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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Mar 01. 2022

코로나19 환자가 되어 알게 된 것 II

2편 : 무리하지 말기, 고마움

무리하지 말기

호텔에서 호캉스 한다는 생각으로 10일을 보내려고 했다. 설 연휴가 길었기에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혼자 가자니 부모님께 설명할 내용이 마땅하지 않았고 같이 가자니 혼자 조용히 보내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어떻게 할까 망설이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확진된 것이다. 호텔 예약을 망설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싶을 정도로, 혼자 시간을 보내라는 어떤 운명 같은 것마저 느꼈다. 입소 다음날부터 노트북을 켜고 일할 준비를 했다. 크게 아프지 않아서 괜찮을 것 같았다. 그룹웨어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서 담당 직원에게 연락했더니 ‘아픈데... 회사일은 잠시 접어두시는 게 어떠냐’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넷플릭스에서 방영했던 ‘지옥’의 리뷰가 떠올랐다. 그 리뷰는 한국인들의 놀라운 점에 대해 언급한 것이었는데, 바로 ‘자식이 오늘 죽는다는 통보를 받고도 일단 출근하는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그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 리뷰에 격한 공감을 했었었다. 아파도 일단 출근은 했던 것처럼, 회사는 웬만하면 가야 하는 곳이라는 뿌리 깊은 생각이 있는 것 같다. 가끔 가고 싶지 않고 일을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미뤄두어 봤자 나중에 출근해서 야근만 하게 될 뿐이니 미리미리 메일 보고 처리할 일을 해 놓는 편이 낫기 때문에, 휴가 중에도 틈틈이 메일을 열어보고는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수십 개, 어떤 때는 100개가 넘는 메일이 쌓여 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질리기 때문에. 그러나 오전에 의기양양하게 시작했던 업무는 오후가 되자 피곤이 몰려와서 도저히 집중을 하기 어려웠다. 팀원과 약속했던 화상회의를 다음날로 미루고 쉬었다. 그다음 날도 오전에만 일하고 오후에는 쉬었다. 꼭 처리해야만 했었던 몇 가지 일은 마감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해도 되는 일인데, 그 말이 또 하기 싫어서 꾸역꾸역 기한 안에 일을 마치느라 힘들었다. 증상은 감기 정도였지만 피곤함과 졸음이 몰려왔다. 연휴 기간 중 하루는 종일 잠만 자기도 했다. 처음에는 책도 많이 읽겠다고 세 권이나 들고 갔는데, 한 권은 손도 대지 못했고 두 권은 중간까지만 읽었다. 홈트 영상을 보면서 운동도 할 계획이었으나 몸이 자꾸 늘어져서 아무 운동도 하지 못했다. 체조만 겨우 했다. 환자는 환자라는 걸 인식하는 일도 중요하다. 괜찮다고 우겨봤자 몸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생치에서 주는 식사는 양이 많아서 세끼를 꼬박꼬박 먹는 일이 고역이었다. 음식물 쓰레기가 분리되지 않고 모두 다 ‘의료폐기물’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전부 먹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더 힘들었다. 나중에는 움직임 없이 먹기만 하니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아서, 퇴소하기 3-4일 전부터는 점심은 먹지 않아도 된다고, 배식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하루 2끼만 받아서 먹어도 하루 종일 배가 꺼지지 않았다.

 

설날에는 떡국, 만두, 약과, 식혜가 나왔다
고마움

10일 동안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일은 의외로 괴로웠다. 워낙 집순이라서 아주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하루 한번 환기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바깥공기를 쐴 수 있는 일이 이렇게 소중한 일이었는가 싶으면서 냄새는 맡지 못했지만, 쌀쌀한 공기의 느낌을 몸으로 느꼈다. 처음에는 추우니까 십분, 이십 분 정도만 창문을 열었는데 나중에는 환기하도록 지정된 2시간 내내 열어두었다.


퇴소할 무렵에는 기침도 많이 잦아들고 목소리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퇴소하는 날, 10시부터 한 사람씩 퇴소가 시작되고 난 11시쯤 나왔다. 객실로 전화가 오면 지시에 따라 혼자 내려가서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고 입소했던 그 길을 따라 나오면 되었다. 패딩은 전날 소독제를 뿌렸다가 입고 나왔다. 지하주차장을 걸어 나오는데, 역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주인공이 어깨에 가방을 메고 폐허가 된 도시로 나아가는 장면이 오버랩되었는데 현실의 거리는 지극히 일상적이었다. 주차장을 다 빠져나와 호텔 건물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확진자가 아니었다면, 이곳이 생활 치료소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정도로 겉으로는 격리시설이라는 표시가 없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기에 걸어서 왔다. 열흘 만에 걷는데도 제대로 잘 걷는 다리가 고마웠다. 이 정도로 무사히 코로나를 앓고 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백신의 주관적인 부작용으로 부스터 샷을 맞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완치하고 나니 맞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3차 백신을 맞고도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는 것을 보면 백신 효과에 대한 의구심도 든다)


회사의 안전 담당 직원이 ‘회사 내 코로나 확진자 상위 10%’에 들은 걸 축하한다고 농담을 건넸다. 지금 회사에서는 거의 매일 1명씩 확진자가 나오고 있어서 직원끼리 점심을 먹는 일이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혹자는 ‘걸릴 사람들 다 걸리고 나야 끝날 것 같다’고 차라리 집단면역이 빨리 생기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하는데, 중증이 아니라 가벼운 감기 정도로만 끝낼 수 있다면 걸렸다가 낫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      

3년 차로 접어든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진정되어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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