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의 힘

2025. 6. 16

by 지홀

따뜻하고 웃음이 묻어나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참 부럽다. 그의 삶이 그렇기에 그렇게 쓸 수 있는 것이겠지. 요즘 펀자이씨 툰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https://www.instagram.com/punj_toon/


얼마 전 펀자이씨 툰을 그리는 엄유진 작가의 어머니가 쓰신 "행복한 철학자"를 주문했다. 그 책을 읽은 후에는 작가가 직접 그린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를 읽으려고 한다.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겪는 일상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을 유머로 승화시키고, 힘들고 괴로울 수 있는 상황을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모습을 보며 감탄하게 된다. 어떻게 그런 생각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배운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타고난 기질이 있어야 가능한 일로 보인다. 그녀의 그런 기질은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게 틀림없다. 나이 들수록 유전자의 힘이 얼마나 끈질기고 강한 지 알게 되는데, 유머도 그 한 부분인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유머는 따뜻함이 묻어나는 유머다. 웃긴 말장난, 농담도 빵 터지는 순간에는 재미있지만, 맥락 없이 농담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고민을 심각하게 얘기하는 사람을 앞에 놓고, 그 사람이 한 말 중 웃긴 말이 연상되어 농담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그 말 한마디에 고민거리는 별 것 아닌 것이 되어버리지만, 말한 사람은 나름 심각한 사안이었으므로 좀 허탈해진다. 듣는 사람이 내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거나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결국 말하다가 멈추게 된다.


펀자이씨 툰 중에 작가와 엄마가 음식을 앞에 놓고 대화를 한다. 둘이 맛있게 음식을 먹다가 한 조각이 접시에 남았다. 작가는 먹고 싶은 마음에 "엄마, 나 이거 먹어도 돼?"라고 묻지만 곧이어 "마지막 거 먹으면 살찐대"라고 말한다. 엄마는 포크로 찍어 먹으려던 음식을 들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그럼 내가 안 먹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먹어. 네가 먼저 먹고 내가 이걸 먹으면 마지막 걸 내가 먹은 거잖아"라고 한다. 작가는 그냥 해 본 소리라고 하지만, 엄마는 다 늙어서 살이 찌면 얼마나 찌겠냐며 딸의 고민을 해결해 준다.


얼마나 따스하고 배려심 깊고 기분 좋아지며 웃음이 나는 유머인가. 이런 반응을 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 얼마나 긍정적이고 아름다웠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마지막 거 먹으면 살찐대"라고 말한 사람에게 보일법한 반응은 이런 것들이다.


"아이고, 살은 무슨. 넌 하나도 안 쪘으니 그런 걱정 마"

"괜찮아, 먹어도 돼. 그런 거 먹는다고 살 안 쪄"

"그래? 그럼 먹지 마. 먹고 찝찝할 거면 놔둬"

"무슨 그런 말 같지 않은 미신을 믿어?"

"그냥 먹으면 되지, 별 걸 다 생각한다"

"넌 맨날 살찐다 그러면서 계속 먹잖아. 말만 하지 말고 다이어트를 해"


비 그친 오후(12:32, 12:34, 12:44)


도무지 펀자이씨 툰에 등장한 "엄마"처럼 얘기하는 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주 신선한 충격이자 좌절이다. 나도 펀자이씨 툰 작가처럼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잔잔한 미소를 짓고, 마음이 따뜻해지며 공감하고 위로받기를 바라는데 아주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과연 노력으로 가능한 일일까?

흐린 하늘과 개어가는 하늘(12:47, 18:47)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