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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Aug 30. 2023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일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며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돈으로 산다. 생필품을 비롯하여 어디가 아파서 찾는 약국, 병원이 그러하고 머리 모양을 위해 찾는 미장원, 옷 가게, 필라테스, 헬스장 등등 생활을 위한 모든 것에 돈을 낸다. 그래서 돈이 많으면 좀 더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돈으로만 해결되는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같은 돈을 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머리 모양을 해주는 미장원에 가면 기분이 상한다. 더구나 큰마음먹고 좀 비싸다는 곳에 가서 머리를 했는데 내 얼굴과 맞지 않는 결과물이 나오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을 때 아무리 비싸고 근사한 곳이어도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병원도 그렇다. 중증이 아닌 감기나 소소하게 아파서 찾게 되는 동네병원은 은근히 나와 맞는 곳이 있다. 어떤 의사는 친절하고 어떤 의사는 친절하지 않으며, 어떤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으면 금방 낫는데 그렇지 않은 의사도 있다. 그래서 내 몸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의사가 있는 병원을 가게 된다. 운동을 코칭해주는 트레이너도 그렇다. 같은 헬스장이지만, 여러 트레이너 중 나와 맞는 트레이너가 있다. 같은 트레이너인데 어떤 회원은 잘 가르친다고 하고 어떤 회원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단골이 생긴다. 특별히 주문하지 않아도, 오랜 경험으로, 내 얼굴에 맞는 스타일로 커트를 해주고, 잘 어울리는 색깔로 염색을 해주고, 뿌리 염색만 해도 되는지 전체 염색을 하는 것이 좋은지 알려주고, 머리칼이 푸석하거나 하면 헤어케어(Hair care) 할 때가 되었다고 알려준다. 그렇게 마음에 맞는 헤어 디자이너를 만나면 걱정이 사라진다. 때가 되면 그냥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디자이너가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면 낭패감이 밀려온다. 가까운 곳으로 옮기면 따라가고 싶은데, 동네가 완전히 달라지면 따라가기 어렵다. 그러면 또 나를 잘 이해해 주는 디자이너를 찾아 헤매는 시기를 거쳐야 한다.     

 

동네 목욕탕도 그렇다. 때를 정말 내 마음에 쏙 들게 밀어주는 분이 어느 날 사라졌을 때 몹시 당황스럽다. 그분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얼굴을 익힐 정도로 자주 이용하지 않았기에 그런데, 난 그분을 안다. 그래서, 다른 분이 있어도, 늘 그분에게 대기를 걸어놓고 기다렸다. 어떤 때는 너무 사람이 밀려서 옆 사람에게 밀라고 할 때가 있다. 시간이 많으면 마냥 기다리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할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때를 민다. 그러면 마음이 편치 않다. 아주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한 것을 딱 내 마음에 맞게 제공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많은 인연의 억겁을 쌓아야 하는 일일까? 그런 궁금증이 생기자 돈을 내고 받는 서비스라서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런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당연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았다. 새삼 내게 맞는, 내 마음을 만족시켜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귀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끔 김밥, 음료 같은 먹을 것을 사 가기도 하고, 소소한 선물을 주며 감사의 표시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니, 단순한 단골손님에서 좀 더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적으로 친해지는 건 아니다.)     

 

거의 10년 가까이 내 머리를 책임지던 헤어 디자이너가 독립한다고 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월급 받는 디자이너가 마음 편하다고 했는데,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동네 주민을 고객으로 미장원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좀 더 안정적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했다. 들어보니 내 생활반경과는 꽤 먼 거리로 옮겨 따라갈 수도 없었다. 그 디자이너한테 머리를 할 때는 천연염색을 한다고 헤나 염색을 하던 때라 그 미장원에서는 커트, 가뭄에 콩 나듯 헤어케어, 아주 가끔 파마를 했다. 그것도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6개월에 한 번 갔다. 그렇게 가끔 가는 나를 기억하고 항상 반갑고 친절하게 맞아 주고, 헤나 염색이 머릿결에 정말 좋은 것 같다며 머릿결이 참 좋아졌다고 말해줬다. 샴푸, 오일 등 제품을 강매하거나 비싼 케어(care)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내 마음에 쏙 들게 머리를 해줬다. 마지막 근무일까지는 몇 달 남아있었지만, 미장원을 자주 찾지 않는 내 패턴을 알고 있던 그녀가 미리 인사를 건넨 것이다. 몇 달 뒤 왔는데 자신이 없으면 서운할 것 같았다면서. 그녀가 알려준 마지막 근무일을 머릿속에 잘 입력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축하하고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녀의 마지막 근무일 2일 전에 시간을 내어 머리를 하러 갔다. 뜻밖의 나의 방문에 그녀는 놀랬다. 그러면서 커트를 시작하며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많은 단골손님이 이렇게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면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나도 살짝 눈물이 나왔다. 머리를 다 자르고 작은 선물을 주었다. 앞으로 승승장구하라는 인사와 함께.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며 펑펑 울었다. 그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녀가 소개해준, 우리 동네에 있는 지점의 새로운 디자이너는 얼마나 나와 잘 맞을까, 얼마나 내 마음에 맞게 잘하는 사람일까 궁금해하며 미장원을 나섰다.     

 

그녀와는 10년 가깝게 본 사이지만, 서로의 사적인 영역은 잘 모른다. 디자이너와 손님의 관계 그 이상의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실력을 믿었고 그녀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손님으로 나를 받아주었다. 우리에게 그 이상의 무엇도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소개해 준 헤어 디자이너는 다행히 나와 잘 맞았다. 그녀로부터 내 얘기를 전달받은 그는 내가 원하는 걸 금방 알아챘다. 그 무렵 헤나 염색을 중단했는데, 디자이너가 알아서 배합해 주는 색으로 염색을 했더니 주변에서 그간 봐온 것 중 나와 제일 잘 어울리는 머리 색이라고 칭찬했다. 난 염색약이 무엇인지, 어떤 색으로 했는지 모른다. 그저 그를 믿고 맡기니 편하고, 내게 잘 어울리니 좋다. 얼마 전 그 헤어 디자이너가 또 다른 지점으로 옮겼다. 그가 소개해준 다른 디자이너는 어떨지 또 겪어봐야 하는데, 크게 낭패를 볼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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