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폭우

2025. 7. 11

by 지홀

창문에 부딪히는 비가 거세어 마치 창문을 뚫을 것 같다.

높은 곳에서 들어서인지 바람소리도 예사롭지 않다.

항구와 바다는 온통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클랜드에 이렇게 폭우가 내리는 걸 처음 본다. 30년 전 여기 살 때는 언제나 비가 오다 말다 하고 내려도 세찬 비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가게 앞으로 거의 지붕이 있어서 그 아래로 걸으면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되거니와 금방 그치기 때문에 굳이 우산을 쓰지 않아도 다닐만했다. 재작년에 왔을 때도 그 해 4월에 홍수가 났다고 하더니, 기후변화로 이곳의 날씨도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면 호텔방 침대에 앉아 낭만적인 느낌으로 바깥을 바라봤을 텐데, 창문에 세차게 부딪혔다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처절해 보인다. 윙윙거리는 바람소리와 무섭기까지 한 비 때문에 암막커튼으로 시야를 가렸다. 커튼이 방음 효과를 내어 바람 소리가 덜 들렸다.


비바람 때문에 나갈 수 없다. 원래는 와이헤케 섬 여행을 하려고 했으나 비 예보를 보고 월요일로 미룬 상태다. 어딘가 딱히 갈 곳이 없기에 오늘은 호텔에서 있기로 한다. 아침 먹고 올라와 잠을 더 자려고 했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휴가동안 읽으려고 가져온 책을 펼쳤다. 읽다가 잠들려고. 그러나 정신은 더 말똥 해졌다. 책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비바람 소리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있어도 안전할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내질 못했다. 이성적으로 튼튼한 건물이고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 정도 비에 잘못될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했다. 이건 병이다 싶을 정도로. 가슴도 답답해지는 것 같아 심호흡을 했다.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어젯밤에도 비 소리가 무서워 심호흡을 하며 잠들려고 집중했다. 조카는 침대에 눕더니 바로 잠들었다. 어젯밤에도 잘 자더니. 저렇게 아무 걱정 없이 잠들면 좋을 텐데. 불안함은 서울에서도 이곳 뉴질랜드에서도 똑같구나.


방에만 있어서인지 배고프지 않아 점심을 걸렀다. 대신 이른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룸서비스를 시키려고 했는데 메뉴가 이탈리안 음식 밖에 되지 않는다. 비 때문에 나가기 싫지만, 1층에 내려가야 마음이 좀 안정될 것 같아서 움직이기로 했다. 이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1층 로비에서 객실이 시작되는 21층까지 논스톱으로 다닌다. 그때마다 덜컹거리며 오르내린다. 엘리베이터 문이 흔들린다.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은 덩달아 흔들리며 불안해진다. 호텔 밖으로 나오니 거센 비는 사라지고 소리 없이 내리는 중이다. 걸을만한 비여서 다행이었다. 조카 손을 잡고 식당으로 걸어가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심호흡을 했다. 괜히 가슴을 쫙 펴고 어깨를 들썩들썩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저 내 마음이 만드는 현상일 뿐이라는 걸 알기에 컨트롤할 수 있다고 되뇌며 차분해지려고 노력했다.


첫날 방문했던 저녁 식당 '반상'에 또 갔다. 조카는 첫날처럼 오징어볶음을 시키고 난 차돌된장찌개를 시켰다. 뜨끈뜨끈한 음식이 몸에 들어가자 숨 쉬기가 한결 나아졌다. 이 식당의 음식이 참 맛있다. 마음도 좀 느긋해지는 것 같다. 조카는 음식이 맛있다며 밥 한 그릇을 더 시켜 먹는다. 우리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다행히 비가 잠깐 멎기도 하여 소화시킬 겸 시내를 걸어 다녔다. 하루 종일 27층 높은 방에서 전정 긍긍하다가 밥 먹고 땅을 밟고 걸으니 마음이 서서히 안정되었다.


밤 9시 이후 비가 점점 그친다는 예보대로 비가 잦아들었다. 빗소리와 바람소리에 예민해지지 않아 좋다.

어제보다는 잠들기 쉬울 것 같다.

빗방울이 창문에 세차게 부딪힌다 (11:5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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