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을 할까 말까 하다가 막차를 탔다. 회사에서 10월 말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 저녁 7시 이후부터 굶으라고 했다. 평소에도 7시 전에 저녁을 먹고 아침 8시에 먹으니 13시간 정도 간헐적 단식을 한다. 그런데 시간을 딱 정해서 그 이후로 먹지 말라고 하면 괜히 더 먹고 싶고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초조해지기도 한다. 어제저녁이 그랬다. 6시 좀 넘어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드라마를 보다가 엄마랑 얘기하다가 7시가 다 되어 가는데 밥을 다 먹지 못했다. 갑자기 초조해지며 서둘러 밥을 다 먹고 물까지 마셨다. 7시 이후에 물도 마시지 말라고 그랬다.
저녁을 짜게 먹었는지 목이 텁텁하고 물을 마시고 싶었는데 8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물을 마셔도 되나 고민했지만, 목이 말라 힘든 것보다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물 마시고 싶은 걸 참지 않았는데, 결과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 잠은 많이 자기로 했다.밤 11시에 누울 결심을 했지만 역시 이것저것 꼼지락대다가 12시에 겨우 누울 수 있었다.
이른 아침에 빈속으로 갔다. 병원에는 검진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병원에서는 탈의실 열쇠 겸 RFID 칩이 들어간 팔찌를 나눠주었다. 처음에 문진 의사를 만났다. 내 생년월일을 묻고 사전에 작성한 문진서 내용을 다시 확인한다. 그다음 흉부촬영하는곳으로 가라고 하여 이동했다. 흉부촬영하는 곳에서 팔찌를 태깅하면 대기자로 이름이 올라간다. 화면에 몇 번 대기인지 순서가 뜬다. 의사 또는 간호사가 호명을 하면 들어간다. 그들은 내 생년월일을 물어보고 난 대답을 함으로써 내가 나임을 증명한다. 흉부검사가 끝나자 다음 검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라고 친절히 안내해 준다. 검사하는 사람들은 검사 시작 전 매번 습관처럼 생년월일을 물어보고 난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말한다.
대기실에 사람들이 똑같은 검사복을 입고 앉아있다. 대부분 휴대폰을 본다. 나도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자세, 표정, 행동은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호명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낱 미물, 부품의 하나, 개체 수의 하나로 다가왔다. 나를 포함하여. RFID 칩은 내게 번호를 부여하고 그 번호가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며, 어떤 검사까지 받았는지를 알려준다. 검진을 받는 동안 나라는 사람은 없고 번호로 관리되는 개체가 된다. 이 많은 사람들은 검진 병원을 살찌게 만드는 영양제, 영양 공급원이다.
영화 옥자가 떠올랐다. 죽음을 향해가는 돼지 행렬. 검진을 받는 사람들은 죽으러 가는 건 아니지만, 병원에서 수집하는 방대한 의료기록의 일부를 담당하는 부품이다. 똑같은 수검복을 입고 순서에 맞춰 차례대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