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무게

by 우물

이탈로 칼비노가 묘사하는 도시 소프로니아는 반은 롤러코스터, 회전목마, 관람차 등등의 유원지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반은 돌과 대리석과 시멘트 기둥의 은행, 공장, 대저택, 학교 외 그 밖의 것들이 모두 있는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도시이다. 그러나 이 도시의 진짜 기괴함은 그 생김새가 아니라, 그것들이 '시간'을 대하는 역설적인 태도에 있다.

사람들은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을 보며 영원한 가치를 꿈꾼다.
누군가는 그렇기에 건물이 또 다른 종교의 권위의 표상이라고도 말했다.
멋지게 조각된 돌과 대리석, 매끈한 시멘트 기둥이 떠받치는 국가, 금융, 법률이라는 시스템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삶의 지반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프로니아에서는 인부들이 매년 이 거대한 석조 건물들을 나사 하나하나까지 정교하게 분해하여 트럭에 싣고 떠난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는 사회적 지위나 제도는, 인간이 필요에 의해 잠시 조립해 놓은 '정교한 가설무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영원할 것 같던 대리석 박공이 힘없이 떼어지는 장면은, 우리가 부여한 권위와 규범이 사실은 얼마나 가변적이고 인위적인 구조물인지를 서늘하게 폭로한다. 우리는 단단한 벽 안에 있다고 믿었으나, 사실은 언제든 해체될 수 있는 연극 세트장 안에서 주인공인 양 연기하고 있었던 셈이다.

르네마그리트, 피레네의 성


아이러니의 정점은 그 반대편에 있다. 무거운 것들이 떠난 자리에 유일하게 남겨진 것은 뜻밖에도 가벼운 '유원지'이다. 하늘을 가르는 롤러코스터와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는 해체되지 않은 채, 도시의 유일한 영속성으로 땅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이 풍경은 우리 삶의 진짜 기반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인류의 역사가 흐르고 제도가 수만 번 옷을 갈아입어도, 인간이 느끼는 사랑과 즐거움, 공포와 환희라는 본질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롤러코스터에서 내지르는 짧은 비명은 대리석 바닥의 관공서에서 울려 퍼지는 엄숙한 훈사보다 훨씬 더 오래도록 인간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 칼비노는 어쩌면 '유희'야말로 인간이 결코 해체할 수 없는, 가장 무겁고 단단한 실존의 토대라고 말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종종 족쇄에 묶인 코끼리처럼 살아간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사회시스템이라는 족쇄는 우리를 대리석 바닥 위로만 걷게 만든다.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생의 활기를 만끽하기보다는, 대리석 기둥이 세워진 건물의 높은 창가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삶을 성공이라 부르며 열망한다.

하지만 소프로니아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애처롭다. 영원할 거라 믿고 매달렸던 대리석 벽들이 해체되어 떠나갈 때, 우리는 그제야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터에서 홀로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녹슬고 부서질 시멘트 기둥이 아니라, 우리 가슴속에서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즐거움과 행복의 동력이지 않을까. 무거운 것들의 허구성을 인정하고 가벼운 것들의 영속성을 껴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시스템이라는 족쇄를 풀고 자신만의 소프로니아를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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