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기에 시작한 PT 수업을 만 3년 넘게 했다. 운동을 무지 싫어하던 ‘나’를 봤을 때 이건 엄청난 일이다. 주위 사람도 헬스장에서 운동한다는 사실보다 PT를 계속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PT는 잠깐 몇 개월 하면서 기구 사용법이나 운동하는 법을 익히는 거 아니에요? 혼자 하는 법을 알고 나면 안 해도 되지 않아요?”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간혹, “헉, PT 꽤 비싼데! 계속하는 거 좀 부담되지 않아요?”라고 묻기도 한다. 맞다, 부담된다. 하지만, 의지박약인 내가 운동하려면 돈이라도 들여야 한다.
PT 수업에 재미를 좀 붙일만할 때 코로나로 모든 시설이 폐쇄되어 한 달 넘게 쉬며 마음과 몸 상태가 원상 복귀했다. 헬스장이 영업 재개했을 때 다시 수업하러 가기가 귀찮았지만, 등록한 비용이 아까워서 갔다. 2:1로 같이 수업 듣던 윤지가 등록 연장하지 않겠다고 해서 잠시 망설이다 1:1 수업으로 집중해서 운동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연장했다. 1:1 수업의 효과는 3~4개월이 지나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3~4개월에 십몇 킬로를 뺐다는 증언이 블로그, 유튜브는 물론 주변에도 넘쳐나는데 난 고작 1~2kg 빠지는 수준이었다. 트레이너에게 불만을 토로하면 식단을 같이 해야 한다면서 매일 무엇을 먹었는지 사진 찍어 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하지 않았다. 여태껏 한 번도 찍어 보낸 적이 없다. 귀찮고 번거롭다. 효과가 없자 등록한 만큼만 다니고 관두려고 했다.
그런데 그놈의 정 내지는 그만하겠다는 의사표시가 어려워, 연장하라는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재등록했다. 무려 36회를. 일할 때는 칼같이 거절하고 할 거 하고 딱 부러지게 구분하는데, 일상에서는 그게 잘 안된다. 실연 후 10개월가량 심리상담을 받을 때도 사실 7개월 즈음에 그만 다녀도 될 것 같았다. 상담 회차 마지막 날에 ‘이제는 그만 다녀도 될 거 같아요’라는 말을 해야겠다고 매번 결심했지만, 그 말을 선뜻하지 못해 4회 등록을 몇 번 더 한 후에야 관둘 수 있었다. 그렇다고 상담을 더한 그 시간이 불필요하진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트레이너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하고 재등록했다. 그사이 트레이너의 수업방식에 익숙해지고 운동에 탄력이 붙었기에 이참에 뿌리를 뽑자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그런데 중간에 트레이너가 바뀌었다. 기껏 내게 필요한 운동이 뭔지 파악한 트레이너가 바뀌자 실망스러웠지만, 바뀐 트레이너에게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트레이너에게 익숙해지고 운동에 가속도가 붙어 몸의 변화를 느낄만하면 다른 트레이너로 바뀌었다. 3년간 다섯 번 바뀌었다. 세 번째 트레이너가 바뀔 때까지 왜 서로 인수인계를 제대로 안 하는지 불만이었다. 내가 어떤 운동을 했고 어떤 운동은 취약하고, 잘하는지를 다들 직접 겪어보고 파악했다. 트레이너마다 열심히 기록하더니 그 기록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속으로만 읊을 뿐. 정말 그런 말은 대놓고 하기 어렵다. 나중에 트레이너 직업의 특성을 이해하자 불만을 접을 수 있었다. 가르치는 사람마다 잘 가르치는 분야가 다르다.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운동 위주로 가르친다. 첫 번째 트레이너는 초보자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기초 체력훈련을 잘 가르쳤다. 두 번째 트레이너는 사람에게 맞는 자세를 완벽하게 잡아주는 사람이었다. 스쾃, 런지 자세를 그때 잘 배웠다. 혼자 운동할 때 위험한 것 중 하나가 잘못된 자세로 운동하는 것이다. 바른 자세가 몸에 익을 때까지 트레이너에게 봐달라고 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자세가 굳어버려서 본래 써야 하는 근육이 아닌 다른 근육을 쓰다가 더 아플 수 있다. 다행히 이 트레이너는 자세 잡는데 필요한 설명을 쉽게 잘했다. 식단과 단백질의 중요성도 강조하여 단백질 위주 식사를 하려고 노력했다. 단백질 음료, 파우더는 권하지 않았다. 음식 섭취만으로 한계가 분명 있지만, 시중에 나온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 파우더는 그만큼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고 했다. 단기간 몸을 만들 것이 아니므로 식단으로 조절해 보라고 권했다. 덕분에 체지방량이 이때 제일 많이 빠졌다. 체지방률 26.5%, 내장지방 6, 체형은 적정으로 나왔다. 코로나로 다시 운동한 지 11개월이 되었을 때다.
