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지만 성실합니다

by 지홀

자기소개서에 단골처럼 쓴 ‘성실하다’라는 단어는 휴대전화로 문자 보낼 때 자동 문장이 완성되는 것처럼 ‘책임감 강하고 성실합니다’로 완성되는 문장에 들어가는 말이었다. 내가 성실한 건 맞지만, 진짜로 성실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건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뚱뚱해 본 적이 없어서 살 빼기를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다. 다만 복부비만이 콤플렉스였는데, 옷으로 교묘히 가리고 다녔다. 항상 하의 위로 상의를 늘어뜨려 입었다. 그 위에 조끼, 재킷, 카디건 등을 걸치면 배를 가릴 수 있었다. 치마는 A라인 정도였고 주로 바지를 입었다. 원피스, 플레어스커트, 니트류 옷은 절대로 입지 않았다. 여름엔 가방으로 가리고 다녔다. 항상 큰 가방을 메고 다녔다. 다행히 키가 큰 편이고 팔다리가 가늘어서 사람들은 내 배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이렇게 배가 나오게 된 건 밥을 많이 먹어서다. 왜 밥을 많이 먹었냐면 허리가 끊어지지 않을까 염려되어서였다. 얼토당토않은, 어리석고 엉뚱한 생각을 어렸을 때 했다. 밥상에서 밥을 먹다 우연히 내 배를 봤다. 몇 살 때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윗옷이 짧았던지 배가 보였다. 허리를 기준으로 윗배와 아랫배가 선명하게 갈려 허리가 꼭 끊어질 것처럼 보였다. 겁이 났다. 숨을 참고 배에 힘을 주었더니 그 둘의 경계가 더 선명해졌다. 어린 마음에 배가 커지면 허리가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밥을 많이 먹었다. 엄마가 밥그릇에 밥풀 남기지 말고 깨끗이 먹으라고 하셔서 언제나 내게 주어진 밥을 다 먹고 더 먹었다. 먹다 보니 위가 늘어나 점점 더 먹었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내 배가 비정상이라는 걸 알았다. 고1 때 수학여행을 갔다. 반 아이들과 교복 입고 찍은 사진을 보니 내 배만 볼록했다. 다른 아이들은 예쁘게 치마가 딱 떨어졌는데, 나만 배가 나와서 앞 치맛단이 올라갔다. 그 후로 배를 가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먹는 양을 줄여 살 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임신한 사람처럼 배가 하도 나와 ‘복막염에 걸리면 복수가 차서 배가 커진다는데 그런 게 아닐까?’, ‘성모마리아처럼 내가 애를 가진 게 아닐까?’ 등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걱정했다. 엄마에게 배를 내밀며 “엄마, 내 배가 너무 나온 것 같지 않아?”라고 하면 엄마는 항상 “여자는 그 정도 배는 다 있어, 어디가 나왔다는 거니!”라고 하시며 더 먹으라고 하셨다. “흐잉, 엄마 다른 애들은 이런 배가 없다고요”라고 항변했지만, 귀담아듣지 않으셨다. 그렇게 엄마가 주시는 대로 다 먹고, 심하다 싶을 때 가끔 굶으며 살았다.


40대에 접어들자 나잇살이 더해져서 옆구리에도 살이 붙어 옷으로도 잘 가려지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들이 세월 따라 살찌고 뱃살이 있는 것을 보니 내 배가 유난히 더 나온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이 나이에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라며 자신감을 가졌다. 우습게도 생전 입지 않던 원피스를 입기 시작했다. 몸매를 잘 가려주는 디자인의 원피스가 많았고, 뱃살은 세월의 흔적으로 받아들여져 거리끼지 않았다. 그렇게 평소 먹던 대로 살았다.


천성이 게을러 늘어져 있기를 좋아했다. 먼 거리는 물론 가까운 거리도 택시 타기 일쑤였다. 3보 1 택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운동을 정말 싫어했다. 잘하지도 못했다. 100 미터를 20초에 뛰었다. 먹고 늘어져 있으니 살이 찌기 시작했지만 인지하지 못했다. 입던 옷이 끼는 느낌을 받았는데 하도 빨아서 줄어든 줄 알았다. 옷 사러 갈 때 평소 입던 치수의 하의가 꽉 끼었을 때도 ‘요즘 옷은 너무 작게 나와’라고 하면서 한 치수 큰 걸 샀다. 상의는 늘 같은 치수여서 더 의식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에야, 내 인생의 몸무게를 찍은 걸 알아챘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생전 보지 못했던 숫자가 몸무게라고 적혀 있었다. 혈당은 경계 수치였다. ‘댕~’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했다. 2020년 9월 헬스장에 등록했다. 트레이너와 PT를 처음 하던 날 체지방 검사를 했는데, 체지방률 35.6%, 내장지방 10 이 나왔다. 참담했다. 트레이너는 자기만 잘 따라오면 된다고 했다.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힘들어도 했다. 수업 후 사이클 1시간, 마운트 클라이밍, 버피 5세트, 랫풀다운 3세트 등의 나머지 공부를 번갈아 시키면 그걸 다했다. 트레이너가 나머지 공부를 하는지 또는 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하라고 했으니 따랐다. 꾀부리지 않고 1시간이면 1시간, 5 세트면 5세트 꽉 채웠다. 어떤 날은 힘들어서 나머지 공부를 하지 않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끝까지 개인 운동을 하고 갔다. 그때 깨달았다. 난 너무 성실한 인간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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