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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본가

2025. 1. 29

by 지홀

떡국을 맛있게 끓이고 싶은 마음에 레시피를 찾아봤다. 소고기를 들기름에 볶으려고 했는데 참기름에 볶는다고 쓰여있어서 참기름에 볶았다. 대개 포장된 소고기를 그냥 굽거나 찌개에 넣었는데 씻어서 물기를 빼야 한다고 되어 있어서 그렇게 했다. 참기름에 볶다가 소고기가 거의 익었을 때 물을 조금 붓고 소금 간을 하고 계란을 풀고 간장을 살짝 넣었다. 물이 끓을 때 물을 더 붓고 떡국 떡을 넣었다. 마지막에 대파를 넣었다. 엄마가 끓이시던 국물 색깔이 아니었다. 엄마는 꽤 맑은 색의 떡국을 끓이셨는데 내가 만든 떡국은 고기육수 때문에 조금 어둡고 탁했다. 그래도 식구들이 국물이 진해서 좋다고 맛있다고 했다.


어제 만든 나물, 전을 비롯해서 과일을 나눠 먹으며 시답잖은 얘기들을 나눴다. 명랑 쾌활한 조카 덕분에 웃음꽃이 피었다. 실로 오랜만에 모일 사람이 다 모였다. 부모님께 세배를 올리고 조카들의 세배를 받았다. 형제들이 순서대로 조카들의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건넸다. 덕담을 나누는 훈훈한 시간이었다. 문득 명절에 이렇게 모일 수 있는 때가 얼마나 많을지 궁금했다. 부모님이 계시니까 이 집이 본가가 되어 다들 모였다. 고향을 찾는 사람들처럼. 부모님이 안 계시다면 우린 모일까? 최근에 부모님을 모두 여읜 친구가 "부모님 모두 안 계시니 형제들은 남이야"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친구 형제들은 각자 가정을 꾸렸기에 더 그런 말을 했을지 모른다. 혼자인 나는 '내가 맏이니까 동생들을 맞아야 할까? 동생들에게 본가는 내가 있는 곳일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잠깐 했다.


사람은 회귀본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고향에 가고 싶어 하고 고향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회귀본능인지 모르겠으나 내 고향 성북동은 언제나 살고 싶은 곳이다. 그 동네는 언제 가도 정겹고 언젠가는 여기서 살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고향과 본가. 고향은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곳이고 혼자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 곳이다. 그런데 본가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없어지는 곳. 부모님이 살던 집이 남는다 해도 그곳을 본가라 부를 수 있을까?


오후가 되자 동생과 조카들이 하나 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시끌벅적하던 집이 조용해졌다.


오늘도 집에서 (14:54, 14:5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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