요. 이거라도 안 하면 누가 돌아가신 줄도 몰라요. 서울 공영장례에 건의해서 무연고자 시신을 2구 이상 포개 싣는 걸 막고, 수의를 입히게 한 것도 우리예요. 가시는 길에라도 대접받으며 가시게요.”


운영 예산은 늘 빠듯하지만 협동회는 대기업 사회공헌 파트 후원금 같은 건 받지 않는다. 회원인 주민 혹은 협동조합 같은 다른 사회적경제 조직의 후원만 받는다. “(후원에) 기대게 될까 봐, 혹은 싸움이 날까 봐서”. 즉, 자조의 원칙을 깨지 않기 위해서다. 매달 나오는 소식지 1면은 협동회의 설립 목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회원의 저축성을 함양한다. 회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과 삶의 질을 높인다. 함께 협동하여 스스로를 돕고 나누는 공동체 정신을 실천한다.’      (금융커먼즈,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CC_BY  #이 저작물은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공동진행 연구결과입니다.저작자명 및 출처, CCL 조건만 표시한다면 제한 없이 자류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사진 설명 :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가 자리 잡은 동자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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