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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소비

2025. 8. 2

by 지홀

동생이 이사 가기 전에 짐을 정리한다고 하여 이 기회에 내 옷도 정리했다. 요즘에는 옷을 수거해 가는 곳이 있어 편리하다. 앱으로 신청하면 원하는 시간에 가져가고 그중 쓸만한 옷은 선별해서 값을 쳐준다. 버려야 하는 옷은 무게로 계산해 준다. 옷장을 뒤지며 몇 년이 지나도 입지 않는 옷, 잘 입으나 너무 낡은 옷을 꺼냈다. 언젠가 입을 것 같아 놔두었던 옷은 낡지 않았다. 사이즈가 맞지 않아 못 입거나 유행이 지나 못 입는 옷 들이다. 그중 어쩌다 한 번씩 꺼내 입으면 또 그렇게 옛날 옷 느낌 나지 않는 것이 있어 그냥 둘까 잠깐 고민하다가 과감히 버렸다. 결국 갖고 있어 봐야 짐만 될 뿐이므로. 매년 잘 입었던 옷은 정말 버리기 아까웠다. 보푸라기가 일고 심지어 뜯어진 곳도 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입었다. 하지만 역시 큰 마음먹고 버렸다.


"너도 이쁜 옷 좀 사 입어" 엄마의 이 한마디에 미련을 떨쳤다.


이십 대, 삼십 대 때 나보다 10~15년 나이 많은 언니들이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이 옷, 한 10년 된 옷이야. 이건 20년은 됐을 걸" 그 시절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옷 하나를 그렇게 오래 입을 수 있나 의아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종종 그런 말을 한다. 그냥 버리지 않고 갖고 있다 보니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마치 엊그제 만난 것 같은데 곰곰이 따져보면 일 년 아니 몇 년 전이듯 지난여름에, 지난겨울에 산 옷 같은데 십 년 훌쩍 넘은 옷들이 태반이다. 시간의 흐름이 인지하는 것과 다르게 빛의 속도로 흐른다.


나이 들수록 옷 쇼핑을 많이 하지 않게 되니 더욱 갖고 있는 옷을 입게 된다. 예전에는 철마다 옷 사러 백화점, 아웃렛 등에 자주 갔으나 백화점에 가지 않은 지 백 만년은 된 것 같다. (그 시절 왜 그렇게 비싼 옷을 샀는지 지금은 이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온라인으로 구매하지도 않는다. 옷은 아무래도 입어보고 사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 강하기 때문이다. 가끔 길 가다 충동적으로 옷 가게에 들어가 둘러보고 사는 정도다. 젊었을 때 소비했던 옷 값에 비하면 요즘은 훨씬 적은 돈을 쓴다. 물가가 오르지만 옷 값은 그렇게 많이 오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옷 브랜드를 따지지 않는다면 저렴하고 예쁜 옷이 참 많다.


격월로 만나는 친구 모임에서 이태원 시장에 옷 쇼핑을 자주 가는 편이다. (2년 새 벌써 네 번 갔다.) 아무 계획 없이 갔다가 분위기에 휩싸여 옷을 사게 되는데, 청바지만 샀더니 3개가 되었다. 처음 이 친구들과 이태원에 갔을 때, 바지 길이가 다른 곳에서 사는 것과 다르게 내게 딱 안성맞춤이어서 정신없이 샀다. 그 후로도 딱히 옷 살 계획은 없지만 따라갔다가 예뻐서 산다. 오늘도 점심을 먹은 후 무얼 할까 얘기하다가 한 친구가 옷 사고 싶다고 하여 이태원에 갑자기 가게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피스를 사겠다는 목표를 갖고 갔다. 그렇지 않아도 옷 정리하면서 너무 많은 옷을 버려 회사에 입고 갈 만한 원피스가 없어 살까 말까 하던 중이다. 한 벌만 사려고 갔는데 사장님이 이 옷 저 옷 다 입어보라고 권하는 바람에 두 벌을 샀다. 입어보면 아무래도 사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진다. 하마터면 세 벌을 살 뻔했는데 잘 자제했다.


브랜드 값으로, 예쁘니까, 옷 질감이 좋으니까 등등으로 살 때 꽤 비싸게 주었지만 몇 번 입고 세월이 지나면 지불한 값은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버릴 때 '이걸 얼마에 주고 샀는데'라는 마음보다는 얼마나 잘 입고 다녔냐, 얼마나 애착이 가느냐가 취사선택의 결정요인이 된다. 반면, 아주 싸게 샀던 옷은 그 싼 이유가 쉽게 버리는 이유가 된다. 아무리 애정하는 옷이라도 '이 정도 입었으면 입을 만큼 입었어'라며 쉽게 돌아선다.


사고 버리고 또 사고 버리고. 영원히 간직할 옷이 없는 걸 감안하여 이제는 더 적정한 품질과 가격의 옷을 사려고 한다. 그렇다고 너무 싼 옷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한 철 입고 나면 다 늘어져 더 이상 입기 곤란한 옷은 안 사느니만 못하다. 모임 친구들은 오래전부터 제일평화시장, 이태원 시장, 남대문 시장에서 옷 쇼핑을 많이 했는데 나는 너무 많은 물건이 있으면 고르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 옷은 대부분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이 많고 그만큼 옷감 질이 좋고 디자인은 예쁘고 여러 번 입고 세탁해도 오래간다. 수 십 년간 옷 쇼핑을 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만든 옷이 제일 좋다.


태양이 얼굴의 코처럼 보인다. 번쩍이는 코 / 새가 날아가는 것 같은 구름 (11:13, 19:41)
노을로 물든 핑크색 구름과 어두워지는 구름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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