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28
설날 전날이므로 하루종일 음식할 각오를 했다. 어떤 음식을 할지, 필요한 식재료가 무엇인지 미리 점검하고 장을 봤다. 아침 먹고 치우자마자 재료 손질하기 시작해서 시금치나물, 숙주나물을 하고 두부부침, 호박전, 동태 전을 했다. 거의 5시에 끝났다. 계획에 무채나물이 있었으나 그것까지는 무리였다. 엄마는 남동생이 조기를 좋아하니 굽자고 하셨는데 고개를 저었다. 떡갈비를 하자고 하셨는데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도 차례음식을 차려본 적 없는 나로서는, 올해 설 명절 음식 준비가 엄청 큰 부담이었다. 도와드린 적은 있지만 주도적으로 음식 준비를 한 적이 없었다. 올해는 엄마 팔이 아프니 차례 지내지 말고 넘어가자고 했으나 오히려 더 정성껏 준비하고 싶다고 하셨다. 조상님께 잘해야 복 받는다고 하시며. 엄마 마음이 이해되어 기본만 차리기로 했다.
두 달간 반찬 만들고 음식 해서인지 어려운 건 없었다. 다만, 힘들 뿐. 하루종일 명절음식 만들고 화장실 비롯 집안 청소를 했다. 본디 손님맞이용 청소를 해야 한다고 어려서부터 배워서 안 하려니 마음이 찜찜했다. 명절에 오는 손님이라곤 동생, 조카들이지만 깨끗한 집안 상태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한 몫하여 내친김에 했다.
명절 이후 부부싸움이 늘어나고 이혼율이 증가한다는 뉴스를 자주 봤다. 내가 음식 준비하지 않을 때는 그럴 수 있겠다고 여긴 이유를 남녀 역할에 대한 문제로 국한했음을 알았다. 아무래도 남자보다 여자들이 음식을 하게 되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있으므로. 그런데 음식을 직접 준비하며 느낀 것은 명절음식을 먹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번에 명절 음식을 준비하면서 "왜 내가 해야 하는가? 왜 나만 힘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 불만은 들지 않았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 형제, 조카들이 먹을 음식이므로, 부모님이 매년 지내시는 차례상을 차려야 하므로 몸이 힘들지만 그냥 했다. 그런데 이 노동이 시부모와 시댁 식구를 위한 것이었다면, 게다가 도와주는 사람 없이 나 혼자만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면 분명 불만이 생겼을 것 같다. 결혼하면 시댁도 가족이라지만, 아무래도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처럼 여기기란 쉽지 않을 거다. 사람 좋은 친구, 후배들을 봐도 그렇고 올케를 봐도 그렇고.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힘든 줄 모르고 음식장만을 하시는 마음 역시 며느리, 사위를 위한 마음보다는 내 자식을 위한 마음이 더 크실 거다. 사람 마음은 그런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모녀와 고부간이 다르고 모자와 장서(장모와 사위) 간이 다르고 부녀와 구부간(시아버지와 며느리)이 다르고 부자와 옹서 간(장인과 사위 관계)이 다를 것이다. 이 마음은 착하냐 아니냐,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교육을 받아 모든 관계의 사람들에게 이븐 하게 대하려고 하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을 거스르기 힘든 것처럼.
점점 차례를 지내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한다. 올해도 긴 연휴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역대급이라고 한다. 각자의 삶에 충실한 세태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명절음식 준비에 불만이 없는 사람은 그렇게 지내고, 부담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사람은 패스하고. 누군가에게 억지로 부담을 지우고 또 누군가가 의무감에 해야 하는 명절 음식과 일련의 일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살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