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급속한 고령화, 그것도 초고령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뉴스를 몇 년 전부터 접했다. 이제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신생아 숫자가 줄고 아이가 없어 폐교를 앞둔 초등학교가 늘어났다. 지자체는 폐교를 막기 위해 초등학생이 있는 가족을 유치하려고 여러 지원정책을 편다. 집은 물론이고 각종 방과 후 활동을 무료로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엄마들이 이런 체험을 위해 짧게는 6개월, 길게 2년 정도 지방으로 이주하여 산다. 후배 다희도 육아휴직 후 아이들을 데리고 인제로 내려갔다. 서울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승마, 서핑, 나무 타기 등은 물론이고 강원도 인근 여행, 썰매 타기, 스케이트 등 각종 활동을 하며 아이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에 만족한다.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귀농 청년 지원, 귀농생활 체험 지원, 한 달 살기 지원 등 당장 영구 이주는 아니라도 그 씨앗이 될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인구 유입을 위해 노력한다. 아이들이 점점 없어져 유치원은 노치원으로 변신할 것이라고 한다. 일하지 않는 노인들이 시간 보낼 곳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메꿀 프로그램은 유치원생이 하던 놀이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경로당은 체계가 부족하고 노인복지시설은 공급이 부족하다. 치매 노인이나 아프신 분들을 위한 주간 돌봄 센터(Day care center)가 있지만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노치원에서 어느 범위의 노인까지 수용할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없어지는 세상에서 기존의 시설과 프로그램을 일부 변형하여 활용하는 건 좋은 일 같다.
반면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 불리는 건강하고 경제력이 있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층이 있다. 노인이라고 다 병들고 아픈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대학원에서 노년학을 공부하는 미영은 우리나라는 아직 60대, 70대, 80대, 90대 등 나이에 따라 필요한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른데 모두 노인이라고 통칭하며 하나로 보는 관점 때문에 노인 관련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고 했다. 60대 자식과 80대 부모가 같을 수 없다는 거다.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로 불리지만 들여다보면 세대가 다르고 정서가 다르다. 그 말에 동감했다. 내가 나이 드니 더 그 말이 이해된다. 낼모레면 예순이지만 80대인 부모님과 내가 같을 수 없다. 그걸 40대 때까지만 해도 인지하지 못했다. ‘늙는다’가 피부로 와닿지 않아 예순 넘으면 다 노인이라고 넘겼다. 남의 나라 얘기였다. 고작 10년 후에 깨닫게 될 것을 그때는 몰랐다. 뭐든 자기가 겪어보고 닥쳐봐야 다른 관점이 생긴다는 건 인간의 기본적인 어리석은 속성인가 보다.
미영은 공부하다 보니 이런 거 하면 잘되겠다 싶은 아이디어가 매일 생긴다며 얼른 선점하자고 했다. 마침 동은의 말을 듣고 두 사람을 연결했다. 가로수길에 있는 태국식당에서 셋이 만났다. 미영과 동은은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곧 편한 분위기에서 서로의 생각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었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이런 것이다. 넉살이 생긴다.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 편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고 수다를 떨 정도의 내공은 아직 없다. 셋은 실버 대상 사업을 하자는 큰 틀에 공감했다. 우리가 늙어가고 있으니 우리가 하고 싶은 것, 필요한 것 등을 먼저 나열해 봤다. 사업의 대상은 60대에서 70대의 소비력 있는 층을 공략하는 사업을 논의했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중구난방, 브레인스토밍했다. 효도 여행이 아닌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 기획, 어디 가면 요즘 세대를 이해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지, 요즘 명소는 어디인지, 급변하는 세상에 생활적으로 알아야 하는 기술과 상품은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정보 제공 소식지, 치매 걸리지 않게 학습지처럼 문제 풀이 형식으로 제공하는 정보 등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
얘기를 마무리 지을 무렵 가게 안을 둘러보니 테이블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마침 음식을 가져다준 로봇이 다가왔다. 이제 마감할 시간이라는 문구가 적힌 메모와 후식용 사탕이 서빙 쟁반 위에 놓여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키오스크로 음식 주문하고 결제하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되어 색다르지 않았지만, 로봇이 서빙하는 건 몇 번을 봐도 아직 신기하다. 계산대에 1명이 있었지만, 손님에게 맞이 인사, 배웅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로봇이 그 역할과 서빙까지 1인 3역을 다했다. 계산도 기계가 했으니 그분은 식당이 문제없이 돌아가는지 관리 감독만 하면 되는 듯 보였다. 점점 비대면이 많아지는 서비스를 대하면서,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부유층이 이용하고 기계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하게 될 거라는 예측이 떠올랐다. 또한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오프라인 체험은 돈 많은 사람이, 온라인 체험은 돈 없는 사람이 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떠올랐다. 우리는 노인들에게는 기계보다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더 적합하다는 얘기를 나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우리가 그랬으므로. 부유층이라서가 아니라 아직 아날로그 감성을 가졌고,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세상이 익숙하므로. 미영이 “우리가 하려는 사업의 대상은 경제력을 가진 시니어니까,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돈을 좀 더 내는 걸 마다하진 않을 것 같아요”라며 낙관적으로 말했다. 동은과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