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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Sep 06. 2024

죽은 줄 알았던 나무가 살아 있었다

회사 일로 마음이 힘들었을 때 심리상담을 받았다. 그때 심리상담사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에게는 두 개의 나무가 있었는데 한 나무는 곧 죽을 것 같아서 물도 안 주고 영양제도 안 주고 그냥 놔두었고, 또 한 나무는 키울 생각은 못 했던 나무지만 물도 주고 영양제도 주고 정성을 다해 키워서 열매도 맺고 꽤 큰 나무가 되었어요. 그런데 정작 키우고 싶던 나무는 그 죽을 줄 알았던 나무였던 거죠"라며 "지금 하는 일에서 어느 정도 성취하고 나름 성공한 삶이니 이게 원하던 것인가 곱씹지 말고, 요즘에는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많으니까 꼭 작가라는 직업이 아니어도 글을 쓰면서 자신의 얘기를 풀어보는 것이 어때요"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취직하고 일하는 틈틈이 글을 쓰고 싶어 사내 공모전에 응모하고,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 다니며 강의 듣고 습작했다. 30대 후반에는 회사를 관두고 글쓰기에 집중해보려고 했지만 무위도식하며 시간만 보냈다. 재능이 없다고 자기 의심을 계속하며 정작 읽고 쓰기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나무는 죽을 줄 알아 돌보지 않았다. 대신, 잘한다고 인정받고 승진하며 돈 버는 나무를 열심히 키운 것이다. 영어 공부하고 업무 관련 책, 리더십 관련 책 등을 보며 회사에서 더 인정받고 성장하려고 영양제를 듬뿍듬뿍 준 거다. 그랬더니 그 나무에 열매가 맺혔다. 덕분에 내 한 몸 건사하고 살게 되었다. 그러나, 번 아웃을 겪으며 불안하고 예민해졌다. 갱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 날카로운 마음의 실체가 무언지 힘들었는데, 심리상담사가 명쾌하게 조언해 주신 거다.     


어렸을 때 작가로 성공하고 싶었다.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잘 될 거 같지 않았다. 그런 싹이 없다고 포기했다. 잘 자랄 것 같지 않아 물도 주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늘 ‘글을 써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짐처럼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심리상담사 말씀대로 돌보지 않고 버려두었던 나무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편해졌다. 작가로 성공할 필요가 없었다. 유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제야 몇 년간 들여다보지 않던 브런치에 다시 접속할 마음이 생겼다.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되지도 않는 말을 주절거려도 내 안의 것을 풀어내는 희열이 있었다. 글을 쓰는 자체로 마음이 치유되고 안정되는 걸 느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글쓰기 공부할 때 선생님들이 재능보다 꾸준함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이 나이쯤 되니 그 말씀이 진리라는 걸 안다. 실제로 일하며, 운동하며 여러 분야에서 많이 경험했다. 다만 글쓰기 분야에는 적용하지 않고 살았다. 이제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나무를 잘 키워보려고 한다. 연말, 연초에 매일 브런치에 글 올리기라는 도전을 했다. 16일간 하루인가 이틀 빼고 매일 글을 올렸다. 그러자 메인에 노출되어 글 조회 수가 올랐다. 에디터 픽 신작 브런치 북, 구독자 급등작가, 완독률 높은 브런치 북에 이름을 올리고, 요즘 뜨는 브런치 북 순위에 진입했다.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배지도 생겼다. 일정 시간 매일 글을 올리면 알고리즘에 의해 그렇게 뜨는 것 같았다. 이때 조회 수와 완독률은 다르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에게 노출되어 조회 수가 올라가도 그 숫자 모두가 내 글을 읽었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구독자가 진정으로 읽고 올라간 숫자가 아니어도 고무적인 일임은 틀림없었다. 열심히 노력한 대가를 받는 것 같았다. 특히 “크리에이터” 배지는 뭔가 대단한 것을 성취한 느낌이다. 매일 글쓰기의 효과는 이런 구체적 성과뿐 아니라 실력향상에 도움을 줬다. 사용 단어가 늘었고 더 많이 사유했고 작은 에피소드로 내 얘기를 풀어내는 것이 더 자유로워졌다. 물 주고 영양제 준 만큼 나무가 조금 자랐다. 그 나무가 어떻게 자라날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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