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싫어
난 추위가 싫다. 추위가 싫은 만큼 겨울이란 계절이 싫다.
나의 생일이 있고 크리스마스가 있고 새해의 다짐을 하며 설이라는 큰 명절을 보내는 여러가지 이벤트들이 즐비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넘어서 추위가 싫다. 시퍼런 날을 세운듯 스치는 차가운 바람도, 무겁고 두껍고 갑갑한 옷도, 짧아진 것도 모자라 그 본연의 강렬함을 잃은 태양빛도 별로다. 반대로 생각하면 다 겨울의 좋은 점이겠지. 덥고 습한 바람이 아닌 머리를 상쾌하게 깨우는 차가운 바람하며,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레이어드 할 수 있는 계절이기도하고, 뜨겁게 피부를 태우는 햇볕이 아닌 은은하게 그리움이 가득한 태양빛이 사랑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뭐, 관점의 차이인가.
내가 이토록 겨울을 싫어하게 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먼 선대에 겨울 동안 큰 화를 당한 기억의 DNA가 각인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겨울의 굶주림의 기억이 진화되지 못한 나의 영혼에 남아 있는 것일지도.
생각해보면 어린시절에는 특별히 겨울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여름방학 보다 조금이라도 더 길었던 겨울방학을 더 좋아했던 것 같긴하다. 두텁고 포근한 이불 속에서 꼼지락 거리던 기억과 크리스마스면 맛있는 과자를 잔뜩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 두둑히 용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날에 대한 기대들로 겨울은 가득 차 있었다. 나이가 들어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에도 겨울은 추웠지만 거리에는 낭만이 가득했다. 신주쿠와 롯본기의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을 구경하고 있으면 화려하게 빛나는 빛이 마치 따스하게 느껴졌고, 골목의 허름한 라멘집 환풍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수증기가 추위를 오히려 낭만적으로 만들어주었다. 확실히 일본에 있을 때 까지도 겨울을 싫어하지 않았던 듯 하다.
언제부터 추위에 대한 혐오 아닌 혐오가 생긴건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30대초 두비이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 즈음 부터 겨울이 싫어졌던 듯 하다. 두바이의 찌는 듯 한 더위는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었지만 그 사이 적응해 버린 나의 신체는 7월의 한국조차 시원하게 느꼈다. 생각하면 그 이후로는 왠만하면 따뜻한 음식, 따스한 방, 뜨거운 샤워를 선호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추위가 싫어진 진짜 이유일까. 다시한번 곰곰이 추위를 싫어하게 된 근원을 냉정하게 직면하면 결국 나의 쓸쓸함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어린시절 늘 친구들과 함께 몸으로 부딪히고 웃다보면 추위는 생각나지도 않았던 듯 하다. 바깥에서 벌겋게 시린 손을 아랑곳하지 않고 술래잡기를 하던 어린시절 부터 1월의 강추위에 자전거로 부산에서 포항까지 달렸던 스무살의 나.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며 밤새 놀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들어갔던 그 겨울의 거리. 그 모든 순간 순간에 추위는 아무런 장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추운 겨울은 오뎅 국물을 나눠먹는 그리움, 고기 불판에 다닥다닥 붙어서 술잔을 나누던 온기처럼 따스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낭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삶에 대한 걱정을 가득 짊어지고 치열하게 살다보니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니 추위가 싫을 수 밖에. 아날로그 TV 속에는 연말이 되면 나오던 이웃돕기성금 현황과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려퍼지던 어린시절의 겨울이 왜 춥게 느껴지지 않았는지 알 것만 같다.