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따라만 해요
운동과 식단 이야기 VI
2020년 9월부터 PT(Personal Training)를 하기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3년 차, 곧 꽉 채운 2년이 된다. 운동하기를 무지 싫어하던 ‘나’를 봤을 때 이건 엄청난 일이다. 더구나 PT를 계속하고 있다니! 주위 사람도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는 사실보다, 2년 가까이 PT를 한다는 것에 백이면 백 모두 놀란다. “PT는 잠깐 몇 개월 하면서 기구 사용법이나 운동하는 법을 익히는 거 아니에요?", "혼자 하는 법을 알고 나면 안 해도 되지 않아요?"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간혹, “헉, PT 꽤 비싼데! 계속하는 거 좀 부담되지 않아요?”라고 묻거나 눈을 가늘게 뜨고 ‘운동 말고 다른 이유가 있지?’라는 표정을 짓는 친구도 있다.
처음 PT를 끊을 때만 해도 횟수를 다 채우면 그만하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심각해져서 헬스장 폐쇄, 영업시간 단축 등으로 운동을 하다가 말다가 하게 되자 횟수는 차감되고 있는데 운동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침 2:1 PT를 같이 하던 후배는 더하지 않겠다고 하니 내적 갈등으로 고민했다. 그런 와중에 트레이너가 2:1보다 1:1로 하면 내게 맞는 운동으로 집중해서 가르쳐줄 수 있고, 두 사람이 할 때보다 운동시간도 늘어나는 셈이니 효과도 더 잘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서비스 횟수를 더 준다고 했다. 그러면 1회당 단가가 떨어지게 되어 이득 아니겠냐는 말에 설득되어 결국 결제했다.
요가를 제외하고는 운동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헬스장에 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후배 없이 혼자 가려니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나를 움직인 건 절약성이었다. ‘돈을 냈으니 안 가면 손해다’는 생각으로 트레이너와의 운동 약속을 꼬박꼬박 지켰다. 트레이너는 최소 주 3회 정도 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초반에는 주 2회 정도 했다. 저질 체력이라 금방 지치기도 했고, 자세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해 재미도 없었다. 엉덩이에 힘을 주라고 하는데 어떻게 주는지 모르겠고, 배에 힘을 주라고 하면 숨을 참았다. 그래야 힘이 들어가니까. 등 근육 운동에 좋은 ‘랫 풀다운’은 왼쪽 어깨가 ‘회전근개 염증’으로 아팠었기 때문에 할 수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트레이너가 가르치기 참 힘든 회원이었다. 뭐만 하면 ‘무릎 아프다, 손목 아프다, 어깨 아프다’ 했으니 곤란했을 거다. 그런데도 나를 담당했던 트레이너는 싫은 내색을 하거나 타박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손목 보호대를 채워주며 운동을 시켰고 어깨와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동작을 알려줬다. 매번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컨디션은 어떤지를 물어보고 근육을 키우려면 식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얘기를 해주며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내 생에 첫 트레이너는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PT를 하면 근육의 움직임, 자세 교정 등을 위해 트레이너가 몸을 살짝 잡아보게 되는데 처음에는 그게 아주 이상했다. 생판 모르는 ‘남’이 만지니 거부감이 들었지만 사심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아니까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터치’도 익숙해지고 ‘잠은 잘 잤는지,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혼자서 어떤 운동을 했는지’ 등등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친해졌다. 코로나로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 2-3회를 만나면서 시시콜콜한 일상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트레이너라는 사실이 좀 웃겼다. 회사 사람들과는 일 얘기만 하고, 같이 사는 부모님과는 얼굴을 마주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보면 가장 사적인 대화를 가장 모르는 사람과 하는 셈이었다. 그 트레이너는 영업적인 활동의 일환이었을 텐데, 회원인 나는 뭔가 사적 친밀감이 쌓인다고 여겼다. 그런 마음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운동하러 가는 길이 좀 더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해당 트레이너가 다른 지점으로 옮긴다고 했을 때 꽤 서운했다. 아마 가까운 거리였으면 그 트레이너를 따라 지점을 옮겼을 수도 있다. 한 친구가 내가 PT를 계속하고 있다는 말에 ‘뭔가 있지?!’하는 표정을 지은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자기도 살짝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서. 그냥 살랑대는 마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트레이너와 바람나는 유부녀들이 많다는 말도 했다. 그러니 조심하란다. "큭, 난 유부녀도 아닌데 조심하긴 뭘 조심해. 그것보단 그런 끼와 용기가 있다면 연애를 수십 번 했을 거다"라고 응수하니 친구가 곧 "아하!" 하며 깨닫는 표정을 지었다.
