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홀 Mar 11. 2023

그래서 혹은 그래도 좋아요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곳을 벗어나 숨 쉴 시간, 공간을 가져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카페 가서 하는 것도 그런 공간과 내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하는 일이 고작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일이어도 말이다.    

  

그래서 가끔 여행을 간다. 여행이야말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꼭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집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잠을 잘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더구나 코로나로 움직이지 못할 때 호캉스를 자주 갔다. 몇 개월에 한 번씩은 틀에 박힌 생활, 공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부모님은 그런 내게 역마살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신다) 호캉스는 혼자 갈 때도 있었지만, 좋은 호텔인 경우는 혼자 자는 것이 아까워 주로 엄마와 같이 다녔다. 코로나가 엄중한 시기에 친구더러 같이 가자고 하기 어려워서 제일 편한 상대인 엄마에게 말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항상 “집 놔두고 왜 비싼 호텔에서 자냐!” 하시며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 나의 레퍼토리는 “이미 돈을 다 냈으니 환불이 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는 날을 통보한다. 3인 1실로 잘 수 있는 곳이면 아빠에게도 말씀드리지만, 주로 2인 1실이므로 엄마에게만 말한다. 이런 경우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없지만, 엄마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비록 엄마를 끌고 가는 형국이지만 막상 가면 즐기신다. “딸 덕에 좋은 거 많이 본다”라고 하시며 내 어깨가 으쓱거리게 하는 말도 잊지 않으신다.      


호캉스도 그렇지만 여행은 더구나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 잊어버리게 된다. 아마도 시간과 날짜 감각이 없어질 만큼 마음이 풀어지고 느긋해지기 때문일 거다. 더 너그러워지고 여유가 생긴다. 무엇을 하든, 무엇을 하지 않든 간에 아무래도 좋다. 그렇게 느긋하게 있다가 오늘이 주말이 아닌 평일이라는 걸 깨달을 때면 더욱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그래서인지 집에서라면 하지 않을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난 집에서 무척 무뚝뚝한 사람이다. 필요한 말 이외는 잘하지 않는다. 엄마가 하루 있었던 얘기를 하실 때면 그저 듣기만 하지 반응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눈을 잘 마주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집 밖에서는 자주 눈을 마주치고 엄마 얘기에 반응하고 관심을 더 기울인다.     


그래서 속에 있는 말도 더 편하게 하게 된다. 엄마와 제주도 여행 갔을 때 아주 맛있는 음식을 드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걸 이렇게 요리하니까 색다르네. 집에 가면 나도 고추장 넣고 이렇게 해봐야겠다. 네 아빠가 좋아할 거 같다”라고.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빠하고 그렇게 애틋한 관계는 아니잖아요?” 집에서라면 결코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도 나도. 엄마는 “부부는 그런 거야”라고 하시며 “생각이 나네”라고 하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는 그 요리법대로 음식을 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여행지에서 느꼈던 애틋함은 일상으로 돌아오며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가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좋았다. 비록 일상은 그렇지 못할지라도.      


여행을 가면 일상의 루틴을 지키기 어렵다. 지키기 어려우니 더 지키려 하는 것들이 있다. 운동이 특히 그렇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는 어디를 가든 머무는 숙소에 운동시설이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는 여행을 같이 간 사람이 누구이든 같이 운동하자고 부추긴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혼자 다녀와” 하는 사람은 없었다. 흔쾌히 “나도 한번 해보자”하며 따라나섰다. 운동 이외에 유지하려는 습관 중의 하나는 영양제를 챙겨 먹는 것이다. 포스트 바이오틱스, 새싹보리 분말가루, 오메가 3 등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잔뜩 들고 가서 시간에 맞춰 먹는다. 집에 있을 때 보다 더 열심히 챙겨 먹는다. 집에서는 잊어버리고 먹지 않는 날이 많은데 말이다. 그리고 집에서는 귀찮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하지 않던 얼굴 팩을 호텔에서 자는 박 수만큼 챙겨가, 밤마다 한다. 심지어 같이 가는 사람 것까지 챙겨가서 같이 한다. 그런 모습을 본 친구는 내가 집에서도 늘 관리하는 줄 오해한다. 일상적인 습관을 일상에서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가 많은데, 여행지에서 그걸 더 지키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아이러니다. 참 희한한 심리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떠난 곳에서 그 일상을 유지하려고 하다니. 그렇게 노력하지만 역시 일상의 모든 것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타인에게도 풀어지는 마음을 자신에게 너그러워지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여행은 좋다.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불안한 마음이 여행을 가면 무뎌지고 편안해지고 평화로워진다. 속 시끄러운 일이 없어서일까? 좋은 것만 보고 먹어서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규칙이 많은 당신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