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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Jan 25. 2022

사춘기와 갱년기

1. 사춘기와 갱년기     

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갱년기가 이긴다는 우스개 얘기가 있다. 아마도 힘으로 겨룬다면 사춘기가 이기겠지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심정적 측면에서는 갱년기가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 때 특별한 이유도 없이 화가 나고 누군가 말 걸어오는 일이 싫어서 혼자 있던 사춘기 시절의 반항적인 젊은 기운은 지금 갱년기의 우울, 분노, 불안한 마음에 비하면 참 많이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다.      


사춘기가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이라면,

갱년기는 늙음의 진통인 것 같다.      


사춘기를 겪지 않고 부모와의 힘든 싸움의 시기도 없이 무난하게 보낸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갱년기도 잘 모르고 지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우리 엄마처럼. 엄마는 불안함에 잠을 못 잔 적도, 갑자기 더워지거나 얼굴 홍조 현상으로 힘들었던 적도 없다고 하신다. 엄마 딸인 나는 그런 유전적 요인을 닮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유별나다고 할만한 사춘기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가족들에게 큰소리로 화를 내고 문을 쾅쾅 닫고 조금은 폭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기에 어렵다고 느낀 건 혼자 결정하는 일이었는데, 어떤 날에는 대신 결정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여긴 적도 있다. 부모님이 이렇게 하라고 알려주면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던 어린 시절을 지나,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시는 말씀에 반기를 들며 나와 맞지 않다고 하고 내가 할 일이나 갈 길이 아니라며 반항하고 부모님이 일러주신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고 외쳐대며 모진 말도 내뱉었지만, 정작 스스로는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사춘기 시절.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불안하던 때. 그런 두려움, 의문, 불안함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안정되기 시작하여, 친구들을 만나며 생각을 키우게 되었고 가야 할 방향을 자연스럽게 내 안에 축적시키며 해소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십수 년을 잘 살다가, 이젠 갱년기를 만나 육체적으로 늙어감에 따라 생기는 변화에 놀라고 슬퍼지는 마음을 다독이며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고 되뇌지만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과 충돌하고, 내가 어찌할 도리 없이 생기는 호르몬의 작용에 사춘기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20대가 되어 사춘기 시절의 반항적인 마음이 누그러지고 앞을 향해 매진하며 살았듯이 갱년기를 잘 버티고 지내면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어른으로 늙어갈 수 있을까?      


2. 노화현상으로 통칭되는 것들       

요새는 몸의 어딘가가 아파서 병원을 찾으면 가장 흔히 듣는 얘기가 노화현상이라는 것이다. 수년 전에, 눈앞에 검은 날 파리 같은 것들이 날아다녀 안과를 찾았을 때, 의사는 “저도 비문증이 있어요.”라고 하면서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약이 없다면서 노화현상 중의 하나라고 했다. 몇 주간 지내다 보니 의사 말대로 그 검은 날파리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주 하얀 바탕의 어떤 것을 보게 되거나 밝은 곳에 있을 때는 가끔 보였지만,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

 

3년 전에는 눈앞에 까만 것이 내려와 놀라서 병원에 갔는데 “유리체가 젤 타입인데 물처럼 녹아서 떨어졌다”라고 하며 노화현상이라고 했다. 망막을 건드리지 않아 시력에는 이상이 없어 다행이라고 하며 유리체를 회복시키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그냥 이대로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고. 처음 몇 주간은 눈 옆으로 불빛이 번쩍거리고 실내 불빛이 너무 강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나니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이 상황도 적응하며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


재작년에는 출근을 준비하며 재킷을 입다가 왼쪽 어깨에 갑자기 끔찍한 통증이 느껴지며 팔을 올릴 수 없게 되었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회전근개 염증”이라며 아파도 스트레칭을 하라고 자세 몇 가지를 알려주고 물리치료를 몇 번 받으라고 하며 소염제를 처방해 주었다. 이것도 노화현상이라고 하며 회복이 되더라도 백 퍼센트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물으니 “넌 이제야 어깨가 아프니”라는 반응이었다. 모두 1년 정도 있으면 낫는다며 약도 물리치료도 주사도 다 소용없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괜찮아지고 반대쪽 어깨가 아파질 거라고 했다. 그래도 열심히 물리치료받고 저주파 레이저에 침도 맞고 약도 먹고 했는데 그럴 때는 다 소용없다가, 운동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며 보내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고 팔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 정말 1년이었다. 뒤로 넘길 수도 위로 쳐들 수도 없었는데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등 뒤로 양손을 맞잡을 수 있게 되었다. 어깨 아프기 불과 며칠 전에도 식은 죽 먹기로 등 뒤에서 양손을 맞잡았었는데, 그렇게 다시 되기까지 1년이나 걸리다니. 그래도 영영 못 할까 봐 우울했었는데 돌아와서 다행이었지만,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100% 돌아오지는 않았다. 양팔을 쳐들면 미세하게 왼쪽은 가슴까지 딸려 올라간다. 트레이너 말로는 근육을 같이 당기는 거라고 한다. 그래도 이만큼 회복된 게 얼마인가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왼쪽 어깨가 나아져서 좋아하고 얼마 안 되어 오른쪽 어깨가 살짝 아파져 왔다. 초기부터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며 아프지 않으려고 운동하고 있어서인지 왼쪽 어깨만큼 심각해지고 있지는 않다.


