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9
어제 운동하고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는데 집에 가자마자 피곤이 몰려왔다. 어지러운 것 같고 화장실에 가고 싶고 토할 것 같기도 해서 양치하자마자 의자에 털썩 앉아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재미나게 말씀하시던 엄마가 걱정되셨는지 피곤하냐고 물으셨다. 난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대번에 내 손과 어깨를 주무르시며 침대에 누워 쉬라고 하셨다. 엄마 왼손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손에 힘을 주지 못하시는 게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려는데 너무 어지러웠다. 얼른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12월에 엄마가 입원하신 병원에서 땅이 빙글빙글 돌아 못 일어났을 때처럼 어지러울까 봐 겁이 났다. 천장을 보니 괜찮았다. 고개를 양 옆으로 돌리는데 살짝 어지러웠다. 심호흡을 하며 '괜찮다'를 속으로 외쳤다. 그렇게 몇 분 있자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큰 게 마려운 느낌이다. 일어나면 어지러울 것 같아 망설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일어났다. 다행히 괜찮았다. 큰 일을 보고 나니 정신이 좀 더 맑아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가끔 속이 답답해지면서 큰 걸 보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하신다. 10여 년 전에 몇 번 기절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그런 증상이 있었기에, 또 기절할까 두려워 얼른 화장실에 가신다. 그러고 나면 좀 정신이 든다고 하신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 증상을 몇 년 전에 겪었다. 쓰러질 것 같이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 때 화장실에 가고 싶다. 큰 일을 보고 나면 좀 낫다. 어젯밤에도 그랬다. 거기에 12월에 어지러워 일어나지 못했던 경험이 더해 속으로 좀 겁을 집어 먹었다.
11시도 안 되어 불 끄고 잠을 청했다. 엄마는 유전병인 거냐며 걱정하시다 주무셨다. 오늘 아침 푹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는 훨씬 개운해졌지만 기분은 계속 불쾌하고 맑지 않았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강했으나 출근해야 하므로 어렵게 집을 나섰다. 버스 안에서 어제 일찍 자느라 걸음 수 달성을 했음에도 수금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속으로 주먹을 내리쳤다. 브런치에도 2일 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다.
오후에 2년 전 퇴사한 직원이 찾아왔다. 우리 회사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참가하러 왔다가 행사 시작 전에 잠깐 들른 것이다. 얼굴이 낯익어서 반갑게 인사했지만 이름이 단
번에 떠오르지 않았다. 입사 후 불과 한 달 있다 퇴사했던 직원인데 좋은 곳으로 이직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명함을 받아 들고 나서야 이름이 기억났고 그에 대한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 상대방이 명함을 주면서 '내가 누군지 모르나?' 하는 표정을 잠시 지었는데 다행히도 금방 떠올라 민망한 상황을 모면했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업계 얘기를 나눈 후 헤어졌다. 당시 팀장이었다는 이유로 잊지 않고 간식까지 사들고 인사하러 와 준 직원에게, 찾아와 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어젯밤의 여파로 오전 내내 피곤하고 힘들어서 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는데, 그 직원과 대화하며 기분이 좋아졌고 간식으로 사다 준 크로플을 먹고 흐리멍덩했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때로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사람이 도와주는 경우가 있다. 친하지 않고 이름 정도만 아는 사이인데 일자리를 소개해준다거나, 어떤 자리에 추천을 해준다거나 소개팅을 해주거나 등등. 출근하기 싫고 출근해서도 억지로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두 번 다시 만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직원을 만났다. 그는 단순히 행사에 온 김에 인사하러 왔을 수 있고 빈손으로 오기 뭐 해 먹을 걸 사 왔을 수 있지만, 내게는 그의 방문이 뜻밖의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그가 떠난 후 같은 팀 사람들에게 간식을 나눠 먹자고 말하며 어깨가 올라갔다. 내가 뭐라도 된 양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무거웠던 머리도 가벼워졌다.
그 덕분에 3일 치 글을 한꺼번에 올릴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