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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고백

2025. 7. 31

by 지홀

연극은 무엇인가?


연극 "삼매경"을 봤다. 연극은 1991년 지춘성 배우에게 서울연극상 배우상을 안겨준 "동승"이란 연극을 원작으로 이철희 연출이 새롭게 재창작한 작품이다. 지춘성 배우는 극에서 배우 본인의 역할로 나온다. 1991년 연극계 갈채를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동승"에서 분했던 "도념"역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괴로워한다.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그가 맡았던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표현해 낼 것인가에 대해 보여준다. 주인공 지춘성 배우는 120분 동안 내내 무대 위에서 "도념"이었다가 1991년의 배우였다가 2025년의 배우 자신을 연기한다.


배우는 끊임없이 묻는다. 연극은 무엇이고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왜 활자로 되어 있는 것을 살아 숨 쉬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는가. 관객은 박수를 보내는데 배우 자신은 왜 만족하지 못하는가. 죽음을 맞이해 저승에 가서도,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죽음과 상실의 경험을 배역의 인물분석으로 연결시키는 배우. 죽은 후에는 그깟 연극이 뭐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극 중 배역인 "도념"을 자신에게 분리시켜 죽임으로써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고도 하지만, 결국 배우는 자신이 맡았던 배역을 떠나보내지 못한다.


삼매경은 불교 용어라고 한다.

잡념(雜念)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對象)에만 정신(精神)을 집중(集中)하는 경지(境地). 이 경지(境地)에서 바른 지혜(智慧ㆍ知慧)를 얻고 대상(對象)을 올바르게 파악(把握)하게 된다.


연극 하나에 집중하는 경지. 이 연극은 연출가의 연극을 향한 사랑 고백이다. 배우의 고뇌를 보여주지만, 결국은 연출가가 연극 자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읽을 수 있다.


명동예술극장의 무대는 언제나 놀랍다. 다양한 무대 연출이 가능한 공간이다. 이번 연극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데 '바닥에 물이 고이면 물방울이 튈 텐데? 바닥이 젖지 않나?' 하며 고개를 쳐들고 무대 위를 보려고 애썼다. 초반에는 진짜 물방울인지 조명인지 헷갈렸다. 바닥에 튀기는 모양이 보이지 않아서. 그러나 극 후반에 물 웅덩이가 눈에 뜨여 알게 되었다. 극 후반에 모래가 떨어지는 장면 또한 무척 인상적이다. 배우를 얽매고 있던 '동자승 도념'을 떠나보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모든 걸 허물어뜨려 그 위에 다시 새로운 것을 세우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의 소리와 모습을 육성과 몸짓으로 보여주는 배우들의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관객이 입장할 때 이미 무대에 등장해 있는 배우들은 저마다 자신이 맡은 자연물로 혼연일체 되어 있는 모습이다.


색다른 시도로 연극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연극이었다. 저렇게 치열하게 극을 쓰고 연출하고 연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취미로 해도 되는 일일까?'


번접할 수 없는 영역에 발을 디밀고 있는 것 같아 좀 미안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좀 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파란 하늘이 가려진 하루 (08:34, 08:4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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