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14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라는 연극을 관람했다. 원작은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로 프랑스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희곡이다. 실존인물은 1600년대 프랑스에서 살았던 검투사, 시인, 극작가로 서른여섯 짧은 생을 살았다. 초상화를 보면 코가 제법 큰 편인데 실제로 '코'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희곡에 등장하는 '시라노'도 코가 콤플렉스다. 이 연극은 원작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록산느를 주인공으로 각색한 연극이다.
록산느를 사랑하지만 외모가 자신 없어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시라노와 잘생긴 외모로 단번에 록산느의 마음을 사로잡은 크리스티앙은 록산느가 잘생긴 외모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말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록산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라노에게 대필 연애편지를 부탁하고 시라노는 진정 어린 사랑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쓴다. 전쟁터로 내몰린 크리스티앙을 찾아간 록산느의 용기는 사랑하는 마음이었으나, 그 마음은 전쟁터에서 보내온 편지 때문에 더욱 공고해졌다. 크리스티앙은 자신도 모르게 시라노가 편지를 보낸 것을 알고 록산느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시라노라고 낙담한 뒤 최전방으로 나간다. 시라노에게 사랑을 고백하라면서. 하지만, 크리스티앙의 죽음으로 시라노는 고백할 타이밍을 놓치고 록산느는 슬픔에 젖어 수녀원으로 들어간다.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라노는 글을 잘 쓰는 덕분에 정치적 발언을 하는 인사가 되고 반대파가 휘두른 폭력에 다치게 된다. 매주말마다 록산느를 찾아갔던 시라노는 끔찍하게 다친 상황에서도 록산느를 찾아간다. 록산느로부터 크리스티앙의 마지막 편지를 받아 든 시라노는 무미건조하게 읽으려고 하지만 감정이 스미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사위가 어둑해진 가운데도 편지를 낭독하는 모습을 본 록산느는 그제야 그간의 편지가 시라노에게서 온 것임을 깨닫게 되지만, 시라노는 록산느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는다.
주인공들의 엇갈린 사랑의 감정이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찔끔 눈물이 나오려다 들어갔다. 그만큼 내 마음이 건조했다.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잠 못 자던 시절이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연애세포는 살아있으나 '사랑'하는 마음의 절절함, 고독함, 열렬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연극은 재미있었다.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았고 배우들은 한결같이 사랑스러웠다. 무엇보다 온갖 좋은 조건과 악조건은 기준이 될 수 없던 젊은 날, "사랑하는 마음 하나"가 최고인 그 시절은 눈부시기에, 그 마음을 잘 표현한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흔한 듯 흔하지 않다. 마주하는 사랑은 기적이라는 말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