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염려증과 불안증

by 지홀

30대 때 한 대학에서 개설한 ‘브랜드매니저’ 과정을 수강한 적이 있다. 그때 알게 된 언니가 화가가 되었다. 그림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전공을 살려 작가로 변신했다. 그 언니가 전시회를 연다고 하여 오랜만에 만났다. 언니는 아들과 둘이 사는데 어느 날 혼자 단감을 깎아 먹다가 식도가 막혀 죽을 뻔한 얘기를 들려줬다. 단감 크기가 좀 크다 싶었지만 깨물어 먹을 요량으로 먹었는데 조각 하나가 꿀꺽 넘어가다 목에 걸리고 말았단다. 콱 막혀서 숨을 쉬기 어려웠다고 했다. 말도 나오지 않고 어찌할 바를 몰라 이대로 죽나 싶은 순간에 다행히 아들이 발견해서 뒤에서 껴안고 명치 쪽을 팍 쳤더니 단감 조각이 나와서 살았다고 했다. TV에서 보던 것처럼 그 행동이 진짜 효과 있었다며 웃었다. “지난 일이니까 웃으며 말하지, 그 순간에는 정말 아찔했어. 나이 들면 물먹다가도 사레가 들린다더니 정말 그래”라며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오래전 출장길에 기내에서 본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제목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데, 여주인공이 빵을 먹다 목에 걸려 죽는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유부녀였던 그녀를 몰래 짝사랑했던 남자가 그녀의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그녀를 찾아왔다. 외간 남자가 집에 와 놀란 그녀는 빵을 먹다 목에 걸렸다. 짝사랑 남자가 놀라서 그녀를 뒤에서 껴안고 뱉어내도록 하려고 했는데 그때 마침 그녀 남편이 들어와 성추행하는 줄 알고 그 남자를 떼어내 둘이 격투를 벌이는 사이 여자는 죽는다. 너무 어이없는 장면이어서 이 영화가 코믹영화인가 싶었는데 진지한 멜로 장르의 영화였다.


그렇게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니 내 뇌에 경고음이 울렸다. 마치 예전 TV 프로그램에서 저녁에 먹은 가시가 몸속을 돌아다니다 장기를 찔러 자는 사이 패혈증으로 죽었다는 사례를 봤을 때처럼 “조심해야 한다”라는 경고가 머리에 새겨졌다. 그 프로그램은 일상에서 일어날법한 위험한 상황을 알려주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는데 어쩌다 우연히 본 회차에서 그런 내용을 봐 버리고 말았다.


나는 공포영화를 안 본다. 꼭 내 방에, 우리 집에 그 귀신이 나타나거나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겁나기 때문이다. 20대, 30대 때는 툭하면 가위에 눌리고 밤에 잠 못 자고 무서워하면서도 봤지만, 마흔 살 이후로 절대 안 본다. 서른 중반 어느 날, 친구들과 저녁 먹는데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아빠가 동네 병원에 다녀왔는데 대장암일지 모른다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친구들에게 뭐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동대문에 있던 이대 부속병원으로 아빠를 모시고 갔다. 내시경을 하고 폴립 십여 개를 떼어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 동안 온 식구가 긴장하며 기다렸다. 그때 거리에서 동전을 넣을 수 있는 상자를 앞에 놓고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려 동냥하는 거지를 봤다. 선한 일을 하면 되돌려 받는다는 말이 떠올라 그 거지에게 적선하며 아빠에게 아무 일이 없기를 기원했다.


다행히 용종 크기가 컸으나 암은 아니었다. 5년마다 추적 관찰하라는 말을 들었다. 가족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는 내심 좋은 일을 한 결과인가 싶었다. 그 후 가끔 구세군 자선냄비에 넣다가 어린이재단에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했다. 자동이체로 해놓고 후원한다는 사실을 거의 잊고 지내는데 어느새 25년이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 메일에는 ‘후원자님이 만들어 낸 변화를 확인해 보세요’라는 문구와 링크가 있었는데 좀 미안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마음보다 내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탓이다.


아빠가 암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아팠다. 아빠처럼 대장에 뭔가 이상이 있나 싶어 전전긍긍했다. 자발적으로 대장내시경을 받고 아무 이상 없다는 소견을 듣고서야 안심했다. 그때는 수면내시경이 없던 때여서 배가 터질 듯 아픈 것을 참느라 생고생했다.


