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홀 Sep 03. 2024

일자리는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는지 모르지만 언제나 칠십까지 일할 것만 같았다. 일자리가 있을 것 같았다. 초고령사회에서 살게 될 것을 진즉에 알았던 걸까? 고령화 세상인 만큼 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시니어를 이해하는 고용인이 필요할 것이다. 일례로 병원의 접수/수납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직원 중에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기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을 좀 더 젊은 노인이 알려주는 것이다. 흰머리와 주름진 외양은 같아 보여도 체력, 인지력, 나이는 엄연히 다르다. 게다가 청년층이 줄어 각 분야에서 인력난에 시달린다. 청년이 메꾸지 못하는 일자리는 나이 든 사람이 메꿀 수밖에 없다. 외국 항공기를 탈 때 나이 든 승무원을 보고 외국은 어리고 예쁜 승무원만 고용하지 않아 좋다고 여겼지만, 그건 단편적인 생각이었다. 그 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비행기를 타면 중년의 승무원을 이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업주부였던 친구들이 아이들이 크자 다시 일한다. 대학 동창이자 나의 대모인 지수는 마흔 넘은 나이에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다.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일한다. 요양병원 특성상 청년층보다 중장년층 인력을 원한다고 한다. 대학 동창 희경도 마흔 넘어 독서지도사, 사회복지사 등의 자격증을 따고 교육청, 구청 등에서 기간제 직원으로 일한다. 기간제라 한 곳에서 최대 2년까지밖에 일하지 못하지만, 그 경력이 쌓여 꾸준히 일한다. 조영은 뒤늦게 사진 공부를 하더니 사진작가가 되었다. 사진 판매 사이트에서 조영의 사진이 상업 광고 등에 쏠쏠히 팔린다. 얼마 전에는 유명한 사진 판매 사이트에서 진행한 작가 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스튜디오, 메이크업, 의상 등 비용을 지원받고 선정된 콘셉트의 사진을 찍게 된 것이다. 첫 직장 동기 경미는 공인중개사 시험에 턱 하니 붙었다. 그것도 1차, 2차 한 번의 낙오도 없이. 게다가 취직해서 일을 배우고 있다. 언젠가는 공인중개사를 개업할 생각이다. 그때 내 책상 하나 마련해 달라고 농담처럼 부탁했다. 은퇴 후 갈 곳이 필요하므로.      


우리 또래는 일 배울 때 전체 틀 안에 내 역할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분업화되어 있었지만, 내 일과 연결된 다른 일을 알았고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알았다. 업무를 전천후로 배웠고 노련한 경험, 성실함, 책임감으로,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한다. 실제 코로나 이후로 관광업계로 젊은 층 유입이 잘되지 않아, 일을 놓았던 친구들이 다시 취직했다. 예전 일했던 감각과 능력으로 청년층이 메우지 못한 일자리를 메꾼다. 아쉬운 건 임금이 높지 않아 안타까운 것인데, 역설적인 건, 젊었을 때만큼 높은 월급이 아니어도 생활에 무리가 없으므로 그 급여를 어느 정도 만족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이 들어 일하면 ‘급여’보다 ‘일할 수 있다’에 더 방점이 찍힌다. 동은도 사업구상을 계속할 생각이지만 단기적으로 일단 회사에 들어갔다. 생계형은 아닐지라도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은 사회와 연결되는 도구이자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창구가 된다. 따라서 나처럼 앞으로도 비혼일 확률이 높은 사람은 더욱 일이 필요하고 해야 한다.

이전 21화 무엇을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