세 번째 트레이너는 근육량 증가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었다. 유산소 운동과 함께 무게를 계속 올렸는데 그때 레그프레스(Leg Press)를 100kg까지 들 수 있었다. 그는 칭찬을 잘했다. “체력이 좋다, 근력 세다” 하면서 강도 높은 운동을 많이 시켰다. 유산소 운동을 숨이 턱까지 차게 시켰는데 기분 좋았다. 땀이 떨어질 정도로 운동을 하고 나면, 상쾌한 희열이 느껴졌다. 내 능력 이상으로 무게를 많이 올린다 싶을 때 “너무 무겁다, 못한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할 수 있어요, 들어 올리지 못하면 옆에서 제가 다 도와줄게요. 시도해 보시죠”라고 권했다. 그 말에 반발하기 어려워 기를 쓰고 들어 올리면 “거 봐요, 할 수 있잖아요” 하면서 나보다 더 좋아했다. 친구는 “그러다가 네 몸 다친다 “라며 하지 못하겠으면 분명하게 안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라 했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는 무엇을 먹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그의 논리는 “제가 하라는 대로만 운동하면 안 빠지려야 안 빠질 수 없어요. 음식은 먹고 싶은 대로 드세요. 단, 많이 먹지만 마세요”라고 했다. 이미 운동량이 상당하므로 굳이 음식까지 조절하라고 하지 않겠단다. 체중과 체지방이 조금씩 빠졌고 근육량은 2kg 늘었다. 겨우 2kg였지만, 근육량은 제일 많이 늘었다.
네 번째 트레이너는 현상 유지 운동을 시켰다. 이때는 나도 현상 유지하려고 운동했기에 서로 잘 맞았다. 가끔 근육량을 더 늘리고 싶었지만 잘 늘지 않았다. 체질적으로 근육이 잘 안 붙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게 나인 것 같다. 웨이트와 식단을 해도 변화가 크게 없다. 트레이너가 지금은 운동보다 식단이 더 중요하다고, 햇반 반 그릇에 닭가슴살만 3개월 먹으면 근육이 확 늘어날 거라고 극단적인 방법을 알려줬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식단은 평생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으므로.
PT가 재미없어지면서 필라테스 수업을 시작했다. 필라테스도 1:1 수업을 한다. 자세 교정과 코어 근육 향상에 좋은 운동이라 자세를 섬세하게 코칭받으면 훨씬 도움 된다. 항상 복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2년 가까이했더니 제법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트레이너와 운동하면 무엇보다 내 몸 상태에 맞는 운동을 할 수 있어 좋다. 운동기구마다 들어 올린 무게를 기억하지 않아도 그들이 기억하고 다음 수업 시간에 반영해 주었고, 기구에 앉을 때는 높이 조절, 앞뒤 조절 등 위치 조절을 알아서 해주었다. 한마디로 난 기억 하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다. 트레이너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어느 근육에 힘을 주라고 하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어떤 자세를 취하라고 하면 설명하는 대로 따라 했다. 자주 하는 자세, 재밌다고 느낀 자세는 굳이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머리에 입력되었다.
이따금 호텔에서 묵을 일이 있을 때, 호텔 짐(gym)에서 기구 운동을 해보려고 했으나 사용법을 몰라 못했다. ‘분명 이거로 조절하는 거 같았는데 왜 꿈쩍도 안 하지?’라고만 생각하고 그걸로 끝이었다. ‘트레이너에게 물어봐야겠다’라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운동하고 싶지 않은 나의 기질은 이런 데서 발휘된다. ‘사용법은 굳이 알고 싶지 않다’로 귀결되는 마음으로. 어차피 혼자 운동할 일이 없으므로 필요치 않았다.
1:1 수업을 이렇게 오래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운동 루틴을 짤 필요가 없다. 기계 사용법을 몰라도 기계운동을 할 수 있고, 유산소 운동 순서를 만들지 않아도 땀이 쭉쭉 나게 운동할 수 있다. 매번 똑같이 하지 않고 오늘은 상체, 내일은 하체, 오늘은 복근운동, 내일은 엉덩이 운동 이런 식으로 골고루 운동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준다. 운동하다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허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운동으로 바꿔서 할 수 있다. 손목이 아프다고 하면 손목에 무리 가지 않는 운동을 시킨다. 또 다른 이유는 의지가 약한 나를 움직이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트레이너와 수업하는 날은 꼬박꼬박 빠지지 않고 갔지만, 자유의지로 가야 할 날에는 도무지 내가 나를 움직이지 못했다. 발걸음이 그리로 잘 향하지 않았다. 수업하는 날에 트레이너가 시킨 나머지 공부는 성실하게 수행했어도, 집에서 하거나 개별적으로 헬스장에 가서 더하지는 않았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회사 복지 포인트와 서울사랑상품권을 이용하면 꽤 쏠쏠히 절약할 수 있다. 돈 들여 운동할 수 있는 건 부양가족 없는 사람의 장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