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윤리

2025. 7. 23

by 지홀

"팀원에게 일을 시키기가 점점 어려워져요. 왜 자기가 해야 하냐고 반발하니까"

"요즘은 받는 만큼 일하겠다는 마인드가 강해진 건지, 주어진 일 외에 더하려고 하질 않아요"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하는 거보다 저렇게 하는 게 좋겠구나' 하면서 개선하고 고도화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아요? 그리고 일을 맡았으면 잘 끝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냥 일 끝냈다로 만족하는 직원이 많아지고 있는 거 같아요"

"맞아요, 그러니까 나아지는 게 없어요. 누가 맡아도 결과물이 거기서 거기예요"

예전에는(불과 5~6년 전?만 해도)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니 책임감을 갖고 잘 해내려는 욕심을 가진 직원이 많았다. 한마디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열심히 했다. 이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노력은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기본 장착해야 하는 자세, 마인드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무탈하게 일을 잘 마무리하기만 해도 큰 성과인 것처럼 말하는 직원이 많아졌다. 그것도 성공적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문제 생기지 않게. 일테면 행사를 개최했을 때 참가자들이 겪은 불편함은 문제 되지 않는다. 그 불편함이 대표 귀에 들어가거나 정식 민원으로 문제제기만 되지 않는다면, 해당 직원만 알뿐 아무도 모르게 스르르 넘어간다.

엷고 넓게 펼쳐져 흐르는 구름과 뭉쳐진 구름의 조화가 그림같다 (08:38. 12:34)


언제부턴가, 솔직히 나부터도 예전만큼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다들 긴장감이 느슨해진 걸 느낀다. 사수, 부사수 시스템은 있지만 1:1 밀착 전수는 없다. 회사 시스템을 익히고 그 시스템에 맞춰 일하기 때문인지, 너무 분업화된 일을 하기 때문인지, 회사일에 올인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사고방식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신입사원에게 일을 가르치는 선배가 있지만 예전과 다르다. "나의 모든 노하우를 너에게 알려주마"와 같은 건 이제 없다.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이러저러한 것이 있는데 그에 따른 장, 단점은 무엇인지, 문제가 생겼을 때 사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어떤 관점들이 있을 수 있는지 등 전방위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는 방법 보다 일 처리 프로세스만 알려준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와 그 문제를 뚫고 가는 노하우는 각자 터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진 것 같다. 대개 신입사원에게 일을 가르치는 선배가 3~5년 된 직원이니 그들도 제대로 배운 게 없을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일 외에는 관심 없고 더 알려고 하지 않는 것. 다른 직원이 어떤 일을 하고 그 직원의 일과 자신의 일은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시너지를 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일하려고 하면 '오지랖퍼'가 된다. 다른 직원의 업무에 생긴 문제는 그 직원만의 문제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 문제가 내 일에, 조직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모른다.

아주 투명한 물속을 보는 것 같다 (12:39, 16:15)


전임자가 한 일을 결과보고서로만 익힌다. 보고서에 적을 수 없던 수많은 사안은 알려고도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업의 히스토리는 그렇게 단절된다. 이건 비단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옆에서 보는 공무원 사회도 같다. 업무 담당자가 바뀌면 연속성은 유지된다. 대개 전임자가 했던 일을 답습하므로 쉽다. 그러나 개선은 없다. 고도화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중 특출 난 사명감과 역량과 의지를 가진 직원이 나타나지 않으면 해당 사업은 몇 년을 그저 그렇고 그런 결과를 유지하다 없어지기도 한다.


사업이 없어지고 새로 생기고 이런 것들이 사실 내 인생에 뭐 그리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냐라고 한다면, 중요하지 않다. 사업 성과가 우수하든 그렇지 않든 내 삶에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면, 아무 상관없다. 있다면, 성과급을 더 받고 승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외에는. 승진과 인센티브에 연연하지 않으면 더 아무 상관없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직업윤리, 사명감 이런 것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사명감, 직업윤리는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직업(흔히 생각하는 의사 등),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직업(변호사, 판사, 검사, 소방관, 경찰, 군인 등등)을 가진 사람만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누군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 최소한 옆의 동료뿐만 아니라 넓게는 내가 속한 업계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다. 지원하는 일은 지원을 받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무엇을 제조하는 일은 그걸 이용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서비스를 하는 일은 서비스를 받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집을 짓는 사람은 나사 하나, 못 하나가 빠지지 않고 잘 조여지고 박히도록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그래야 집이 튼튼해진다. 나사 하나 풀렸다고 뭐 크게 잘못되겠는가 하고 놔둔다면, 그거 하나 때문에 언젠가는 큰 문제가 생긴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느슨했던 마음과 일 처리가 몇 년 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맡은 일을 꼼꼼하게 살피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도록 노력하는 일 자체가 직업윤리를 지키는 일일 것이다. 귀찮고 하기 싫다고 놔두면 결국 그 일이 내게 악재로 돌아올지 모른다.


태양이 구름뒤에 숨어 햇빛을 내뿜는 모습은 언제봐도 멋지고 성스럽다 (16:15, 16:1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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