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된 X세대들이 그간의 경력을 버리고 180도 다른 직업을 찾은 사례를 소개한 BBC 기사를 읽었다. 도자기를 직접 구워 판매하던 쉰 살의 주부가 간호대에 진학한 사례, 고등학교 영어 선생이 캠핑 전문 팟캐스터로 대박 난 사례를 언급하며 40~50대 중년들이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더라도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함으로써 스트레스가 덜하고 감정적 안정을 찾아 행복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기사에는 X세대는 대학에 진학한 남녀비율이 거의 동등하고 그에 따라 맞벌이 부부가 많아 부부 중 한 명이 기존 직업을 관두고 새로운 일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재정적 뒷받침이 될 수 있기에 가능하다는 견해도 실렸다.
뉴질랜드 여행에서 만난 친구의 지인은 마흔 후반에 오클랜드 대학으로 유학 가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한국에서 어학원을 운영했는데, 외국에서 공부하고 생활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다고 한다. 졸업 후 그곳 유학원에 취직해 정착했다. 그녀를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흔한 말을 실감하게 된다. 후배 미영도 마흔 중반에 노년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갔다. 그녀가 노년학 공부하려고 학교에 갔다고 하면, 다들 노인대학으로 잘못 알아들어 여러 번 곤혹스러웠다며 웃었다. 그 나이에 왜 노인대학에 가냐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회사 동료였던 M은 게스트하우스를 하면서 와인바를 같이 운영한다. 그는 라틴 춤 동호회에서 매번 새로운 춤을 배우고 춤 경연대회에도 출전한다. 여름이면 프랑스, 포르투갈 등 와인 농장을 견학하며 와인을 배운다. 그 기간 와인바는 문을 닫는다. 언제나 부러운 자유로운 영혼이다.
부부 둘 다 돈을 벌고 있다면 한 사람이 퇴사하고 다른 일을 찾고자 할 때 마음의 짐이 덜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남자 팀장이 퇴사하고 싶은 의사를 아내에게 말했더니 군말 없이 동의하더라는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남자 팀장은 맞벌이니까 가능한 얘기라며 부러워했다. 외벌이면 그런 말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다며. 비혼자인 나도 외벌이 팀장과 같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먹여 살릴 것인가. 나 자신밖에 없는데. 퇴사하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겪었지만 늘 생계 문제에 부딪혀 굴복했다. 반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과감히 퇴사하고 새로운 직업을 갖는 사람을 보면 항상 대단해 보이고 부러웠다. 그런데 이제 자발적 퇴사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할 시기가 되었다. 정년은 아직 먼 얘기인 줄 알았는데, 곧 닥칠 일이 되었다. 직장 후배들은 지금 하는 일을 경력 삼아 유사한 회사로 점프업 하라고 했다. 선배가 먼저 가서 자리 잡으라고. 정년 이후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전에는 나도 여태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동종 업계에서 일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곧 닥칠 일이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꼭 돈이 안 되더라도 하고 싶었던 일,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수명이 길어졌다. 지금 시작해도 10년, 20년, 어쩌면 30년까지 그 일을 할 수 있다. 만 시간의 법칙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십 대 초반에 취직이라는 목표 때문에 하고 싶던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했던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물론 지금 하는 일에서 보람, 성취, 재미를 느꼈다. 그랬으니 30년 넘게 일할 수 있었다.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생 후반전은 가슴 설레는 일을 하고 싶다. 은퇴 이후 할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스트레스 지수가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