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니, 청춘이 그립다.
찌는 듯한 열기, 쏟아지는 햇살, 끊임없이 들끓는 에너지와 함께 그 자체로 폭발적인 힘을 지닌 시간. 촌스런 얼굴에 못난이 패션을 하고서도 친구들과 함께 거리를 걸으면 특별히 부끄러울 것도 없었고, 처음 보는 여성에게 말을 거는 것도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던 시간. 그저 친구들을 위해서 그리고 재미를 위해서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간들. 누구에게나 한 번은 찾아오지만, 누구나 똑같이 살아내지는 못하는 시기. 그래서 청춘은 아름답고, 고통스럽다.
태풍 매미가 한국 땅을 강타했을 때 난 괴정의 작은 주택 옥상에 올라가 포효했다. 난 내가 태풍에 맞서 객기를 부리며 강렬한 청춘을 보내고 있었다 생각했다. 강력한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2년 가까이 암으로 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그늘 속에서 타오르지 못하도록 눌러놓은 나의 청춘에 대한 슬픈 포효였던 듯하다.
어머니가 기나긴 투병 후 돌아가시고, 친구의 자전거를 타고 부산대에서 경주까지 홀로 쉼 없이 달렸다. 5단인가 7단인가 투박하고 녹이 슨 검은색 자전거를 타고 국도를 미친 듯이 달렸다. 어둑어둑해지는 도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던 여름 저녁. 언양 초입 비탈진 갓길에서 뒤에서 달려오는 트럭의 경적소리에 놀라 핸들이 틀어지며 굴렀다. 얇은 옷은 찢어지고 팔다리는 거친 도로에 쓸리며 피가 배었다. 도로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서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울었다. 시원하게 울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에 울었다. 청춘의 나는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이 나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상처가 쓰라렸다. 자전거를 세우고 부서진 곳은 없는지 확인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목적지는 정해 놓지 않았지만 경주까지는 가고 싶었다. 그래서 도로 위에 매달려 있는 표지판들을 확인하며 내달리니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경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무리가 엉성한 못 만든 영화처럼 경주까지 와서는 만날 사람도, 할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즉흥적으로 내달린 터라 수중에는 돈도 없었기에 동국대 앞 적당한 오락실의 오래방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좁고 퀴퀴한 오락실 오래방이 쾌적할 리가 없었지만,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비를 피하기에는 적당했다. 동그란 받침이 있는 오래된 오락실 의자에 앉아 잠을 자는 듯 마는 듯하며 그렇게 아침을 기다렸다.
생각해 보면, 나의 청춘은 젖은 장작이었다. 타오를 듯하면 적당히 물을 뿌려 타오르지 못하게 해야 했지만, 잔불마저 짓밟기엔 내 청춘이 너무 안쓰러웠다. 어머니의 투병, 군대, 알바, 유학준비. 그 가운데 연애도 하고 이별도 하고, 사라지지 않을 것들을 익혀야 할 청춘의 시기에 난 나의 청춘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던 나의 청춘. 그 청춘에게 갑자기 미안해진다. 나이 듦은 지혜와 경험으로 표현되지만, 청춘은 불 같은 열정, 찬란함, 끓어오르는 에너지로 표현되어야 할 시기에 나는 태우지도 찬란하지도 끓어오르지도 못했다. 괴테는 청춘을 ‘숭고한 오류를 범하는 때’라고 말하였지만, 나의 청춘은 실수와 오류가 용납되는 여유가 없었다.
청춘은 불확실성과 맞닿아 있다.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길도,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호할 때가 많다. 그 가운데서 길을 잃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힘이 있고, 어딘가에 도달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그래서 청춘은 자주 부서지고, 흔들리고, 때로는 미련할 정도로 집요하다. 그 모든 모순과 충돌이 청춘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이다.
그날 경주의 오락실에 놓고 온 나의 청춘이 보고 싶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치열하지 않아도 된다고, 실패해도 된다고 말해줄 텐데. 지금이라면, 부서지고 흔들리고 집요하여 빛이 날 수 있다고 말해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