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홀 Feb 18. 2023

규칙이 많은 당신에게

드라마를 볼 때 거슬리는 장면 중의 몇 가지는 이런 것들이다. 밖에서 입던 옷 그대로 침대에 벌렁 누워버리는 장면, 밖에서 들고 메고 다니던 가방을 침대 위에 털썩 놓는 장면, 신발 신고 침대에 발을 올리는 장면, 밖에서 신던 양말을 벗지도 않고 침대 위에 오르거나, 이불 속에 들어가는 장면, 여행 가방을 문밖에서부터 현관 안으로 자연스레 밀고 들어오는 장면, 심지어 그 여행 가방을 침대 위에 놓고 짐을 푸는 장면 (혹은 침대 위에 올려놓고 짐을 싸는 장면)이다. 이런 장면을 볼 때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데, 마음속으로는 ‘이건 드라마다’라고 되뇐다. ‘드라마 내용에 전혀 흠이 되지 않는다’라고 마음을 다져 먹으며, 그 행동을 하는 등장인물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등장인물이 주인공일 때는 못내 아쉬운 마음을 접기가 힘들다. 주인공의 상황과 캐릭터에 몰입한 상태에서 그런 행동 때문에, 주인공의 마음과 하나였던 상태가 갑자기 분리되며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된다. 다행인 건 마음에 들지 않던 주인공은 곧 잊어버리고 다음 화를 볼 때면 다시 주인공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것 아닌 행동들이 나에게는 장애로 다가올 때가 많다. 침대, 잠자리를 대하는 자세가 그중 하나다. 침대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곳이다.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쉬는 날이면 하루종일 애정하며 붙어있는, 편안함을 최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책 보다가 자다가, 휴대폰 보다가 자다가,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하다가 자다가 하는 곳이다. 베개를 등받이로 사용하며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는 곳이다. 침대 위에 앉더라도 집에서만 입는 옷이거나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에 앉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당연히 이불 속에 들어가려면 몸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씻지도 않은 발을 이불속에 디미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늦은 시간이고 피곤한 몸이어도 씻지 않고는 침대로 가지 않는다. 소파나 의자에 앉아있을지언정, 아니면 바닥에 그냥 드러누워 있을지언정 침대를 더럽히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소파나 바닥에서 누운 채로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어나 씻고 침대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침대는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는 곳이므로 휴대폰을 침대에 놓을 때는 케이스를 벗기고 놓는다. 그래서 젤 케이스를 선호한다. 끼고 벗기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하드케이스는 벗기기가 좀 불편하다. 그래도 예쁜 디자인의 하드케이스면 그 불편함을 감수한다. 그래서 어떤 날은 물티슈로 케이스를 닦은 후 놓기도 한다. 노트북도 티슈로 닦은 후에 놓는다. 그런데 책까지는 닦지 않는다. 가끔 결벽증이 발동될 때 책 표지를 닦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책은 여기저기 놔두었던 그대로 침대에도 놓는다. 최소한 책은 바깥에 들고 다녔어도 가방 안, 내 손, 내 옷 위, 어느 책상 위가 전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처럼 화장실까지 갖고 가지는 않으므로.      


침대에서 많은 일을 하지만 먹지는 않는다. 먹는 것은 식탁에서만, 어쩌다가 가끔 소파에서는 먹을 수 있다. 집에 조카들이나 동생이 와서 침대에 걸터앉으려고 하면 절대 앉지 못하게 한다. 어른들이 소파나 의자를 점령한 걸 본 조카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무심히 내 침대가 있는 곳으로 가고는 한다. 그러면 나는 귀신같이 그걸 눈치채고 얼른 쫓아가 말한다. “여기 앉을 거면 옷을 갈아입어” 조카는 “네에~”하고 바닥에 앉는다.      


옷을 갈아입으면 윗옷은 윗옷대로 아래옷은 아래옷대로 걸어 놓는다. 윗옷과 아래옷을 섞어서 걸지 않고 구역이 나눠져 있다. 긴 옷과 짧은 옷의 구역이 나눠져 있고 옷걸이의 방향은 모두 같다. 옷걸이 방향이 흐트러져 있는 걸 못 본다. 빨래를 널 때 베란다에 항상 놔두는 옷걸이를 사용한다. 마른 옷은 걷어서 옷장 옷걸이에 건다. 엄마는 옷이 마르면 베란다의 그 옷걸이 채로 옷장에 넣으신다. 난 질색을 하고 옷을 벗겨 옷장 옷걸이에 다시 걸고, 베란다에 놔두었던 옷걸이는 도로 베란다에 놓는다. 아무래도 베란다에 오래 놔두었던 옷걸이는 옷장 안에 있던 옷걸이보다 먼지가 더 쌓였을 것 같아서 구분한다. 그런데 육안으로는 더 더러운지 뭔지 안 보인다. 그러다가 구분하기 어려운 옷걸이는 한번 쓱 닦고 그냥 옷장에 놔둔다.     


양치를 할 때 윗니, 아랫니, 어금니 골고루 6회씩 닦는다. 초등학교 시절 ‘건치 아동’에 뽑힌 적이 있는데, 그때 의사 선생님이 알려주신 횟수다. 여섯 번씩 닦으라는 말을 지금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왜 여섯 번 인지는 모른다. 그래서일까? 어떤 동작을 할 때면 숫자를 자연스럽게 세게 된다. 아이크림을 바를 때는 눈가를 10번 정도 톡톡 두들겨 준다. 탈모가 시작된 후 머리를 마사지하듯 두드려 주면 좋다고 하여 가끔 생각날 때마다 두드리는데 100번씩 두드린다. 얼굴이 쳐지기 시작하여 리프팅을 위해 크림을 바른 후 손바닥으로 양쪽 뺨을 쓸어 올린다. 최소 10회, 많으면 20회. 시간 되는 대로 쓸어 올리는데 마음속으로 세는 숫자가 딱 떨어질 때까지 센다. 10회, 20회, 100회 이런 식으로. 헬스장에서 마운트 클라이밍을 할 때 50회씩 2회 혹은 30회씩 3회+10회 등 100회를 하려고 한다.     


어딘가 아파서 약을 먹을 때는 영양제를 먹지 않는다. 영양제를 먹을 때는 여러 영양제를 한꺼번에 먹지 않고 시차를 두고 먹는다. 공복, 식후, 자기 전 먹는 영양제를 구분해서 먹는다. 탄산음료는 마시지 않지만, 가끔 사이다는 마신다. 밥을 먹기 전에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 특히 찬물은 잘 마시지 않는다. 신발을 벗으면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 책상이든 서랍이든 너저분한 걸 잘 못 본다. 한눈에 물건이 다 보여야 한다. 물건은 놓았던 곳에 놓아야 한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걸 보면 화가 밀려온다. 그래서 누군가 내 물건을 만진 것을 금방 알아챈다.      


이렇듯 내게는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규칙이 많다. 남들은 잘 이해할 수 없는 규칙들. 최근 재미로 보는 어떤 심리테스트를 해보니 ‘불안’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규칙을 지키며 마음의 안정을 꾀하는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궁금하지만, 두렵지 않은 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