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허기
그것은 배고픔이었다.
쇼파에 기대어 앉아서 쇼츠를 넘겨보다 문득 ‘허기’를 느꼈다.
이미 편안하게 기대어 반쯤 누운 자세를 다시 일으키는 것은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누군가 똑바로 앉으라고 잔소리를 하지 않는 한, 계획되지 않았던 그 행동은 누군가 무게추를 달아놓은 듯 무겁게만 느껴진다. 쇼파에 들러붙어 있던 등을 강제로 떼내어 몸을 일으키면 아직도 쇼파에 누워있는 그림자가 부러워진다. 그러면 심술이나서 그림자를 쫓아내듯 두 손바닥으로 강하게 쇼파를 ‘팡’ 치면서 일어난다.
하지만, 게으른 발바닥은 장판이 끈적한 듯 떨어지는 것이 어렵다. 쇼파에서 냉장고까지 불과 몇 미터도 되지 않는 공간 속에서 배고픔에 대한 미약한 욕구는 심리적 거리를 더 넓히는 듯 하다. 차라리 욕구가 강렬했더라면 행동에 당위성이라도 부여할 수 있었을 것이리라. 그렇게 몇 걸음 걸어서 연한 분홍빛과 아이보리 색이 조합된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샐러드를 해먹기 위해 야심차게 마트에서 장을 봐왔던 야채들이 신선코너에서 이미 그 신선함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아침에 샌드위치를 해먹겠노라고 선포했던 날이 언제였는지 모르지만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슬라이스 햄과 만들고 몇 번 먹지도 않은 달걀샐러드가 락앤락통 속에 반쯤 들어있는 듯 하다. 거기에 진미채무침, 건두부무침 등등 같은 먹다만 반찬들이 외롭지 않게 층층이 쌓여있다.
그렇게 냉장고 속 가득 먹을 것이 있지만 ‘딱히 먹을게 없네’ 하면서 냉장고 문을 닫고 그 옆의 냉동고 문을 열어본다. 냉동고는 냉장고보다 더 꽉차있다. 레트로음식을 소비하는 현대사회의 참된 소비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언젠가 코스트코에서 산 냉동새우, 냉동오징어, 냉동만두. 냉동만두는 몇 번 해먹어서 그런지 봉지가 꽤 날씬하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할인매장에서 잔뜩 구매한 각각의 아이스크림들. 결국 아이스크림 중 한놈을 냉동고에서 빼내어 봉지를 뜯고 입에 문다. 그렇게 가득차 있는 냉동고를 뒤로 하고 스스로에게 ‘잘 밤에 과하지 않게 잘 해결했다’며 위안한다.
왜 그렇게까지 음식들을 냉장고에 채워넣은 것일까?
결국 다 먹지도 않을거면서. 그리고 다 먹지도 않았으면서 왜 새로운 것을 채워넣는 것일까?
결국 다 먹지도 못할거면서.
냉장고 속 음식처럼 다 소화하지도 못하면서 더 많이 가지려 한다. 생각해보면 이전 시대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지만 다 소화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소비’와 ‘소화’는 다르다. 소화는 시간이 걸린다. 단순히 음식물 뿐만 아니라 책, 음악, 영화, 패션 등등 다양한 것들에서도 소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소유하지만 다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채 새로운 것을 소비한다. SNS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소비시간을 따라잡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초초함에 쫓겨 소화를 하지도 않은채 새로운 것을 구매하여 억지로 내 삶의 빈공간에 채워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는 결국 내가 진짜로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희미해져 버린다.
배가고파 냉장고를 열었지만 그저 아이스크림 하나만 꺼내 먹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