PT를 이렇게 오래 할 의도는 없었지만, 헬스장에서 프로모션으로 특가를 내걸어서 더 끊거나 트레이너와 운동패턴이 좀 자리를 잡고 효과를 보는 것 같아서 연장하다 보니 지금까지 하고 있다. ‘효과가 나타 난다’ 싶어서 연장하고 나면 트레이너가 관두고, 새로운 트레이너와 익숙해져서 ‘더 해야지’ 싶어서 연장하면 또 다른 트레이너로 바뀌고. 그런 식으로 지금의 트레이너는 네 번째다. 한창 가속도가 붙어서 할 만하면, 사람이 바뀌어서 처음으로 돌아간다. 2-3회는 내 몸 상태를 살피고 어떤 운동이 맞는지를 검증해 보는 단계를 거치는데, 그게 운동속도를 늦추는 일이 되어 별로다. ‘아니 왜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죠?’라고 속으로만 읊는다. (괜히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생길까 염려스러워 말을 못 한다. 일할 때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두 번째 트레이너는 기본자세를 잘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스쾃, 런지 자세는 이 트레이너에게 확실하게 배웠다. 운동 자세는 혼자 연습하면 위험하다. 바른 자세가 몸에 익을 때까지 트레이너에게 봐달라고 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자세가 굳어버려서 본래 써야 하는 근육이 아닌 다른 근육을 쓰다가 더 아플 수 있다. 다행히 이 트레이너는 자세 잡는데 필요한 설명을 잘해주어서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었다. 자세가 어느 정도 잡히자, 마운트 클라이밍, 버피 등은 혼자 하고 가라며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식단과 단백질 섭취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는 단기간에 몸 만들어서 ‘바디 프로필’ 같은 것을 찍으려는 것이 아니므로 ‘단백질 파우더’ 보다는 음식으로 섭취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했다. 음식 섭취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단백질 파우더'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지만 지속하기는 어렵다고. 그는 매번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하고, 운동량을 기록하고 스트레스는 없는지 등을 확인했다. 그래서인지 이 트레이너와 운동할 때 체지방이 제일 많이 빠지기도 했다.
세 번째 트레이너는 칭찬을 잘했다. 체력이 좋다, 근력이 세다 하면서 강도 높은 운동을 많이 시켰다. 유산소 운동을 숨이 턱까지 차도록 시켰는데 기분 좋았다. 땀이 떨어질 정도로 운동을 하고 나면, 상쾌한 희열이 느껴지기도 했다. 무게를 많이 올릴 때는 너무 무겁다, 못한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할 수 있어요~”라고 하면서 자기를 믿으라고 했다. 들어 올리지 못하면 옆에서 다 도와줄 테니 시도를 해보라고 하면서. 그리고 그 무게를 들어 올리면 “거 봐요, 할 수 있잖아요”하면서 나보다 신나 했다. 난 왜 그렇게 미련한지, 트레이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들어 올린 거였는데 말이다. 친구는 그러다가 "니 몸 망가진다"며 하지 못하겠으면 분명하게 안 하겠다고 하란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말로는 잘 나오지 않았다. 그는 식단이 중요하다면서도 무엇을 먹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그의 논리는 “제가 하라는 대로만 운동하면 안 빠질래야 안 빠질 수 없어요. 음식은 먹고 싶은 대로 드세요. 단, 많이 먹지만 마세요"라고 했다. 이미 운동량이 상당하므로 굳이 음식까지 조절하라고 하지 않겠단다. 체중이 조금씩 줄고 체지방도 조금씩 빠졌지만 근육량은 500g 늘었을까?! 그렇게 무거운 걸 많이 들었는데 말이다.
이들은 모두 그들 방식대로 내게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내 몸 상태에 맞는 운동을 잘 가르쳐 주었다. 운동기구마다 들어 올린 무게를 기억하지 않아도 그들이 기억하고 다음 수업 시간에 반영해주었고, 기구에 앉을 때는 높이 조절, 앞뒤 조절 등 위치 조절을 알아서 해주었다. 한마디로 난 기억 하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트레이너가 하라는 대로 했다. 어느 근육에 힘을 주라고 하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어떤 자세를 취하라고 하면 설명하는 대로 따라 했다. 자주 하는 운동 자세, 재밌다고 느낀 자세는 굳이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머리에 입력되었기에, 혼자 운동할 때는 몸에 익은 자세 위주로 운동했다. 가끔 호캉스를 즐길 때, 호텔 짐(gym)에서 머신(machine) 운동을 해보려고 했으나 사용법을 잘 몰라서 못했다. ‘분명 이거로 조절하는 거 같았는데 왜 꿈쩍도 안 하지?’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걸로 끝이었다. ‘트레이너에게 다음에 물어봐야겠다 ‘라는 마음은 잘 들지 않았다. 운동하고 싶지 않은 나의 기질은 이런 데서 발휘된다. '굳이 알고 싶지 않다'로 귀결되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약을 장기간 먹어야 하는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함이다. 운동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풀리고 체력이 좋아지는 걸 느끼기 때문에 평생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체지방 빼는 일에 한창 관심을 기울일 때는 식단과 운동 방법을 유튜브로 찾아보고 실생활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는데, 나와 잘 맞았던 트레이너는 그 관심 사항에 맞게 운동을 짜주고 가르쳐주었다.
남들 기준에 비해 PT를 이렇게 오래 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운동 루틴을 짤 필요가 없다는 것. 기계 사용법을 몰라도 기계 운동을 할 수 있고, 유산소 운동 순서를 만들지 않아도 땀이 쭉쭉 나게 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번 똑같이 하지 않고 오늘은 상체, 내일은 하체, 오늘은 복근 운동, 내일은 힙 운동 이런 식으로 골고루 운동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운동하다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허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운동을 살살할 수 있게 해 주고, 무릎이 아프다고 하면 무릎에 무리가지 않는 운동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PT를 계속한다. (물론 잘 맞는 트레이너를 만나야 한다)
기억하고 머리 쓰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그렇지 않아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수두룩한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입력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런데, 하라는 대로 열심히 따라만 하면 체지방이 빠지고 근육이 만들어지니 놀랍지 않은가!
(아, 근육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ㅠㅠ)
(왼쪽) 2020년 9월21일 인바디 결과 (오른쪽) 2022년 6월2일의 인바디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