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껴안는다

2025. 4. 15

by 지홀

"한강"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뉴스였다. (지금은 그냥 부커상으로 부른다고 한다. 이 상을 후원하던 맨 그룹이 후원을 중지했다고 한다) 작가이름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과 같다니. 하지만 책 읽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들지 않았는데 호불호가 갈렸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불호'가 더 많았다. 주된 의견은 읽기 불편하고 힘들고 중간에 덮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뉴스는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우리나라 작가가 탈 수 있는 상인가?'란 생각부터 '진짜?' 하며 놀라기 바빴다.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단톡방 여기저기서 기쁨의 비명이 들려왔다. "노벨문학상을 원어로 읽는 사람"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늘 번역본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드디어 원어 느낌 그대로를 전달받을 수 있다는 미묘한 기쁨이 넘치는 말이었다. 그제야 작가에게 관심이 갔지만 역시 책 구입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망설여졌다.


그러다 회사 노조 도서관에 꽂혀있는 책을 발견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책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하얀 천처럼 쓰인 것이 쓰나미 같은 파도인지, 빙벽인지 가늠할 수 없는 표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친 건 한 달이 훨씬 넘게 지난 뒤다. 거제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첫 페이지를 읽었다. 버스로 4시간을 가야 했으므로 왕복 8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부터 어둡다. 고통에 찬 주인공의 심리가 전달되어 나마저 숨쉬기 어렵다. 다리에 피가 안 통하는 것 같고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다. '아무래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책을 읽어 어지러운 게 아닐까? 오래 앉아서 다리에 저린 느낌이 든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몸이 이상한 것 같아 눈을 감는다. 깜빡 잠이 들었다. 1시간 정도 잤다. 머리가 다시 맑아진 것 같아 책을 들었다. 그러나, 읽을수록 내 몸도 아파지는 것 같다. 인선의 손가락이 잘려나가고, 봉합한 손가락의 신경을 살리기 위해 3분마다 바늘로 찌르는 장면은 내 손가락이 그런 듯 아프고 힘들다. 신경을 살리기 위해 그런 고통을 감내해야 하다니. 그렇게 힘들고 불편한 마음으로 책을 읽다 한 문장에서 눈물이 핑 돈다. 인물들의 슬픔이 어느새 내게로 스며들어 몸에 쌓였던 듯 툭하고 물이 눈 밖으로 솟아오른다.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끔찍한 기억을 실어 나르는 무미건조한 말은 마치 작가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듯하다. 그녀가 노벨문학상을 탄 후 유튜브 여기저기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차분하고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직업이 소설가인 "경하"는 바로 "한강" 그녀처럼 느껴진다. 그녀가 이 소설을 쓰는 동안 겪은 심신의 고통을 에세이로 쓴 것만 같다.


아주 희한한 경험이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내 몸도 아픈 것 같았다. 통영에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도, 집에서 읽을 때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책을 내려놓으면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읽으면 숨을 크게 내쉬어야 했다.


인선의 아버지는 바다에서 나는 건 아무것도 입에 댈 수 없었다고 말한다. 제주에 사는 사람이 바다에서 나는 음식을 먹지 못하다니, 거의 먹을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아무렇지 않게 제주 바다에 놀러 가고 해산물을 먹었는데. 그런 역사가 마치 아주 오래전 일인 양, 역사책에만 존재하는 것인 양, 흘려들었던 일인데. 전혀 실감하지 못하던 일인데.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집요하리만치 세세하게 표현한 문장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에 그려지고, 그려져서 더 끔찍하고 슬프다. 그 감정이 전이되어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처럼 떠나보낼 수 없는 사건의 주인공들을 이해하게 된다. 해피엔딩, 세드엔딩과 열린 엔딩 등의 소설을 봤지만, 이 책은 그 무엇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내심 '인하는 손가락 신경을 회복했을 거야, 경하와 인하는 결국 나무 무덤을 완성하고 마음이 편안해졌을 거야, 어둡고 차가운 방에 누웠던 경하는 다시 기운을 차렸을 거야'라며 결말에 그런 내용이 들어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1차원적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한 챕터를 끝내고 새로운 챕터로 나아가는 희망을 기대했지만, 소설 제목처럼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은 슬픔과 고통 속에 이어지고 기억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했는데, 끊어낼 수 없는 기억을 껴안고 사는 마음이 결국 사랑이라고 말한 게 아닐까?

봄이 다시 고개를 들고 인사한다 (08:4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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