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4
집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파트 모델 하우스나 동네에 신축한 빌라 분양을 한다고 하면 가끔 둘러본다. 인테리어가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 내장재는 어떤 것들을 쓰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이곳저곳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는데, 더구나 부모님 집을 한번 내부 수리한 경험으로 내장재 공부가 좀 되었기에 바닥, 창문, 방문, 욕실 타일 등 어떤 자재가 더 좋아 보이는지 알게 된다. 집 가격 대비 내장재가 너무 조잡하고 허술해 보이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가성비 좋은 집도 있다. 더구나 새 집에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진 집을 볼 때마다 '나도 이렇게 살면 좋겠다'는 부러움을 반쯤 갖게 된다. 평소에도 주택가를 걸을 때면 집들을 유심히 보며 걷는 편이다. '내가 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하면서. 가끔 EBS의 "집"이란 프로그램을 본다. 잘 지어진 집을 볼 때마다 내 취향에 맞는 집을 지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가 이내 마음을 접고는 한다. 집 지을 땅, 경제력은 물론이고 일일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떠올라 머리가 지끈거린다. 부모님 집수리를 할 때도 선택해야 할 사항이 꽤 많았다.
부모님이 사십 대였을 때 집을 지으신 적 있는데 일부 베란다 쪽이 부실공사여서 내내 고생한 적 있다. 아빠는 그때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하신다. 엄마는 그때 어떻게 집 지을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두 분은 이미 잘 지어진 집으로 이사 가는 걸 추천하신다. 새로 집을 짓든, 잘 지어진 집에서 살든 둘 다 돈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문제지만. 내가 원하는 공간을, 예산에 맞춰 얻기가 쉽지 않다.
한 때 한강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매일 멋진 야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강 보며 살면 우울증에 걸린다"면서 반대 아닌 반대를 하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한강이 보이는 곳에 살려면 수십 억하는 아파트여야 하는데, 언감생심 꿈꾸기 어려운 집이란 걸 서로 알기 때문일 거다. 그 무렵에 대리만족으로 강 뷰를 볼 수 있는 호텔에서 호캉스를 하거나 여행지에 가면 오션뷰, 리버뷰를 선택했다. 하루나 이틀 자는 정도로는 우울해지기는커녕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요즘에도 여행 가면 하버뷰, 오션뷰, 리버뷰 등을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추가요금을 내면서까지 선택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산이 보이는 곳도 괜찮다. 나무와 숲의 초록초록한 색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진다. 동생이 집을 구하며 소위 숲세권을 선호했는데 공감할 수 있었다. 숲을 볼 수 있는 집도 강을 볼 수 있는 집만큼이나 비싼데, 그래도 우리나라는 사방이 산이기 때문에 열심히 손품, 발품 팔면 적합한 곳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집은 기본적으로 튼튼한 집이다. 지진에도 거뜬히 견디는 집. 그러나 우리나라는 내진설계가 된 집이 거의 없다. 선택할 수 있는 건 필로티 구조를 피하는 거다. 신축 건물은 거의 필로티 구조이므로 이 조건을 피하면 선택의 폭이 적어진다. 아파트도 주택도 구축 건물을 봐야 한다. 아파트보다 주택을 선호하는데 관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눈, 비 올 때 집 주변을 둘러보며 낙엽을 쓸고 눈을 치우고 몇 년에 한 번씩 방수 공사를 해야 한다. 체력과 경제력이 있다면 별 문제되는 일은 아니다.
집 자체 말고 어떤 집이기를 원하는가로 보자면, 사람들이 쉽게 방문하는 집이었으면 한다. 주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집이되 때때로 모임을 갖고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 집. 나를 보러 오고 싶은 사람이 편하게 방문하고 싶은 곳. 문턱 낮은 집.
집이 튼튼해야 하는 것처럼 체력을 강화하고, 문턱 낮은 집을 만들려면 마음이 좀 더 건강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건강한 심신이 타인을 받아들일 여유를 줄 것이므로. 타인에게 즐거운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