몇 살 때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나를 아기에게 젖먹이던 자세로 안았던 기억으로 미루어 아마도 아주 어린 나이였을 것이다. 말을 할 수 있던 나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자지러지게 우는 나를 영문 몰라하시며 안아주기만 하던 엄마의 손길과 아빠의 목소리가 기억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하며 그냥 안고 달래기만 하던 엄마를 느꼈었다. 그 품에서 울음이 잦아들며 두려운 마음이 점점 사라졌었다. 신기한 건 그때 내가 왜 울었는지는 물론 그 무서웠던 감정도 남아있다는 거다. 꿈이었는지, 전생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다. 장난으로 입을 오므리고 양 볼에 바람을 넣어 부풀렸는데, 그 양 볼이 걷잡을 수 없이 점점 커져서 결국엔 터져버릴 것 같은 마음에 초조하고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 두려움으로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 기억이 묻혀있다가 몇 년 전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다녀오며 소환되었다. 마흔 후반, 쉰 초반에 극심한 불안함이 엄습해 힘들었다. 지금은 꽤 마음이 안정되었지만,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번 아웃과 갱년기가 겹쳐서 그랬던 것일까’라며 추측할 뿐이다. 작은 소리, 미세한 냄새에 퍼뜩 놀라 당장 불이 나거나 뭔가가 폭발하거나 큰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함에 시달렸다. 그 무렵, 혼자 지내기 힘들어 부모님과 다시 같이 살기로 했다. 겉모양은 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어디 아프시면 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마음이든 몸이든 아프다고 말씀드리는 일은 부모님께 걱정을 안겨드리는 일이므로 잘 말하지 않게 된다.


부모님은 이유야 어떻든 혼자 사는 딸이 늘 안쓰러웠기에 대환영이었다. 살림을 합치며 냉장고가 두 개가 되었는데 가끔 부모님이 쓰시던 냉장고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아마도 냉장고의 냉각 기능이 작동되는 소리였을 테지만, 내게는 몹시 거슬렸다. 몇 날 며칠을 꾹 참았다. 그러다가 그 소리로 냉장고가 폭발할 것만 같은 불안함에 코드를 뽑아버렸다. 엄마는 멀쩡한 냉장고인데 쓰지 말라고 코드까지 뽑아버린 나를 한동안 이해하지 못하셨다. 엄마에게 내 불안의 심각도를 터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으실 만큼의 불안한 마음을 내비치며 심적 안정을 얻었다. 엄마가 “어려서부터 가위 잘 눌리더니 기가 허해서 그런 거야”라며 손을 잡아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아주 어렸을 적 나를 안고 달래주시던 그때처럼 아주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엄마는 나의 정신적 지주, 마음의 안식처다. 물론, 생활 습관과 가치관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괴로움도 존재하지만.

그런 불안한 기질이 있어서인지 생선 먹을 때 가시에 걸리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며 먹는다. 밥이랑 생선을 같이 먹지 않는다. 밥에 섞이면 입안으로 들어간 가시를 골라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선만 따로 먹어야 혹여라도 다 발라내지 못한 가시가 입 안에 있어도 솎아내기 쉽다. 음식을 입에 넣고 말하는 일도 삼간다. 잘못하면 사레들리기 쉽다. 그 언니의 말을 들은 이후로 부모님께 드릴 때 사과, 배, 단감 같은 딱딱한 과일을 잘게 썰어 드린다. 엄마가 치아 때문에 깨물기 어렵다고 과일을 얇게 저미듯이 자르실 때는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겼는데, 그렇게 드시고 있어 다행이구나 싶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나도 예전보다 작게 썰어 먹는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완경으로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이 없어지면 각종 질병에 노출된다”라는 말에 경계심을 드러내며 운동, 식단을 열심히 한다. 친구들은 여성 호르몬 약을 먹으면 도움 된다고 권하는데 약은 또 싫어한다. 감기처럼 약이 없다고 하는 질병은 버티면서 이겨보려고 노력한다. 약 먹고 바로 낫는 아픔은 또 바로 먹지만. 영양제, 건강식품을 챙겨 먹는다. 비타민D, 마그네슘, 오메가 3, 홍삼, 루테인 등등 장복하지는 않지만, 그때그때 좋다는 걸 먹는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몸에 좋다는 음식과 영양제만 먹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내게 100세까지 살겠다며 농담하는 사람도 있다. 정작 나는 건강염려증으로 이 음식이 좋다면 이 음식을 먹고 저 영양제가 좋다면 저 영양제를 먹으며 흔들리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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