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길에

2025. 7. 17

by 지홀

호텔 체크아웃 할 무렵에 내리던 비는 보슬비 수준이었는데, 공항버스를 타고 갈 때는 한 치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폭우가 내렸다. 버스 기사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뗐다 반복해서인지 차가 흔들리며 짐칸에 실은 트렁크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기사는 누구에게랄것도 없이 날씨가 끔찍하다며 혼잣말을 한다. 앞 차량이 끼어들었는지 급브레이크를 밟았는지, 기사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깜짝 놀랐지만 버스 앞의 상황이 보이지 않는다. 운전사는 "idiot"이라고 욕을 한다.


조카와 국제공항 터미널까지 같이 가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다 헤어지려고.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국제공항 터미널에서 국내선 터미널까지 걸어갈 거리지만, 이 날씨라면 홀딱 젖어버릴 날씨다. 조카에게 국내선 터미널에서 내리라고 했다. 조카는 비 맞아도 된다고 했지만, 맞을 비가 아니었다.


"그럼, 우리 여기서 헤어져야 해?"

"응, 버스가 국내선 터미널에 가니까 그게 편해. 네 옷이랑 신발 다 젖어버릴 거야. 국제선에 가도 어차피 금방 헤어져야 하는 걸"


버스가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포옹하고 조카가 내렸다.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플랫폼에 서서 내게 손을 흔든다. 나도 잘 지내라며 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왈칵 솟는다. 유학 간다고 서울 집에서 인사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보름간 같이 있으며 서로에게 더 익숙해진 것 같다.


웰링턴 가는 비행기에 탔다며 톡이 왔다. 보고 싶을 거라는 말에 또 눈물이 난다. 나도 보고 싶고 헤어질 때 눈물 났다고 했더니 조카도 그렇단다. 톡으로는 내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는데 이제 반말로 말한다. 그만큼 더 친밀해졌다는 방증일 거다. 서울행 비행기 출발시간이 조카가 웰링턴에 도착할 시간이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톡을 받고 출발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

인천공항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대한항공기와 점점 개는 하늘(09;48, 09:49)

돌아오는 좌석은 미리 지정해서 통로 쪽에 앉았다. 세 명 앉는 자리에 양쪽 통로에 한 명씩 앉았다. 다행히 가운데 자리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 11시간은 정말 길다. 책을 펼쳤다가 졸려 잠자고 일어나 밥 먹고 영화 한 편 보고 또 책 보다 졸다 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왔다. 인천 근처로 오자 비가 많이 내린다. 노을이 지는지 하늘은 오렌지 빛이고 구름은 새카맣다. 까만 구름과 오렌지 빛 하늘이 신비로워 사진을 찍고 싶지만, 비행기 날개에 자꾸 가려져 못 찍었다. 비행기가 많이 흔들린다. 좌석벨트를 매라는 안내방송이 계속 나오고 승무원도 자리에 앉으라는 방송이 나온다. 곧 착륙한단다. 모니터에는 비행기가 어디쯤 날아가고 있는지 보인다. 영종도에 접근하는 모습이다. 날씨 때문에 선회하는 것 같지 않다. 비행기 바퀴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비행기는 구름 속을 지난다. 파일럿은 앞이 보일지 궁금하다. 기체가 흔들리지만 이상하게 내 마음은 평온하다. 불안할 만 한데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비행기가 착륙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키위 몇 명이 박수를 친다. 몇 명의 박수가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어 많은 사람이 박수를 친다. 그들이 불안할 만큼 기체가 흔들렸다는 의미일 텐데, 왜 나는 평온했을까? 친구가 말한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나의 불안함에 대해 말했더니 친구가 한 말이다. 자신도 비행기 탈 때마다 괜히 무서웠는데 얼마 전부터 그 무서움이 덜해졌다고. 다 마음먹기 나름이고 스스로 불안을 만들어낸다는 걸 알기에 마인드컨트롤 한다고. 나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음먹은 것처럼 잘 되지 않아 문제라고. 이번에는 마음 다스리는 일이 비교적 성공했나 보다. 그리 불안하지 않았다.


무사히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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