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나씩만

2025. 5. 25

by 지홀

명상이라고 하면 가만히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어떠한 잡념도 떠올리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명상을 하다 보면 형언할 수 없는 초월적인 마음의 상태를 갖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친구가 새벽 5시에 일어나 찬물 샤워를 하고 불경을 읽은 후 기도와 명상하는 루틴을 십 년 넘게 해오고 있는데, 그 친구는 명상을 하며 정말 그런 경험을 한 적 있다고 했다. 나는 요가를 하거나 다른 여러 가지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명상을 여러 번 했지만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일이라 그게 어떤 상태가 되는지를 잘 모른다. 다만, 어렴풋이 느끼는 건 '몰입 상태'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뭔가에 완전한 몰입을 하고 나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다른 잡념이 떠오르지 않고 오롯이 그 '대상' 혹은 '행위'에 집중하는 일 자체가 힐링된다.

요새 가끔 듣는 얘기가 걷기 명상, 음악 명상, 호흡 명상과 같은 것이 있는데 모두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자율신경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약을 먹은 후 저림 현상은 사라졌으나 뒷목과 오른쪽 눈 위가 많이 쑤셨다. 그런데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림에 집중하는 시간이 명상하는 것처럼 잡념을 없앴거나 다른 일에 신경 쓰며 아픈 부위를 자꾸 떠올리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일이 있을 때 단순한 일을 반복하며 머리를 비우듯이.


멀티로 일하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제대로 해내야 부하가 걸리지 않는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하면 그중 하나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숙련된 일이라 잘 처리할 수 있지만 실수를 저질러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멀티태스킹을 할 줄 알아야 유능한 줄 알았는데 그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지름길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내 머릿속에 여러 장면이 복잡하게 엉켜 떠오른 건 평소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그 순간에는 정말 나란 존재가 없어질 것 같았다. 나를 이루고 있는 가치관, 생각, 기억들이 모두 사라질 것 같아 두려웠다.


밥 먹으면서 휴대폰 보고, 버스 타고 가면서 휴대폰 보고, 길을 걸으며 휴대폰 보고, 컴퓨터를 보며 휴대폰 보고. 1초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무엇이라도 보고 듣고 머릿속에 저장하려고 애썼다. 그리 유익한 콘텐츠가 아님에도, 지금 꼭 톡을 나눌 필요가 없는데도, 내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알고리즘으로 보여주는 콘텐츠를 볼 뿐임에도. 그러나 실은 그런 일련의 행동이 허투루 시간을 소비하고 있던 것임을 깨닫는다. 밥 먹을 때는 밥에 집중해서 맛과 재료를 음미하고, 버스 탔을 때는 창밖을 보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상념들을 곱씹거나 흘려보내거나 멍한 시간을 보내고, 길을 걸을 때는 등을 곧게 세우고 엉덩이에 힘을 주어 똑바로 걸으려고 노력하며 신호등 및 오고 가는 사람들을 잘 살피며 안전을 우선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여러 사람과 톡을 하다가 엉뚱한 말을 엉뚱한 사람에게 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면 한 번에 한 사람에게만 집중해야 하는 것처럼. 일할 때는 일에 집중하고 놀 때는 놀 때 집중하듯이. 국어시간에 국어 공부를 하고 수학시간에 수학공부를 하듯이. (종종 수업시간에 만화나 하이틴로맨스를 봤다. 아이들과 쪽지를 주고받으며 놀았다.)


한 번에 여러 일을 해 시간절약 했다고 좋아라 했는데, 완전 착각이었다. 어느 것도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그냥 봤다, 들었다, 말했다로만 끝나는 행위들. 차라리 비었다고 느껴지는 시간에 호흡에 집중하는 일이 내 몸과 마음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 같다. 주말에 머리가 아플 때, 자려고 누웠을 때 병원에서 하라던 복식호흡이 도움 되었다. 덜 아프고 잠이 스르륵 들었다.


많은 정보를 탐하지 말고, 많은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많은 일을 하려고 하지 말자. 한 번에 하나씩만. 이렇게 글 쓰는 와중에도 카톡이 쉼 없이 울린다. '나중에 봐도 늦지 않는다. 당장 반응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라고 주문을 외운다. 글 쓰는 중에 엄마에게 할 말, 동생에게 할 말이 생각난다. 잊어버릴까 싶어 카톡을 켜고 싶지만 참는다. '끝내해야 할 말이라면 머릿속에 남을 것이고 나중에 생각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이다'라고 또 주문을 외운다. 앱테크를 자투리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중간에 하지 말고 따로 시간을 내어 그것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하루에 한 번만 하기로 한다. 일상적인 행동의 흐름 중간, 중간에 머리와 몸을 쉬는 시간을 주기로 한다. 멍하게 있거나 호흡을 하며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도록.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는 일을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연습하기로 한다.

봄이 맞나?가을 느낌 바람과 하늘(12:22, 17:02, 17:04)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원하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