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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Dec 07. 2024

망각의 힘

2024. 12. 7

어제 발치하고 오신 아빠가 치아에서 피가 난다고 하셔서 급히 모시고 치과에 갔다. 너무 일찍 가서 의사가 출근하지 않은 시각이라 기다렸다. 그 사이 피가 멈췄고 의사가 봤을 때 딱히 처치할 일이 없어 돌아왔다. 베개에 흥건히 묻은 피를 보고 너무 놀라 무작정 모시고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빠가 괜찮아 지신걸 보고 오후 약속이 있어 친구와 만난 후 저녁에 돌아왔더니 엄마가 누워계신다. 벌써 주무시나 싶었는데 넘어지셨다고 한다. 앞으로 넘어지면서 양팔로 짚었는데 그 이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신다. 


뼈 혹은 힘줄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주말이라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행히 얼굴이나 다리는 다치지 않으셨다. 하지만 손을 지탱할 수 없어 몸을 일으켜 드려야 한다. 팔이 올라가지 않아 밥을 혼자 못 드신다. 옷을 갈아입지 못하신다. 갑자기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셨다. 다쳤다고 연락하셨으면 일찍 집에 왔을 텐데 엄마는 딸이 걱정할까 봐 내가 집에 갈 때까지 말씀을 안 하신 거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지나고 며칠 지나면 오늘의 놀랐던 마음은 가라앉을 것이고 아빠의 치아는 괜찮아질 것이다. 엄마의 양팔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괜찮아지실 것이다. 그동안 상황에 서로 적응하여 불편하지만 그럭저럭 잘 지낼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다쳤던 일은 더 이상 심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시간은 망각을 가져온다. 망각은 때로 약이 되고 때로 독이 된다.


자신의 득실만 따지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건 그래서 어려울 것이다. 지금은 평생 기억할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잊어버릴 것이므로.  자신의 이득만을 쫓는 사람이 뻔뻔하고 두려운 마음을 갖지 않는 건 그 망각의 힘을 알기 때문일 거다. 그 망각의 힘으로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리란 걸 알기 때문일 거다. 잘못된 선택에 의해 계속 부활하는 이들의 공명심(사사로움이나 치우침이 없이 공정하고 명백한 마음)을 자극하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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