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드라다는 호수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호수 위에 세워졌기에 발드라다의 모든 곳들은 그리고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호수에 비춰져 마치 두 개의 도시가 아래위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발드라다에 사는 사람들 역시 그들의 행동이 자신들의 행동인 동시에 거울 같은 호수 표면에 반사된 상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그들은 우연과 망각에 단 한순간도 몸을 맡기지 못한다.
이 도시에 대한 글을 읽으며 SNS에 대한 통찰에 다가간다.
칼비노는 SNS는커녕 컴퓨터도 대중화되지 못했던 시대를 살다가 갔지만 인간의 본질에 대해 깊은 통찰을 한다.
그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이나 행동이 순수하게 분출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혹은 '사회적 구조'라는 거울에 비칠 모습을 먼저 계산하게 되는 것을 바로 발드라다를 통해서 말해준다.
발드라다의 주민들은 사랑을 나눌 때나 누군가를 증오할 때조차 거울 속의 분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의식한다. 그들에게 '비춰지지 않는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역시 디지털기기로 통칭되는 호수수면 위에서 우리는 자신의 일상을 쉼 없이 투영한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가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미식'이 되고, 나만의 고요한 사색은 '공유하기 위한 문장'으로 탈바꿈되어 있다.
나의 본질적인 욕망이 솟구치기도 전에,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호라는 거울이 나를 먼저 검열한다. 타인이 어떻게 볼지에 대한 인정욕구가 당연시된 채 사생활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연극적 자아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호수 밖의 실재보다 호수 안의 투영이 더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칼비노는 발드라다의 실제와 복제 사이에 위계가 사라졌음을 짚어낸다. 거울 속의 내가 더 아름답고, 더 완벽하며, 더 영원해 보일 때 나의 정체성은 혼란에 빠진다. 나는 이미 내가 아닌 비춰지는 나이길 원한다. AI로 보정되어야지만 타인에게 노출할 수 있는 나에 대한 인식은 언젠가 스스로를 갉아먹게 되지는 않을까.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배우고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만, 어느새 그 구조가 우리를 정의하는 기준이 되어 버린다. 내가 거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거울이라는 구조가 요구하는 춤을 내가 추어야지만 비로소 삶을 인정받는. 온라인상의 평판이 훼손될 때 원본인 육체마저 고통을 느끼고, 사회적 지위라는 기호가 사라질 때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는 모습은 구조가 실재를 압도해 버린 이 시대의 서글픈 풍경을 발드라다를 보며 느꼈다.
"이 두 발드라다는 서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살고 있지만, 서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칼비노의 이 서늘한 문장은 구조와 실재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말해준다.
우리는 사회라는 거울을 떠나 살 수 없으면서도, 그 거울에 비친 자신의 낯선 모습에 끊임없이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울을 깨뜨리는 용기가 아니라, 그 어떤 호수도 담아낼 수 없는 '비춰지지 않는 내면'을 지켜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누적되고 누적된 경험이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어갈 때 결국 타인이 바라보는 내가 디지털호수에 비춰진 사람이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모든 것이 투명하게 전시되는 이 발드라다의 지옥 속에서도, 거울에 포착되지 않는 찰나의 진심과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고독의 무게를 긍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구조에 얽매인 기호가 아닌 '살아있는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