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량 한계

2025. 7. 27

by 지홀

"가장 행복하고 멋진 삶은 유머리스트로 사는 것이다"

지난주 출근길 버스에서 본 가게 간판 문구다. 가게 이름은 해피 유머리스트. 김밥을 파는 곳이다. 가게 이름과 업종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생뚱맞을 정도지만, 김밥 가게 사장님은 인생을 참 여유 있게 사는 유쾌한 분일 것 같다. 간판이 아주 낡고 색 바랜 것으로 보아 꽤 오래된 집인 것 같은데, 처음 봤다. 그 길을 거의 5년 가까이 다녔는데 말이다. 잠시 멈춘 버스가 출발하기 전 사진을 부리나케 찍었다. 왜냐하면 마음에 드는 문구를 기억하려고 되새기지만, 지나치면 곧 잊어버리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때 찍은 사진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글감은 다른 내용이었을 거다.


점심시간에 샤부샤부집에 갔는데 대기줄이 엄청 길었지만 얘기를 나누며 기다리기로 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대기줄이 점점 줄어 식당 문 앞까지 갔다. X배너에 큼직하게 적힌 점심 메뉴를 보다가 가게 문 앞에 붙은 "누룽지 삼계탕"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일행 세 명은 샤부샤부집에 샤부샤부를 먹으러 갔다가 급선회하여 누룽지삼계탕으로 통일해 주문했다. 얼마 후 삼계탕이 나왔다. 흔하게 보는 몸을 둥그렇게 오므린 모양이 아니라 흡사 닭이 누워있는 것처럼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왔다. 순간 비주얼에 눈살을 찌등그렸다. 내가 유난히 잔인하게 느껴졌다. 옆에 앉아있던 후배가 일어나 물티슈를 가져온다. 그러다 한 마디 한다.


"어머, 물티슈가 테이블에 있었네! 역시, 역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봐요"


매일 지나치는 길에 있는 김밥 집이 있는지 모르고, 매일 빌딩 입구 한편에 놓여있던 도자기가 어느 순간 없어졌는지 알지 못하고, 식당 테이블에 세팅되어 있는 물티슈가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한다. 눈으로 보되 인지하지 않기 때문일 텐데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일 수 있다. 내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현재의 나는 여기 없다.


그렇다고 스쳐 지나는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 그 또한 피곤하고 너무 많은 정보로 머릿속이 복잡할 거다. 내게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흘려보내야 기억해야 하는 정보를 잘 기억하게 될 거다. 내가 가진 용량에 한계가 있으므로. 친구가 휴대전화 저장 공간이 별로 없어 사진 저장을 못한다고 했다. 사진 저장을 못하니 잘 찍게 되지 않는다고. 이미 찍은 사진을 다른 기기로 옮기면 공간에 여유가 생길 텐데, 그 일이 다급한 일이 아니므로 미루게 된다. 따라서 꼭 필요한 사진만 찍게 된다. 용량의 한계는 자연스럽게 내게 중요한 것, 필요한 것을 거르는 좋은 필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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