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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Jul 23. 2022

끝이 났다, 마침내.

소위 ‘결혼 적령기’ 그리고 적령기를 지나 '결혼을 해야겠다'라고 결심했던 시기에 가졌던 고민 중의 하나는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항상 “손발이 차고 아랫배가 차면 아이 갖기 힘들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한창 배꼽을 드러내는 옷이 유행이었을 때, TV에 나온 어떤 연예인의 옷을 보며 “저렇게 배 내놓고 차갑게 다니면, 나중에 애 낳기 힘들 텐데.. 쯧쯧”하시던, 장소는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전혀 모르던 어느 아주머니의 말씀이 귀에 꽂혔던 기억이 있다. 그렇듯, 우리 엄마와 할머니 세대 어른들은 '여자는 몸이 따뜻해야 한다'는 얘기를 참 자주 하셨다. 엄마도 차가운 내 손발을 걱정하시며 보약을 많이 해주셨다. 보약은 기운을 북돋우는 데는 탁월했지만 손발이 따듯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손발 차가움과 불임의 상관관계가 명백히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어서, 그 충분조건을 갖춘 나는 막연히 아이를 쉽게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다. 더불어 건강함의 척도 중 하나가 규칙적인 생리주기라는 말을 들어왔기에, 초경부터 20, 30대를 지나도록 언제나 불규칙한 주기였던 나는 '아이 갖기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런 염려를 안고, 사십 대에 들어서 산부인과를 처음 가봤다. 건강검진을 위해 산부인과 검진을 받은 적은 있지만, 평소에 갈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임신 가능성을 알아보러 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결혼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자, 그 결심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욕망이었기 때문에, 몸 상태를 알아보고 싶었다. 이미 자연임신을 하기에도 늦은 나이여서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알고 싶었다. 어느 정도의 확률이 있는 것인지.      


남자와 알콩달콩 사는 상상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겠지 하는 생각은 있었어도, 누군가와 한 가정을 꾸리는 일을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종족 번식의 본능’ 때문이었을까?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나의 아이’를 너무 갖고 싶은 시기가 있었다. ‘정자은행 같은 곳을 이용하여 아이만 낳아볼까?’라고 생각했다가,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일까를 곧 깨닫고는 바로 접은 적도 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갖기 위해서는 결혼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이면 결혼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일이니, 정확하게 검사를 해봐야 했다. 검사 결과는 ‘난자와 자궁의 상태가 깨끗하고 건강하지만, 나이가 있으니 쉽게 갖지는 못할 것이다'였다. 나이만 빼면 참 안심되는 결과였다.      


사십 대에 완경을 한 친구가 몇 명 있었다. 이미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이십 대에 접어든 친구들은 ’아주 세상 편하고 좋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저런 마음이 들지?’라며 공감하기 어려웠다. 나는 완경을 상상만 해도 여자가 아니게 되는 것만 같아, 그 상실감으로 우울해졌기 때문이다. 오십 대에 접어들자, 다수의 친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냐며 놀라움을 표시했지만, 정작 나는 끝나지 않은 현실에 안도했었다. 아직 여자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만 같았고, 완경이 되면 에스트로겐이 많이 나오지 않아 각종 질병에 노출된다고 하여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완경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다가 2년 전 산부인과에서 "앞으로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생리가 완전히 끝나게 될 것이다"라는 소견을 들은 후부터 현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조금 우울하고 슬펐지만, 상상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 우울함은 오래가지도 않았다. 어쩌면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더 이상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를 때 느끼게 되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곧 끝이 날 것이다’를 알게 되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미래의 어떤 시간이든, 예측할 수 있다면 덜 불안하니까. 운전할 때 앞을 볼 수 없는 구비구비 길을 가기보다는 시야가 탁 트인 길을 운전하는 것이 더 안심되듯이.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1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의사가 말한 시간이 한참 지나도 끝나지 않으니 내심 '왜 아직도 안 끝나는 거지?' 하며 귀찮아졌다. 원래 월경은 대부분의 여자들에게 그렇다. 하면 귀찮고 안 하면 걱정되는 것. 그러다 드디어 올해 끝이 났다. 아니 끝난 것 같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작년에도 두 달 정도 하지 않아서 끝난 줄 알았지만, 다시 시작했었다. 완경의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친구는 몇 개월을 지지부진하게 끌다가 끝났다고 했고, 어떤 친구는 어느 날 하루아침에 딱 끊어졌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몇 개월 안 하다 하다를 반복하다가 끝났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끝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참 홀가분하고 편하다.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다니 너무 우습다. 여자가 아니게 되는 것만 같아 우울했던 때가 있었나 싶으니 말이다.


친구들이 말한 ‘세상 편하고 좋다’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된다. 내 난자의 삶이 마감되었다는 슬픔보다 더 이상 생리로 인해 운동을 못하거나 목욕탕에 가지 못하는 등등 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기쁘다. 신경이 예민해지고 배는 부풀어지고 식욕도 늘어나 마구 먹는 일을 하지 않아 좋다. 더 이상 옷에 묻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고, 잠잘 때 이불에 묻힐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시간 맞춰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이 너무 편하다. 무엇보다 화학적인 거에 닿지 않으니 몸 상태가 좋아지는 느낌도 있다. 언제 시작할지 몰라 예비로 준비해두었던 생리대를 이제 더 보관하지 않아도 되니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비용도 줄일 수 있으니 좋다.   

   

세상 다 산 것 같은 기분에 우울하고 슬플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자유로운 기분을 느낀다.      

‘끝이 났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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