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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Aug 22. 2019

155cm, 56kg

"아빠"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아빠의 모습이 내 기억 속에 처음으로 자리 잡은 때가 언제였는지 알 수 없지만, 방바닥에 엎드려 한자(漢字)를 열심히 써 내려가시던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덕분에 나도 천자문을 좀 외우고 한자를 꽤 알던 학생이었다.  지금도 아빠는 책상에 천자문을 놓아두고 가끔 한자를 쓰시고, 뭔가를  끄적이는 걸 좋아하신다.  책을 좋아해서 버리는 걸 싫어하고,  읽지는 않아도 책꽂이에 꽂아놓고 부자가 된 뿌듯해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어쩌면 우리 형제들이 책을 잘 버리지 못하는 건 유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래된 집을 수리하고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갈 때 내가 쓰던 책상과 책장을 둘 곳이 없어 아빠 방에 들여놓게 되었는데 '평생소원이 이뤄진 거 같다'며 좋아하셨다.  항상 그런 서재 분위기 방을 갖고 싶었다고 하시며.  사실 그 책들은 모두 내 책인데 마치 자신의 책이라도 된 것인 양 기뻐하시며 비어있는 책장에 가족앨범과 족보를 고이 꽂으셨다.  가끔 방에서 뭐하시나 열어보면, 책장 옆 1인용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책을 보시는 모습을 본다.  분명 들고 계신 책은 페이지를 쉽게 넘길 수 없는 책인 것 같은데, 그런 자세로 책을 보는 그 상황 자체를 즐기시는 것 같다.  배움이 많지 않았던 아빠는 마음에 남아있던 결핍을 그렇게라도 해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빠에 대한 다른 기억은 귀를 파주시던 모습이다.   아빠 무릎을 베고 누우면 조심스럽게 귀를 파주셨는데, 그 손길에 항상 잠이 스르르 들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사 남매 모두의 귀를 자주 파주셨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난 귀지를 자주 판다.  혹자는 파낼 필요 없이 놔두면 된다고 하는데  정기적으로 귀를 파는 일이 습관화되었다. 그리고 나도 남의 귀 파주는 걸 좋아한다.  조카들을 붙잡고 파준다고 하면 질색하며 싫어하는데,  억지로 달래어 귀지를 꺼내고 큰 귀지를 보면 기분마저 시원해진다.  


그리고 아빠는 손아귀 힘이 무척 셌다. 어깨가 아프다고 하면 강한 손 힘으로  시원하게 안마를 해주다.  그걸 닮아서인지 나도 손 힘이 센 편이다.  내 손이 세다 보니,  발마시지를 받거나 할 때 강도가 웬만큼 세지 않으면 만족을 하지 못한다.  어느 날 내 손으로 내 어깨를 주무르는 모습을 보시고 "내가 해줄게" 하시는데 이제는 아빠의 손에서 그런 힘을 느낄 수  없다. "좀 더 세게 해 봐요"라고 주문하거나 "하나도 시원하지 않아"라고 나도 모르게 툴툴 거리는 소리를 하면 아빠는 "이렇게 세게 하는데?" 라며 "이젠 늙었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슬프게 들리며 미안해진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이제 할아버지다.  내게 "아빠"는 계속 "아빠"니까 나이 드신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또 내가 나이 먹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렸을 적 했던 행동 그대로 아빠를 대해왔다. 무릎이 좋지 않아 걷는 속도가 느려졌지만  자전거로 이동하는 건 불편함이 없어 보였고, 말소리를 잘 듣지 못하시지만 TV 소리는 지장 없이 들으셔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무거운 걸 들어야 할 때면 본인이 들을 테니 비켜서라는 말에 별생각 없이 그렇게 했다. 그러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위해 병원에 가신다고 하여 같이 갔다. 수면내시경을 하니 혼자 가시는 것보다는 가족과 같이 가는 것이 좋고,  말소리를 잘 듣지 못하시니 도와드리기도 해야 하니까. 간호사의 질문에 이것저것 대답하고 키와 몸무게를 쟀다.  키 155cm, 몸무게 56kg.  '아! 아빠가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구나!' 평소엔 잘 느끼지 못했던 외적인 모습에 갑자기 아빠가 더 나이 들어 보였다.


간호사의 수면내시경 준비를 위한 절차를 설명 듣고 오자 아빠가 물으신다. "뭐라고 하는 거야?" 난 간호사가 했던 말을 반복하여 설명드렸는데 잘 못 알아들으셔서 조금 큰소리로 다시 설명을 드렸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또 물으시길래 약간은 짜증 섞인 소리로 다시 설명을 드리며 아빠의 눈을 보았다. 그 순간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걱정 어린 표정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을 하고 있는 아빠. 총기가 사라진 눈. 마음을 가다듬고 좀 더 친절한 목소리로, 잘 들리실 수 있게 더 가까이 다가가 설명을 드리고 아빠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혼자 들어가셔도 자고 나면 다 끝났을 거예요"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신다.


문득 20대 때 직장에서 만난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애처럼 엄마, 아빠라고 부르냐. 어머니, 아버지라고 어른스럽게 불러야 된다"라고 했던 말. 무슨 꼰대 같은 소리인가 했는데,  '이렇게 덜 자란 어른의 마음을 하고 있던 건 호칭의 문제였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버지"라고 불렀다면 좀 더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었을까? 하지만 그 호칭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못 쓸 것 같다.   "아빠"는  신나고 즐거운 일이 생겼을 때, 자랑하고 싶은 일이 생기거나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뭔가 기대고 싶고 부탁을 들어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할 때 등등 언제나 든든하게 부르던 단어다.  그 단어에는 심적 안정감이

들어있기 때문에 내가 할머니가 된다 해도 결코 바꾸어 부르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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