몇 해 전부터는 건강검진을 하고 나면 수치들이 몇 가지 좋지 않게 나오고 있는데 그중 콜레스테롤이 높아서 약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에게 가니 고지혈증이라고 하며 하루 한 알 평생 약을 먹여야 한다고 했다. “평생이요?”라며 놀라니 너무 거부감 느끼지 말고, 영양제 챙겨 먹는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을 가지라고 권했다. 비타민, 오메가 3처럼 좋다는 영양제는 잘 찾아 먹지 않냐고 하며 이 약을 먹고 아무 음식이나 먹고 편하게 지내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좀 안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평생이라는 말이 걸려서 “운동이나 음식을 조절하면 어떨까요?”라고 했더니 그렇게 노력해서 조절되는 것보다 유전적 요인이 크고 체질적으로 몸에서 콜레스테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그냥 약을 먹으면서 마음 편히 지내는 게 더 좋다고, 운동과 식단을 하느라 스트레스받는 게 더 안 좋다고 했다. “무병장수가 아니라 유병 장수인 시대이니 병 하나쯤 갖고 관리하면서 사는 시대”라고. 그 의사 선생님의 말씀은 묘하게 설득되는 부분이 있었다. 콜레스테롤은 20대 때부터 높기는 했었는데 이제 나이 들어 그게 몸에서 자체적으로 조절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이것도 노화현상이구나 싶었다.


작년에는 머리카락 사이로 뭔가 오돌토돌한 것들이 만져지길래 피부과를 갔더니 검버섯이라고 했다. ‘검은색이 아닌데요?’ 했더니 검버섯이 꼭 검은색은 아니라고 하며 머라카락 속에 있어 잘 보이지 않으니 놔둬도 된다고, 정 마음에 걸리면 레이저로 치료는 할 수 있는 데 머리를 한동안 감을 수 없고 머리카락 때문에 치료하기도 어렵다고 대수롭지 않게 의사가 말했다. 난 뭔가 종기 같은 게 난 것인가 겁을 먹었었는데 검버섯이라니! ‘ 검버섯은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생기는 게 아닌가?’  의사는 햇빛을 많이 받아서 그럴 수 있다며 흑색종이나 위험한 것으로 발전할 것 같지 않으니 그냥 지내라고 했다.

‘아~ 이것도 노화현상 중의 하나인가?’      


꼭 병원에 가서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아도 경험하게 되는 노화 현상이 있다. 탈모가 심각해지는 것,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더워져 속옷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나는 현상, 탄력이 점점 없어져 팔자주름이 깊어지고 양 볼은 쑥 꺼지고 입꼬리는 점점 내려가는 중력의 힘을 거스를 수 없는 것, 손등의 혈관이 두드러져 보이고 손가락 마디는 굵어지고 로션을 바르지 않으면 거칠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손, 몸이 건조해져 발뒤꿈치에 각질이 생기는 것, 괄약근 조절이 잘되지 않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뀌게 되는 방귀 등등.     


노화현상으로 불리는 이 모든 것들이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다.    

  

급격한 노화의 시기가 갱년기에 일어나는 것인가! 육체가 쇠퇴함에 따라 마음도 우울해지고 화나고 슬퍼졌다가 잘 극복해보자며 으쌰 으쌰 했다가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왔다 갔다 한다.      


과연, 이 시기를 잘 버티면 늙음의 속도가 좀 더뎌지면서 마음의 안정도 찾을 수 있을까?!

의사 선생님들이 “노화 현상“이라고 부른 질병들에 결국 적응하며 살고 있듯이 늙어가는 육체를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달래며 사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슬프지만 자연스럽게, 아쉽지만 긍정적으로 그리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며.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여주인공 춘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항상 몇 년 뒤의 내 나이를 생각해보면 끔찍했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됐을 때 담담할 수 있는 건 나이를 한 살씩 먹어서인가 봐. 그럼 그다음 나이가 낯설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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